사람, 그것이 바로 산구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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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그것이 바로 산구원의 길
  • 이흥수
  • 승인 2017.11.0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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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한국산업구강보건원 이흥수 이사장

본지는 구강부분에 발생할 수 있는 직업병을 연구하고, 근로자의 구강건강 향상을 위해 쉼 없이 달려온 (사)한국산업구강보건원(이하 산구원)의 창립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김진범·김광수 전 이사장에 이어 이흥수 현 이사장의 특별 기고문을 싣는다.

참고로 산구원 창립 20주년 기념식 및 학술대회는 오는 11일 오후 3시부터 용산 센트레빌 아스테리움 C동 2층 상상캔버스에서 진행된다.

- 편집자

 

낙타는 사막을 떠나지 않는다네

 - 김진경의 시 <낙타> 중에서  

한국산업구강보건원(이하 산구원)창립 20주년을 맞았습니다. 전신인 산업구강보건협의회(이하 산구협)의 시절을 포함하면 25주년이 되는 셈입니다. 짧다면 짧은 세월, 길면 긴 세월입니다. 건치신문사로부터 산구원의 그 동안의 성과와 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떠오른 것은 사건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이 세상사가 모두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산구원의 20년은 어찌 보면 사람들의 활동기록입니다. ‘건강검진에서 구강검진을 제외하려는 정부의 시도를 좌절시켰다’라는 단 한 줄의 연혁에서도 그것을 위해 애쓴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25년의 세월을 사람으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산구원의 사람들’은 산업구강보건 즉 노동자들의 구강건강증진을 위해 노력한 한국산업구강보건원 회원들의 이야기입니다. 

1995년 11월 26일 산업구강보건협의회 가족 나들이

1990년대 말, 구강보건법 제정을 위한 활동을 할 때였습니다. 구강보건법 초안에 산업구강보건과 관련된 조문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말합니다. “산업구강보건은 노동부 소관이고 참 어렵고 복잡한 문제라서….” 말은 정확하지 않습니다만 산업구강보건이라는 업무에 보건복지부가 연계되는 것을 싫어하는 의사를 내비친 것임은 분명하였습니다.

산업구강보건이 포함된 산업보건은 대체로 인기가 없는 분야입니다. 보건복지부는 말할 것도 없고, 노동부에서도 이 분야는 변방쯤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치과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동자의 구강건강증진이라는 말은 생경하게 들렸습니다. 가끔은 좌파들이 하는 노동조합지원 행위라고 규정하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메마른 토양에 오아시스를 찾아 땀을 흘린 사람들, 바로 그 분들이 ‘산구원의 사람들’입니다. 

80년대 민주화의 열기는 청년치과의사회 창립을 필두로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이하 건치)의 결성으로 우리 치과계에 나타납니다. 김인섭 선생님으로부터 소개를 받은 저는 청년치과의사회를 거쳐 건치에 참여합니다. 여러 분과가 있었고 그 중에 몇 개에 참여해야 한다기에 가장 관심이 있었던 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 이외에 한 분야를 더 선택합니다. 바로 산업보건분과라는 곳이었습니다. 

한두 번 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구로 푸른 치과를 비롯한 푸른 치과 운동에 대한 이야기도 듣습니다. 고소영·김혜영·이정옥 선생님이 푸른 치과 운동에 참여했던 대표적인 분들입니다. 그리고는 산구협의 창립 소식을 듣습니다. 산구협은 산업구강보건에 대한 전문성을 더 한층 강화하고자 만든, 어찌 보면 건치의 가장 첫 번째 산하 전문단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사람이 길을 내고, 그 길은 지금의 산구원을 만들었다

산구협의 회장은 한영철 선생님이었습니다. 한영철 선생님은 우리나라 공중구강보건의 개척자와도 같은 분입니다. 산구협 결성은 물론 국민건강증진법에 구강보건과 관련 내용이 들어가도록 하셨을 뿐만 아니라 구강보건법 제정, 구강보건전담부서 설치, 구강보건정책연구회 발족 등에 늘 선두주자셨습니다. 산구협이 해소되고 산구원의 창립으로 이어지도록 가교역할을 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대한치과의사협회(이하 치협) 임원이셨을 때는 산구원이 치협 용역연구과제를 맡아 재정적 안정성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지금은 치협이 산구원에 용역역구과제를 지원하지 않지만 한영철 선생님이 물꼬를 터 주신 재정적 지원은 조영수 선생님과 전민용 선생님, 조영식 교수님이 치협 이사를 맡으셨을 때까지 이어집니다. 

이러한 지원을 바탕으로 산구원은 여러 연구보고서를 내게 됩니다. 『구강검진지침서』, 『근로자 구강보건의식행태조사』 등 모두 이분들의 도움으로 발간된 것이었습니다. 전민용 선생님과 조영식 교수님은 뭔가가 필요할 때 혜성처럼 등장하시는 분입니다. 필요할 때 늘 도움을 주신 든든한 뒷배였습니다.
   
산구협을 포함해 산구원의 성과라면 무엇보다도 구강검진을 제도화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1992년 근로자채용시건강검진에 구강검진을 포함시킨 것을 필두로 1994년 치아부식증이 법정 직업병으로 인정이 되면서 특수구강검진이 제도화됩니다. 1995년에는 드디어 일반건강검진에 구강검진이 포함되는 쾌거를 이룩합니다. 이후에 구강검진이 제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산구원은 각종 공청회와 보고서발간, 정책제안 등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초기 구강검진이 제도화되는데 故 문혁수 교수님, 한영철 선생님, 조영수 선생님 등 산구협 회원들의 노력은 눈부셨습니다. 구강검진을 가다듬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신 분은 최충호 교수님과 정세환 교수님, 배광학 선생님입니다. 최충호 교수님은 많은 현장 구감검진 경험을 바탕으로 구강검진의 세밀한 부분까지 검토하고 지침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최충호 교수님은 제가 만난 분 중 가장 부드러운 분입니다. 최 교수님의 부드러움에서 흘러나오는 설득력은 심금을 울리는 정겨움이 있습니다. 정세환 교수님은 정책통이자 기획통입니다. 산업구강보건의 여러 논점을 구조화하고 정리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분입니다. 그의 글은 매끄럽고 간결합니다. 그의 성품처럼 말입니다. 

직업성 치아부식증은 우리나라 산업구강보건에 기록될 역사적 질병입니다. 첫 번째 이자 유일한 법정 직업성 구강병이라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산업구강보건의 중요성을 사회적 의제로서 알린 질병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1992년경 거의 모든 중앙일간지는 직업성 치아부식증문제를 기사로서 다룹니다. 이러한 사회적 관심이 결국 직업성 치아부식증을 직업병으로 인정받게 하고 특수건강진단제도에서 구강검진이 하나의 항목으로 굳건히 자리 잡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과정에 빼 놓을 수 없는 분이 김현덕 교수님입니다. 당시 개원의였던 그분은 진료를 접다시피 하면서 공단을 돌아다닙니다. 사진을 찍고 모형도 채득합니다. 노동자의 치아부식증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결과가 논문으로 나오고 이 논문은 직업성 치아부식증을 사회의제화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이후 두 번에 걸친 직업성 치아부식증에 대한 조사는 직업성 치아부식증 실태 파악과 관리를 위한 중요한 근거자료가 됩니다. 김현덕 교수님은 산구원 초기에 산구원을 지탱하는 대들보이셨습니다.

1997년 3월 19일 한국산업구강보건원 발기인 대회

산구협 시절 별로 함께 하지 못했던 저는 기록으로 그들과 함께 합니다. 

한영철, 조영수, 강신익, 전동균, 김혜영, 이상윤, 김진숙, 허진영, 최덕형, 고대호, 고소영, 박정삼, 이창엽, 김경수, 신승철, 권호근…· 

산구협의 가장 큰 공헌은 ‘산업구강보건’이라는 분야를 치과계에 자리매김하도록 한 데 있습니다. 이분들은 학술집담회를 통해 산업구강보건의 학문적 역량을 갖춥니다. 산업구강보건관련 문헌집을 정리하여 당위로서의 산업구강보건이 아니라 역량이 갖추어진 산업구강보건을 꿈꾸게 만들었습니다. 이 과정의 학술적 성과는 현재에도 혁혁히 자리합니다. 특히 강신익 교수님과 조영수 선생님이 정리하신 학술자료는 현재도 그 유용성이 너무나 큽니다! 김혜영 교수님은 산업구강보건역학에 일가견이 있는 분입니다.  

산구협이 발간한 『산업구강보건협의회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산업구강보건에 대한 전문잡지입니다. 학술자료를 모으고 역사적 사료로서의 근거와 가치를 갖도록 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신 분은 조영수 선생님입니다. 없는 자료는 조영수 선생님께 문의하면 어디선가 자료를 찾아 주실 만큼 조영수 선생님은 사료저장고입니다. 조영수 선생님은 아마도 ‘우리나라 산업구강보건의 사관’이라는 칭호를 드려도 마땅하다는 것이 저의 주제넘은 생각입니다. 산업구강보건협의회지는 이후 산업구강보건-산업구강보건학술지 다시 산업구강보건 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집니다. 산구원 시절 이들 기관지를 편집해 주신 분은 마득상 교수님입니다.  

산구협부터 활동하신 고대호 선생님은 산구원 초기까지 김현덕 교수님과 함께 산구원의 실무를 맡아 주신 분입니다. 연자가 없으면 ‘고대호’ 할 정도로 산구원의 모든 분야에서 살림꾼 역할을 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살림꾼 역할은 한동헌 교수님으로 이어집니다. 한동헌 교수님은 우리나라 산업구강보건의 미래 역군입니다. 그의 활약은 최근 발간한 『특수구강검진의 교육자료집』에서 두드러집니다. 박우철 선생님은 서울대 교실원이었습니다. 김현덕 교수님을 도와 여러 실무를 맡아 주셨습니다.  

사람, 사람, 사람, 그리고 또 사람

1997년 산구원은 사단법인으로 변화하였습니다. 임의단체에 지원을 할 수 없으니 사단법인화 하라는 노동부의 권유가 변화의 동인이었습니다. 

김종배·정재규·문혁수·한영철·권호근·백도명·이흥수·김형룡·최충호·강신익·고대호·고소영·김경수·김광수·김권수·김영남·김옥희·김원범·김진숙·김현덕·김형돈·김혜영·김호상·박상태·박인순·배강원·손정일·송학선·신동근·신명식·오현·유영재·이상윤·이상훈·이영희·이정옥·이창엽·전동균·전민용·정창권·조기종·조본경·조영수·허진영 선생님이 발기인으로 참여합니다. 

초대 이사장으로 김종배 교수님이 취임합니다. 얼마 전 故 문혁수 교수님 장례식 때 일입니다. 서울대 교실원 한 분이 말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대학원 다닐 때 김종배 교수님이 지금 나보다 훨씬 나이가 적으셨었어… 그런데 그 카리스마가 참!” 맞습니다. 김종배 교수님의 카리스마는 정말 대단합니다. 그러한 카리스마로 산구원을 이끕니다. 사상 처음으로 한국산업구강보건목표가 설정·제시 됩니다. 정부가 국가구강보건정책목표 조차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당시에 한국산업구강보건목표라니요? 그분의 스케일이 묻어나는 사건입니다! 

산구원 학술지가 연 4회 발행됩니다. 2대 이사장을 맡으셨던 故 문혁수 교수님이 쓰러지신 후 다시 산구원을 추스르신 분도 김종배 교수님이셨습니다. 아마 故 문혁수 교수님과의 인연으로 함께 하셨을 서울대 백도명 교수님은 산구원의 창립 때부터 산구원과 함께 하신 분입니다. 여러 차례의 강연 및 토론 등을 통해 우리나라 산업구강보건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신 분입니다.

신동근 선생님은 김종배 교수님께서 이사장을 맡으셨을 때 감사 등의 역할을 수행해 주셨습니다. 고소영 선생님은 작업장 현장을 자주 찾으신 분이자 노동자 계속구강건강관리제도 표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김종배 교수님이 퇴임하시면서 산구원은 위기를 맞습니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하신 분이 김광수 교수님입니다. 그러나 그는 구원투수가 아니라 선발투수였습니다. 산구원을 정비하기 시작합니다. 치과의사로만 운영되던 산구원에 다른 인력이 대거 참여합니다. 노동계의 조기홍 선생님, 치위생계의 황윤숙 교수님이 대표적인 분들입니다. 조기홍 선생님은 ‘산업구강보건’을 노동계에 알리는 창구역할을 해주셨습니다. 한국노총기관지에 구강보건관련 칼럼을 싣게 해주셨고, 노조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구강보건교육도 주선해 주셨습니다. 

황윤숙 교수님은 산구원의 웹진을 만드신 분입니다. 그의 주 종목인 구강보건교육이 산업구강보건분야에서 이루어지도록 교육목표 설정에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산업구강보건교육하면 김경미 교수님이 떠오르게 만든 분도 황윤숙 교수님이셨습니다. 김경미 교수님의 산업구강보건교육 경험담을 듣고 있다 보면 ‘참 좋겠다. 교육과정에 참여한 노동자분들은!’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옵니다. 

선발투수이신 김광수 교수님은 산구원 홈페이지를 개통합니다. 황윤숙 교수님을 뒤이어 최부근 교수님이 홈페이지 문지기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알뜰살뜰 꼼꼼함이 홈페이지에서 묻어납니다. 김광수 교수님은 근로자구강보건행태조사를 실시합니다. 국정감사에서 이 자료가 인용되어, 구강검진의 중요성이 다시금 환기됩니다. 조직강화 워크숍을 개최하고, 노동부를 방문하고, 노동자구강건강증진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 30주년 기념사업에도 산구원이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견인합니다. 

이주노동자에게도 관심을 보여줍니다. 산업보건계의 임상혁 선생님과 관계를 맺은 것도 이때의 일입니다. 산구협의 핵심멤버이셨던 전동균 선생님의 소개입니다. 전동균 선생님은 저의 애원(?)을 들어주신 몇 안 되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 전국네트워크 때도, 산구원이 어렵다고 제가 징징댈 때면 늘 도움을 주곤 하셨습니다. 김광수 교수님은 열정이 넘치시는 분입니다. 그의 불같은 성격은 구강보건팀 해체에 항의하는 1인 시위에서 잘 나타납니다.
                             
김진범 교수님은 제6대 이사장이셨습니다. 외유내강의 전형이라고 지칭할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러움 속에 강력함과 끈기를 소유하신 분입니다. 문송면 군을 추모하면서 개최된 산업구강보건 이야기 한마당은 그분의 모습을 잘 보여준 행사였다고 생각합니다. 

신순희 선생님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구강진료’에 대한 보고는 심금을 울리는 강연이었습니다. 감동을 받은 저는 학생들에게도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원광대에 초청하였습니다. 이른바 ‘요즘 젊은이’에 해당되는 학생들이 이 이야기에 공명할 수 있을까 우려 반 기대 반이었습니다. 강연 처음에는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던 학생들이 강연 후반에 들어서면서 그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진정성이 얼마나 큰 힘인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김진범 교수님 때는 산구원의 관심이 보다 넓은 곳으로 향하는 시절이었습니다. 삼성백혈병 사망사건, 노동자의 건강의 주요 이슈 등이 논의되고 검토되면서 연대와 협력의 중요성이 더욱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사업계획을 3년 단위로 검토하게 된 것도 김진범 교수님이 만드신 틀이기도 합니다.

장기완 교수님은 산구원 전북지부장이십니다. 이사는 아니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늘 산구원 행사에 같이 해주셨습니다. 오류를 지적하여 다시 성찰하게 만드시는 분입니다. 분류와 정리, 꼼꼼함은 그 분의 대명사입니다. 20주년 기념자료집이나 특수구강검진의 자료집에서 보여 주신 세심함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1997년 5월 3일 한국산업구강보건원 창립대회

함께 하는 사람들의 길고 긴 여정으로의 초대

현재 저와 함께 산구원일을 함께 주시는 분들의 이야기로 길고 긴 제이야기를 정리하고자 합니다. 박상태 선생님은 총무이사를 맡아주시고 있습니다. 산구원과 건치 연계 강화라는 대명제 속에서 그 역할을 마다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전성원 선생님은 산구원에서 감사 등을 역임하시는 등 오랜 역할을 해주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소개를 하는 이유는 감히 향후 산구원 이사장을 맡아주셔야 할 분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김철신 선생님은 늘 기발한 아이디어와 유머를 전달해주시는 분입니다. 이병진 선생님은 교수라는 굴레를 벗어버리고 예방치과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분입니다. 임현대 교수님은 구강내과를 전공하신 분입니다. 저와 많은 길을 같이 가고 있는 분이기도 합니다. 차재원 선생님은 구강외과를 전공하셨고, 다방면에 관심을 가진 분입니다. 

홍민경 선생님은 산구원의 실무를 맡아 노고를 아끼지 않고 계신 분입니다. 마치 산구원일을 즐기시는 것처럼 신명나게 일을 수행해 주셔서 언제나 즐겁고 든든하기만 합니다. 김인자 선생님은 원광대에서 박사학위를 얼마 전에 취득하였습니다. 마치 저의 보좌역처럼 일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2007년 10월 26일~27일 한국산업구강보건원 학술대회

사실 산구원의 사람들은 이보다 더 많습니다. 제가 잘 몰라서, 너무나 빠른 시간 내에 기억해내야 했기에, 지면의 제약으로, 미처 소개해드리지 못한 분들이 많습니다.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현재 산구원의 모습은 제가 소개를 드렸든 그렇지 않았든 모든 분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역사입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제가 청탁받은 원고의 주제 중에는 산구원의 과제가 있습니다. 그 과제는 함께 할 낙타를 모으는 일입니다. 낙타가 많으면 오아시스를 발견하기가 더 용이해지겠지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힘든 줄도 모르겠지요.       

제가 건치에서 활동하던 시절 산업보건분과를 선택했던 것은 아마 송학선 선생님께서 강연에서 들려주셨던 ‘문송면 군 사건’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송학선 선생님은 짧은 말씀으로 저를 사로잡았지만 저는 길고 긴 이야기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산구원의 사람이 되어주십시오! 

*기고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흥수 (한국산업구강보건원 이사장, 원광대학교 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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