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한계와 싸우는 게 법의관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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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한계와 싸우는 게 법의관의 일”
  • 안은선 기자
  • 승인 2017.08.14 17: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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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이 만난 사람들 ⑱] 치대 출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이원준 법의관

치과계 이색인물을 만나고 있는 본지의 기획인터뷰 『전민용이 만난 사람들』이 이번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이원준 법의관을 만났다.

이원준 법의관은 1992년 전남대학교 치과대학에 들어가, 동대학 병원에서 구강내과 수련을 받고 2001년 졸업했다. 이어 2004년부터 2년 동안 서울에서 평범한 페이닥터 생활을 하다, 2006년 영국 스코틀랜드에 위치한 던디대학(University of Dundee)으로 법의학을 배우기 위해 떠났다.

이원준 법의관은 던디대학 석사 과정에서 법의인류학을 공부했으며, 이어 얼굴복원을 주제로 동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3년 약 7년간의 유학생활을 끝으로 귀국해 서울대법의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다 지난해 6월 18일자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에 법의관으로 발령 받았다.

아울러 베트남평화의료연대(이하 평연)에서 2004년부터 2016년까지 활동하면서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이하 건치) 회원들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치과대학 졸업생 치곤(?) 조금은 특별한 진로를 선택한 이원준 법의관을 지난 7월 28일 가산동 인근에서 만났다.


-편집자

▲이원준 법의관

흥미 없던 치의학에 관심 열어준 ‘법치의학’
보람 있고 즐거운 일 찾아 영국 유학길 올라

전민용(이하 전) : 반갑습니다. 치대를 나와서 국과수에 들어간 의외인 것 같아요. 어떻게 해서 이런 진로를 선택하게 됐나요?

이원준(이하 이): 3수 끝에 전남치대에 들어갔어요. 입학해서도 사실 공부에 흥미도 별로 없고 해서 그냥 동아리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게 좋아서 그러고 다녔죠. 치대에 간 것도 사실 어머니의 의지(?)가 많이 작용한 부분도 있고.

전 : 그런데 공부를 정말 오래하셨는데….

이 : 참 인생이 그렇더라구요. 아무튼, 학생운동도 활발할 때라 동아리 사람들하고 술 마시는 재미로 학교를 다녔어요. 예과 2학년 때 성적표를 받고 ‘이러다 본과로 진학도 못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전 : 정말 열심히 놀았나보군요.

이 : 네. 그래서 군대를 가자. 군대 가서 정신을 차리자. 그래서 일반 사병으로 군대에 갔어요.

전 : 보통 공보의로 가는데. 그것도 참 독특하네요. 다녀와서는 어땠나요?

이 : 여전히 공부는 재미없더라구요. 그래도 그 전보다는 철이 좀 든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유급 없이 졸업도 하고.

전 : 공부랑 담을 쌓았다고 말씀하시는 데 법치의학 쪽엔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된 건가요?

이 : 본과 3학년 때 법치의학을 배우면서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 때가 진로를 고민하는 중이었는데 주변 친구들을 보면 임상에 뛰어난 사람들도 많고, 그렇다면 긴 인생에서 보람 있고 재밌는 일은 뭘까 고민하는 중에 법치의학을 접하게 됐어요.

본과 4학년 때 여기저기서 조언을 구하는데, 김병국 교수님이 법치학과 관련이 있는 구강내과를 전공할 것을 추천하시더라구요. 그러면서 법의관을 지내신 연세대 김종열 교수님을 연결시켜 주셔서 김종열 교수님께 여러 가지 조언을 얻었습니다.

전 : 법치의학을 선택하는 데 주변의 만류는 없었나요? 쉽지 않은 길이기도 하고….

이 :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담담하게 선택의 순간들을 피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주변 친구들이 특히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럼에도 응원의 목소리가 더 많았어요.

아마, 어머니가 가장 힘들지 않으셨을까 해요. 석사 받겠다고 갈 때 제가 36살이었으니까 이래저래 걱정되셨을 것 같아요.

아무튼, 구강내과 수련 마치고 2004년부터는 서울로 올라와서 페이닥터 생활을 했어요. 그때 잠시 건치에 적을 두기도 했고, 그러면서 평연에도 참가하게 됐어요. 이제까지 해외에 나가 본 일이 없어서. (웃음)

평연하면서 좋은 분들을 많이 알게 됐어요. 홍수연 선생님부터 시작해서 부산에 계시는 조기종 선생님도 부산 갈 때마다 찾아뵙기도 하고요. 정효경 선생님, 정제봉 선생님, 배상범 선생님도 그 때 다 알게 됐죠. 정성호 선생하고는 동기이기도 하고 원래 친했어요.

특히 홍수연 선생님 소개로 강신익 교수님을 알게 됐어요. 2005년쯤에 강 교수님을 만나서 영국 유학이나 법치의학 쪽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 주셨어요. 당시에 강 교수님은 사회의료, 의료철학 같은 걸 연구하고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됐어요.

전 : 오, 건치와는 또 그런 인연이 있군요.

이 : 고향이 순천이고, 학교도 전남대다 보니까 광전건치에는 아는 분들도 많아요.

독립된 ‘해부학과’ 덕에 법의인류학 공부 가능
Simple Life, High Thinking! 선택은 과감히!

전 : 이제 영국 유학 이야기를 좀 들어볼까요? 던디 대학은 처음 들어보는데 어떤 곳인가요?

이 : 스코틀랜드에 있는 대학이에요. 한국인도 적고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곳이죠.

영국은 조금 독특하게 해부학이 의학과에 포함된 게 아니라 독립된 과로 존재해요. 해부학이 의학보다 오래됐고 또 전통을 가지고 있어서 의대가 아니라 생명과학대에 속해 있어요. 그래서 카데바 실습실도 생명과학대에 설치돼 있어서 의대생, 치대생들이 생명과학대에 위탁교육을 받은 형태에요. 그래서 법의학, 법의인류학을 연구할 수 있는 토대가 있는 거죠.

그래서 1년 정도 해부학을 공부하고 다른 분야로 진출하시는 분들도 있고, 꼭 의과가 아니라  생물학 분야 연구자들도 많이 오고, 저처럼 법의인류학을 연장선에서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전 : 우리와는 다른 시스템이네요.

이 : 제가 공부한 곳은 CAHID라고 하는, Center for Anatomy Human IDentity라는 곳이었어요. 생명과학대에 소속된 곳이에요.

전 : 고고학이라던지 뼈를 연구한다던지 하는 다양한 것이 가능했겠네요.

이 : 독립된 과로 존재하니까요.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수요도 있어서. 어떤 면에서는 우리와 비슷해요. 돈 안되면 거기서도 안되는 과에요.

제가 막 유학할 당시에 CSI 이펙트라고 해서, 미국 드라마 CSI 때문에 법의학을 하려는 학생들이 몰려드는 시기였어요. 저처럼 치의학이나 의학을 공부한 사람도 있었지만 아예 다른 일을 하다 온 사람들도 많았어요.

생각보다 이걸 배우러 온 여성분들이 많았어요. 실제로 비율도 높고.

전 : 다른 나라 여학생과 사귀기도 했나요?

이 : 능력이 안돼서….

전 : 우리나라에는 의대나 치대 말고 카데바를 쓸 수 있는 곳이 있나요?

이 : 없죠.

전 : 인류학 분야라던지 활용분야가 넓을 것 같은데 말이죠.

이 : 학생 교육 등, 본질은 다르지 않고, 아까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영국은 해부학이 독립된 과이기 때문에 의대나 치대 출신이 아닌 사람에게도 열려있어요.

우리나라에서의 법의학은 의대나 치대학생이 접근하면 그래도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잘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이긴해요.

사실 법의인류학이라는 게 체질인류학이라고 해서, 골격 등을 보고 인종을 계측하고 하는 학문에서 시작한 것인데, 범죄 사건에 있어서 신원확인을 위해 응용학문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인류학에서 출발한 것이죠.

고고학과 학생 중에도 고대인류 연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뼈를 공부하고 싶어할텐데, 그런 부분에서 우리나라의 시스템이 폐쇄적인 건 좀 아쉬워요.

▲전민용 대표

전 : 학교생활은 어땠나요? 학비 같은 건 어떻게 하셨나요?

이 : 학비는 1년에 7~8천 파운드 가량 들었어요. 생활비 같은 건 전공의 때 또 페이닥터하던 때 벌어놨던 돈으로 석사를 버텼죠. 그리고 박사 때도 비슷하게 들었던 것 같아요. 그 땐 조교 같은 것도 할 수 있으니까요.

학교가 스코틀랜드에 있다 보니까 시골(?)이라서 자연도 너무 아름답고, 그래서 여행도 여기저기 다녔어요.

전 : 던디대학엔 한국인이 별로 없다고 했는데, 혹시 인종차별이라던지 이런 일을 겪진 않았나요?

이 : 유학 가기 전엔 서양인에 대한 편견이랄까? 개인주의적일거란 생각을 많이 했어요. 석사 때 동기가 14명이었는데 영국인이 제일 많고 주로 미국이나 캐나다, 중동에서 온 친구들이었는데 제게 불편하지 않은 관심을 많이 보여줬어요.

너무 가까우면 상처도 받기 쉽고 그런데, 막 한국인들처럼 그런 건 아니지만 뜻밖의 기대하지 않았던 제게 인간적인? 정? 같은 걸 준다는 걸 느꼈어요.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한가 싶기도 하고.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팍팍하기 보다는 좀 타인에 대해 너그러운 면이 많은 것 같아요. 제가 본 스코틀랜드의 정서는 잉글랜드에 핍박 받은 역사가 있어 그런지 외국인데 대해 많이 열려있고, 그래서 우려했던 것 보다는 잘 적응하고 스며들었던 것 같아요. 내가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면 그쪽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주고. 물론, 학교라는, 특수한 공간 때문에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학교는 안전한 공간이니까요.

전 : 언제 한국으로 돌아오셨나요?

이 : 2014년에, 7년 만에 박사 학위를 따고 돌아왔어요.

전 : 굉장히 공부를 오래 하셨는데, 배우자가 많이 힘들어하진 않았나요?

이 : 사실 결혼한 지 얼마 안됐어요. 7년 만에 박사학위를 따고 2014년에 들어와서 그 다음해에 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하고 싶은 공부도 하고, 자유롭게 여행도 많이 다니고 그랬네요.

전 : 들어보면 인생을 상당히 역동적으로,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 사신 것 같네요.

이 :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려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고, 선택의 순간들이 오면 담담하게 선택했던 것 같아요.

몸의 증거는 ‘유한’ 시간과 싸우는 게 ‘법의관’
후배 위해 새로운 길 열고 닦는 게 현재의 일

전 : 언제부터 국과수에서 일하시게 됐나요?

이 : 한국에 들어온 게 2014년이고, 처음엔 서울대학교 법의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2016년 6월부터 국과수 법의관으로 일하게 됐어요.

원래는 국과수에 법치의학자는 1명뿐이었는데, 작년에 행정안전부 정책이 바뀌면서 법의관 인력증원이 이뤄지게 됐어요. 그래서 자리가 나서 경희대 출신의 노병윤 선생님과 함께 채용됐어요. 현재는 3명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전 : 국과수가 행안부 소속이군요. 보건복지부라고 생각했는데….

이 : 그래서 불필요한 오해를 받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전 : 검찰과 경찰 수사에 있어서 독립성이 필요하긴 하지만, 대표적으로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으로 불신이 있기도 하죠.

이 : 감정분야가 크게 이공학, 생명, 화학, 약물, DNA, 부검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필적 감정은 요즘은 디지털포렌식 분야에서 다루죠.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지탄받아야 할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법의학이 과학적인 증거 분석과 논리에 입각해 객관적인 목소리를 내는 분야기 때문에, 의사가 양심에 입각해 치료하듯이 법의관도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검증하는 것이죠. 외력에 휘둘려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전 : 법의관의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 : 사실 몸이 말해주는 것, 부검 등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의 한계는 명확해요. 시간에 의해 사라지기 때문에. 그런 한계와 싸우는 것이 법의관입니다.

전 : 이제 그러면 1년 정도 근무를 하셨는데, 보람된 일이 있다면?

이 : 드라마틱하게 사건 해결에 일조를 했다던지 하는 일은 아직 없습니다. 그리고 드라마의 영향인지는 모르겠는데 부검하면 모든 사인이 다 밝혀질거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아요.

법치감정을 통해 사람의 신원을 밝히거나 매칭하는 일, 그 다음으로 얼굴복원을 주로 하는데, 그 부분이 결정적인 단서가 돼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된다던지 하는 일은 아직은 없어요.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전 : 그래도 꼭 필요한 일을 하시는 데, 직업자체가 주는 만족감 같은 건 뭐가 있을까요?

이 : 일단 법의학 감정은 힘든 일이에요. 이직율도 높고. 그런데 재미없는 일은 아니에요. 신원확인이 뚝딱하면 되는 게 아니란 걸 알고, 긴 과정과 노력, 많은 돈이 투여돼야 해결이 될 듯 말 듯 한 걸 과정 중에 알게 됐기 때문에, 드라마틱한 해결을 생각하지 않고 과정과 과정 사이에서 작은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전 : 힘들고 이직률이 높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 : 사실 법치학보다는 부검 법의관들이 고생을 많이 해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어려움이 많아요. 법치의적인 부분이 필요하면 같이 부검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많이 없어요.

그리고 법치의학에서는 백골화된 시신의 얼굴복원이 주된 업무고, 외람된 말이지만 백골화된 시신을 보는 게 좀 덜 괴롭기도 하고요. 시간이나 노동력이 드는 면에서도 법치의학이 덜하죠.

전 : 신원파악이나 얼굴복원 같은 것 말고도 다른 일도 하시나요?

이 : 그래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이기 때문에 실무도 하지만 연구도 병행해야 해요. 연구도 중요한 데 병행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연구라고 하면, 얼굴복원의 기본원리부터 실무에서의 성과들, 해외 사례를 연구하는 게 대부분이에요. 우리나라의 경우 법의학 역사가 짧아서, 한국인 특성에 맞는 연구의 깊이도 아직 얕은 편이고, 뼈를 분석해서 눈코입의 모양을 예측하는 게 쉽지 않아요. 기존 데이터를 가지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연구도 경험도 더 깊어질 필요가 있어요.

전 : 더 연구돼야 할 부분이 많겠네요.

이 : 네. 예를 들면, 우리나라가 다문화 사회가 됐는데도 인종별 치아 특성에 대한 연구는 부족하죠. 이론적으로 배우긴 했지만 아직 부족해요.

전 : 결국 알파고 같은 컴퓨터가 이런 일을 대신하지 않을까요?

이 : 그래도 기본자료는 필요해요. 치아를 보고 나이를 추정하는 것도 치아의 마모도, 치아 절단면 등 변화되는 요소들을 예전 연구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데이터는 필요하죠.

전 : AI 개발자의 딜레마가 AI가 어떻게 이걸 분석해내는지 모른다는 데 있다고 하는데, 데이터가 많으면 해결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 : 실제로 DNA를 가지고 실험이 되고 있고, 감정하고 연구가 진행되고 있어요. 연구소에서 해야 할 일은 이 부분도 들어가요. 그런데 아직은 그런 부분에서 벅찬 것 같습니다.

▲(좌) 이원준 법의관 (우) 전민용 대표

 전 : 선배 법치의학자로서,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 줄 말이 있을 것 같아요.

이 : 전에도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치과의사의 영역 확장 이라던지 직업의 다양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기에 법의학이나 법치의학은,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수요가 있는 직업은 아니에요.

이 안에서 새로운 길을 또 만들어 내는 게 현직자들의 몫이라 생각하는데, 사실 부검은 계속 늘어나지만 법치의학은 그다지 수요가 높지 않아요. 치대 교과과정에서도 없어지는 추세고.

법치의학이라고 하면 구강내과를 전공해야 하고, 구강내과 안에서도 가르치는 분도 몇 분 안계시기도 하구요. 조선대, 연세대, 부산대 정도에 남아 있어요. 대학병원에서도 법치의학자를 뽑는 것도 아니고 해서 이렇다 할 정해진 길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얼굴복원으로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했지만, 공부를 했다고 해서 다 받아주는 건 아니니까요. 운 좋게 (국과수에) 들어가게 된 것도 있구요.

전 : 꼭 필요한데 수요가 적다. 좀 안타깝네요.

이 : 가끔씩 불러주셔서 강의를 나가면 흥미를 보이는 학생들이 많은데, 사실 내적으로는 그런 학생들을 이끌어줄 동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에요. 이제 법치의학자가 3명이나 됐고, 그런 토대를 만드는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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