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여지없이 달력 한 장만이 남았다. 매년 이 맘 때쯤이면 한해동안 거둔 수확에 뿌듯해 하기보다 년초의 계획과 성과간의 괴리감으로 아쉬운 점들이 더 많을 게다. 그런 점에서 올해의 치과계도 예외는 아닌 듯싶다. 하지만 잠시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한해를 결산하는 의미에서 어느 해보다 숨가쁘게 달려왔던 올 한해 치위생계의 길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많은 희비가 교차했던 2003년,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올해 치위생계의 가장 뜨거운 감자는 아마도 구강보건인력수급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4년제 대학 신설 및 증원, 진료보조인력 문제, 치과위생사의 업무 범위 등이 치과계 현안으로 떠올랐다. 구강보건인력수급 문제는 이미 지난해 대한치과의사협회(이하 치협)와 대한치과위생사협회(이하 치위생협)가 한자리에 모여 공청회를 가진 바 있다.
이후 치위생협에서는 그에 따른 구체적인 사업을 진행해 나가기 시작했다. 치과위생사의 업무현황 및 업무분장 등에 관한 실태조사에 착수해 바람직한 인력수급을 위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유휴인력활용을 위한 방안으로 휴직 후 재취업을 준비하는 회원들을 대상으로 재취업자 연수회를 실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치위생계의 노력과는 달리 올해 발표된 2004년도 치위생(학)과 신설 및 정원 증원의 발표는 충격적이었다. 국민의 구강건강을 도외시한 채 인력수급의 문제를 단순히 양적 증가만으로 해결하려는 단편적인 사고에 기인한 조치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또한 인력난을 이유로 (가칭)치과보조사를 도입하려는 치협의 움직임은 치과위생사의 업무 분장이 불확실한 현 상황에서 혼란만을 가중시킬 여지가 충분하므로 마땅히 재고돼야 할 것이다. 이렇듯 구강보건인력수급과 관련된 문제는 현재 이렇다 할 뚜렷한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 채, 치과의사와 치과위생사 모두가 지속적으로 고민하며 풀어나가야 할 과제로 여전히 남아있다.
구강보건교육전문가로 자리매김
산적한 미결 과제들로 마음이 무거운 한해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에서는 의미있는 일들이 진행되기도 했다. 치위생협에서 구강보건교육전문가인 치과위생사의 전문성을 살려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일들을 적극 찾아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장애인 및 소외집단을 위한 구강보건사업의 일환으로 국내 최초로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點字) 그림책을 발간했다. 구강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시·청각 장애인을 대상으로 제작된 이 책자는 비단 그들뿐만 아니라 장애인진료에 참여하는 치과위생사들에게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다.
더욱이 책자를 구매할 때마다 구매자의 이름으로 주문한 수량만큼 장애인 복지재단에 기증을 해 주는 ‘원 플러스 원’ 운동으로 확대되어 그 가치와 의미를 더하고 있다. 더불어 차량 3대를 지원 받아 보다 기동력 있고 적극적인 활동이 기대되고 있으며, 현재 치위생협 홈페이지의 ‘사랑나눔터’ 게시판을 통해 봉사활동에 대한 회원들의 관심과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또 한가지는 표준화된 구강보건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매체를 보급하기 위한 일환으로 소아환자나 유치원 아동을 대상으로 한 구강보건교육 매체가 개발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적절한 교안과 교육매체에 목말라 하던 구강보건교육자들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고, 현재 본 매체를 활용한 구강보건교육이 전국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며, 이후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사업으로 계속 확대될 예정이다.
이 모든 일들을 진행함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치위생협 홈페이지다. 일일 평균 접속건수가 약 3,500여 건으로 전국 2만 5천여 회원들을 한 공간으로 결속시키는 구심점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오고 있다.
시도회의 소식과 정보를 알리는 시도회 게시판에서부터 봉사게시판, 회원정보 관리 및 보수교육현황까지 확인할 수 있는 회원관리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컨텐츠를 갖추어 명실공히 치과계 내에서 가장 활성화된 정보의 장으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또한 앞으로도 치과위생사들의 다양한 활동과 정보교환의 공간으로 큰 몫을 담당해 나갈 것이다.
이 외에도 치과전문의제도 시행에 따른 전문 치과위생사의 교육 프로그램 활성화, 의료시장 개방에 대비한 치과위생사를 위한 영어회화 테잎 개발 등 다각적인 방면에서 많은 사업들이 진행 중에 있다.
간략하게나마 올 한해를 결산해 보면서 이미 이룬 성과보다는 앞으로 이뤄내야할 일들이 많음을 새삼 느낀다. 더욱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빛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더 찾기 쉽다고 했다. 새해에는 국민의 구강건강과 치과계의 발전을 위해 막힌 담을 과감히 허물고 서로의 지혜를 모아 원안(遠眼)으로 비전을 제시하며 실천해 나가는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영남(편집위원, 경복대 치위생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