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생의 영화한편] 가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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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생의 영화한편] 가위손
  • 강재선
  • 승인 2004.01.05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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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단체관람으로 본 ‘엄마 없는 하늘아러 이후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펑펑 울었던 것이 8년 전, 96년 크리스마스이브, ‘가위손’을 볼 때다.

그게 뭐 그리 슬프냐며 생뚱맞은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지만, 앙상한 가로수에 전구들이 화려한 빛을 발하고 거리에 캐롤이 울려 퍼지는 시즌이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영화이기도하다.

네모난 뿔테안경의 영화평론가가 ‘놓치지 마십시오’라고 추천한 주말의 명화 이외에는 사실 특별한 취향을 갖지 못했던 내게, 감독과 배우와 다양한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준 몇몇 영화중의 하나다.

1990년에 제작된 ‘가위손’은 독특한 취향의 작가주의 감독 팀 버튼의 판타지다. 창백한 무표정으로 섬세한 내면을 표현한 조니뎁 때문일까, 몽환적인 음악에 취해서였을까.

아니면, 크리스마스와 재시가 늘 함께 했던 때문일까. 자기비하와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상실감에 허우적대던 때, 옆에 있어준 친구 덕에 긴장이 풀려서였을까. 내 모습은, 가위손을 가진 무채색의 에드워드였던가, 색감만 따뜻했던 마을사람들이었던가.

내 눈물은 에드워드에 대한 동정이었을까, 순수함을 잃어버린 내 자신에 대한 동정이었을까. 눈이 퉁퉁 붓도록 한참을 울고 난 후, 하늘에서 눈이 왔는지, 삼시는 피했었는지….

새해가 밝는다고 하여 책상을 정리한답시고 온 서랍을 뒤지며 먼지구덩이 속을 헤매다가, 문득 아주 깨끗한 노트 한 권을 발견했다. 영화잡지 부록인 듯한 하드커버의 그 노트를 펴니, 내 글씨가 아닌 다른 글씨가 영화에 대한 짧은 평을 적어 놓았다.

다음 장부터는 아주 깨끗하고, 몇 장을 뜯어낸 흔적이 보인다. 어설픈 글쓰기는 시작도 없이 끝나버렸다. 피식 웃음이 났다.

‘가위손’을 추천해주고 함께 봤던 남자친구가 준 영화감상노트다. 갑작스레 발견된 첫사랑의 흔적이 다시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든 근본적인 이유다.
처음. 참 가슴 설레는 말이다.

무엇이든 처음이라는 말이 붙는 기억은 아름답다.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덧붙임 : 필자가 비디오를 빌려보며 또다시 눈물을 흘리던 그 시각, TV에서도 ‘가위손’을 방영해 줬단다. 이래저래 눈물이 앞을 가리는 영화다.

강재선(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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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ience 2011-10-18 00:40:57
Great stuff, you helepd me out so m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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