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불사업이 민주주의에 반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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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불사업이 민주주의에 반하는가?
  • 서대선
  • 승인 2005.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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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변호사의 반수불론에 대한 반론..

프레시안에 실린 하승수변호사의 "수돗물 불소화는 왜 민주주의에 반하는가"라는 제하의 글을 읽고 몇가지 반론을 제기하고자 한다.

이 글은 오래전에 쓰여졌지만 프레시안에 기고하지는 않았다. 수불에 대한 프레시안 측의 부정적 뉘앙스를 느꼈고, 실어줄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승수 변호사의 주장중에 일면 타당한 지적이 있긴 있지만, 수도물불소농도조정 사업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들이 꽤 많아서 늦게나마 반론을 '건치신문'에 기고한다.

◆ 하승수님은 일단, “불소의 유해성이나 보건정책으로서의 적절성(불소화의 충치 예방 효과 등)에 대해서는 과학적 견해가 다를 수 있다'고 전제한다. 하지만 과학적 [견해]는 다를 수 있지만, 과학적 [사실]은 다를 수 없다.

[견해]는 한 개인이 선호하는 가치가 담긴 증명되지 않거나 또는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위에서 말한 [보건정책]에 대해서는 발언할 수 있다. 그러나 불소의 유해성이나 안전성, 효과성 등과 같은 "검증된" 과학적 [사실]은 서로 다를 수 없다. [사실판단]에서는 반드시 어느 한쪽이 옳거나 그르다.

[정책]이라는 것은 가치판단을 다루는 곳이다. 그 정책이 인권에 상충되는냐, 부합하느냐,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되는가, 합당한가는 당연히 고려사항이 되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 [정책]에 대한 가치논쟁은 불가피하다. 가치논쟁의 끝은 [합의]에 이르는 것이다. 정치의 영역인 [정책]은 [합의]를 목적으로 한다.

님이 주장한바, “수돗물 불소화 사업이 공중 보건 사업이라고 하더라도 정책의 결정 과정은 투명하고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말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간 장향숙의원이 제출한 구강보건법 개정안 자체가 투명하게 충분히 공론화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전문가 집단(특히 건치)조차 법안 내용 자체를 잘 모르고 있었던게 사실이다. 법 입안자들이 이번 사태를 너무 아니하게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공중 보건 정책이기 때문에 마치 전문가가 아닌 사람은 이야기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주장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는 님의 주장은 전적으로 오해이다. 전문가들은 비전문가들에 대해서 정책과정에서 소외시킨 적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왜냐면 인천지역이나 전북지역에서는 많은 비전문가 그룹, 소위 시민단체들이 이 사업을 실시하라는 정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 왔기 때문이다.

수불과 관련해서 전문가들은 비전문가를 정책참여과정에서 소외시킨게 아니라 비전문가인 [사이비 과학자]들을 배제해 왔다. [사이비 과학자]라 칭하는 것은 수불에 대한 과학적 사실판단에 대해 그들이 검증된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 인권의 측면에 있어서 "수돗물 불소화가 논란의 대상"이라는 말은 사실 인권의 측면에서 "공중보건사업이 항상 논란의 대상"이라는 말과도 같다. 우리나라 공중보건사업중 개인의 선택권과 무관하게 강제 집행되는 공중보건사업은 많다. 급성호흡기 질환이나 전염성질환에 대한 예방접종이외에도 수돗물 염소소독이 그것이다.

수돗물 염소 소독시 잔류염소에서 트리할로메탄이라는 발암성 물질이 검출된다는 보고도 있다. 불소보다 맹독성의 염소소독에 대해서 침묵하는 이유를 난 잘 모르겠다. 혹시 효과가 검증되었으므로 위 인권 문제가 용인되는 것인가. 염소소독이 인권과 민주주의 원칙에 맞다면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는 그 설명이 듣고 싶다.

하승수 님이 주장한 ‘자기 건강 관리권’이라는 용어는 법률적 용어인가. 생소한 이 권리와 헌법 36조 3항에 규정된 ‘보건권’, 그리고 헌법 35조 1항에 보장된 ‘건강할 권리’와는 무엇이 다른가. 수불을 시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기대고 있는 헌법상 권리는 <헌법 36 조 designtimesp=21377>의 ‘보건권’ 즉 ‘건강권’이다. 이들 건강권을 무시하고서는 우리나라의 모든 공중보건사업이나 방역, 검역, 전염법 예방법, 식품안전에 관한 법률등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헌법상 규정된, ‘보건권’. 건강권’이 자유권적 기본권에 속하는 개인의 선택권을 침해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고 한다면 님은 극단적 보수우파 자유주의자의 입장을 두둔라고 있는 것이다. 민주적이며 합법적 정부가 시행하는 세금징수도 개인의 선택권을 침해하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세금징수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멀리는 생태주의자의 아버지 헨리 데이빗 소로우(멕시코와의 전쟁에 반대한다는 뜻에서 주민세를 납부하지 않긴 하였지만...)로부터 가까이는 강남 부동산 투기꾼들의 탈세에 이르기까지. 우리헌법에는 무한정한 자유권 제약에 대한 법안이 있다.

헌법 37조 2항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designtimesp=21382>

이 구절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인정하는 자유권 제약의 원칙이다.

이 점에서 님의 주장은 헌법상 두 가지 권리(자유권, 사회권)에서 한가지 만 편의적으로 차용하여 논리를 전개했다는 측면에서 편견에 빠져있음을 알 수 있다. 인권은 자유권, 사회권으로 분리되어 적용할 수도 없거니와 그 세세한 내용에 있어서 우선순위가 없다. 자유권과 사회권을 동시에 추구해야할 가치라는 측면에서 인권은 “통합적 권리”이다. (인권의 "불가분성")

수돗물 염소소독은 어떤가. 님의 논리대로라면 공공재인 수돗물에 발암물질인 트리할로메탄이 생길 수도 있는 염소소독이 원치 않는 사람에게 공공재인 수돗물을 이용할 권리와 선택권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얘기와 같다.

수돗물 자체가 이미 물 사용에 있어서의 선택권을 허용하는 근대적 식수체계이다. 지금도 수돗물 자체에 대해서 선택권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5명당 1 명꼴이다. 수돗물을 식수로 사용하지 않는 이들 1명은 이미 수돗물에 대해 선택권을 행사하고 있다. 위 하승수님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는 이미 원치 않은 염소소독 수돗물에 선택권을 박탈당하고 있다.

법해석에는 모름지기 일관성과 보편타당성이 존재해야한다. 법률 전공자의 님께서 불소화와 관련된 선택권과 건강권 사이에서 어느 한쪽의 의견에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 이런식의 편견은 합리적 의사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하승수님은 이미 “필자가 사는 지역에서 수돗물에 불소를 투입할 때에는 수돗물을 마실 수 없었지만, 불소 투입이 중단된 지금은 수돗물을 음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하승수님은 이미 수돗물에 대한 선택권을 충분히 누려왔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불소화 수돗물에 대한 분명한 선택권을 행사하신 님께서 선택권을 행사할 수 없게 만든다, 고 주장하는 것은 넌센스다.


◆ 수불 추진측은 하숭수님의 주장대로 “사회적 약자들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불소의 혜택을 보기에는 경제적, 신체적 능력이 부족하므로” 수불을 하자는게 아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의료기관 접근도가 취약함으로 하자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질병이 생긴 뒤에 적절하게 치료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이 대부분 없다.

초기 충치 하나를 치료하기 위해서도 많은 돈이 든다. 이를 방치할 경우, 치아를 발치해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경우 별도의 고가 보철치료비가 든다. 사회적 약자들은 이렇게 질병치료에 대한 경제적 지불능력이 떨어지므로 질병 자체가 생기지 않게 사전에 예방하자는 것이 수불사업이다. 사회적 약자가 경제적, 신체적 능력이 떨어져서 불소의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수불을 하자는 것은 교묘한 말 비틀기를 통한 반대를 위한 반대 논리일 뿐이다.

님이 주장하는대로 “불소 투입량이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적절히 조절되지 않으면 오히려 사회적 약자의 건강권이 침해된다"는 주장은 "~침해될 수도 있다"로 바꿔 질문하는것이 좋을 듯하다. 님의 이 주장은 단지 하나의 [주장]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판단]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수불추진측은 수불 전문가가 아닌 변호사로서 하승주님의 과학적 사실판단에 당혹스럽다.

그럼에도 위 주장은 비전문가인 님께서 충분히 제기할수 있는 질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라. 이것은 과거 60여 년 동안 시행되어온 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수불로 인해 사회적 약자의 건강이 조금이라도 침해되었다는 과학적 검증의기록은 없다. 많은 수불역학 연구논문들이 수불이 사회적 강자든, 사회적 약자든 안전함을 검증해 왔다. 이런 논문들은 하나의 기사나 이야기꺼리가 아닌 검증된 [과학논문]들이다.

"검증되었다 함’은 똑같은 조건 하에 어느 과학자가 실험하여도 "같은 연구성과(귀납 추론중 같은 과학적 인과관계)"나 비슷한 연구성과(귀납 추론중 통계적 유의미성이 있는 통계적 인과관계)를 나타낸다는 것을 뜻한다. 즉, 수불을 통해서 그 결과를 예측가능하고 설명가능하며 재현가능하다는 뜻이다. 이것이 과학이다.


하승수 님이 주장하는 바, "아이들이 불소화로 인해 과량의 불소에 노출될 수 있다", "고령자, 당뇨병환자, 신장 기능 장애자 등 병자는 불소의 독성에 취약하다", "영양 상태가 빈약한 사람들은 불소의 독성에 취약하다"(이 주장들에도 단순한 [주장]과 [과학적 사실판단]이 혼재되어 있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없는 주장이다. 아이들, 고령자, 장애자, 신장질환자, 고혈압환자 등과 같은 건강약자들에게도 0.8ppm을 함유한 수돗물 음용은 어떤 위해 작용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 논문들이 있다. 그러므로 님은 과학적 사실에 있어서 잘못된 정보를 글의 전제로 삼았음으로 “수돗물 불소화는 사회적 약자들의 건강권 실현에 적절한 수단이 아니다.”는 주장은 전적으로 잘못된 주장이다(선결 문제 요구의 오류-순환 논증의 오류). 미국의 경우, 수불이 잘사는 백인 보다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히스패닉, 흑인, 아시인들에게 더 효율적이라는 검증된 논문들도 적지 않다.


◆ 하승수 님이 주장하는바,“찬성론의 논리 속에는 사회적 약자에게도 선택권이 부여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고 오히려 우리가 이렇게 좋은 일을 해서 그들이 혜택을 볼 것이다 라는 막연한 시혜적 생각이 깔려있다”는 님의 주장에서 보듯이 찬성론자들은 수불을 선심쓰듯, 또는 마치 선행이라도 베풀듯 시혜적 정책으로 하려한다,는 식으로 찬성측을 매도하고 있다.

님의 이런 주장은 독선적 선입견에 기댄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수불은 시혜적 정책이 아니라 건강권을 요구하는 사회적 권리를 국가나 지방정부로부터 청구하는 적극적 권리 청구행위이다. [시혜]란 근대이전 왕이나 영주가 가난한 백성에게 일방적으로 은혜를 베푼다는 의미이다.

[시혜]가 [권리]로 바뀐 것이 근대의 출발점이다. 절대왕정이 베푼 시혜를 프랑스혁명을 통해 대리 통치자를 뽑고 국회를 구성하여 민중들의 요구를 국회를 통해 법제화하고 이를 시행하라고 강제한 것이 민주공화정의 시작이다. 수불은 헌법에 명문화된 권리를 청구하는 것이지, 시혜를 구걸하는 것이 아니다.

수불에 대한 선택권을 주장하면서 실시하지 말자, 라는 소극적 자유를 주장하는 반대론자들의 정치의식 때문에 오늘도 예방 가능하였을 수많은 치아들이 통증의 반란을 일으키고, 값비싼 보철치료를 요구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말자! 라는 논리는 곧 현실에 만족하자는 보수적인 지식엘리트나 기득권 층(부르드외가 말한 사회적 자본 포함)의 논리이다.

님이 주장하는바,“빈곤층이나 장애인들 중에서도 불소가 투입된 수돗물을 먹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님의 경우처럼 수돗물에 대해 선택권을 행사하면 된다. 지하수나 우물물, 경제적으로 어렵겠지만 생수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서민들은 반대론자들의 수불에 대한 겁주기식 선동의 사기성을 깨닫고 수불의 진실성을 접하고 나면 올바른 선택권을 행사할 것이다.

수불을 둘러싼 과학적 사기극은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 그래서 수불의 진실에 대한 홍보가 필요한 것이다. "빈곤층이나 장애인들 중에서도 불소가 투입된 수돗물을 먹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수불의 위해성 때문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 종교적 이유 때문에 불화 수돗물 음용을 거부한다면 어쩔 수 없다. 불화 수돗믈에 자체에 대한 선택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수불실시 진영은 님의 말대로 "우리가 이렇게 좋은 일을 해서 그들이 혜택을 볼 것이다, 라는 막연한 시혜적 생각“으로 이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님의 이런 생각은 수불찬성자들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요즘 누가 사회적 약자를 위하자면서 님이 주장한 그런 막 되먹은 생각을 가지고 선행을 할까. 이 건 너무 지나친 "인상비평"이다.

수불진영은 건강할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도시서민들이 그들의 건강할 권리를 정당하게 보장받을 수 있는 정부의 종합적인 보건의료제도(정책)을 수립하라는 요구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수불사업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측은지심이나 동정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들과 우리 모두가 세금낸 만큼 당연히 보장받아야할 건강권에 대해 정부에게 강력히 촉구하는 것이다.

님의 주장대로 “사회적 약자의 인권문제에 접근할 때에 가장 경계해야 하는 논리가 바로 '시혜적 논리'”일뿐만 아니라, 가장 경계해야할 논리가 하나 더 있으니 바로 님이 주장하는 "극우 보수주의적 관점의 논리"이다.

“그냥 내버려 두라.”, “그들이 사회적응에 실패한 것도 그들 책임이다.” 그들에게 복지 같은 것으로 도와주겠다는 발상은 사회주의식 발상이나 마찬가지다.”, “자본주의사회는 약육강식의 체제다.", "그런 실패자들을 정부가 돕는 것은 시장논리에 어긋난다.”, “내가 낸 세금이 거지들 호주머니 속으로 다들어 간다”, “충치가 생기는건 그들이 게을러서 양치를 안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금을 걷어 무책임한 그들을 도울 필요가 있는가.”등등...

님의 주장은 국민의 구강건강권이라는 사회적 기본권에 대해 가만히 있자고 주장하는 보수주의자의 주장과 똑같다. 시장이 그들의 구강건강권을 확보해 줄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길 바란다.

하승수님의 일방적인 주장대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그들의 인권은 우리가 제한할 수 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려면 우리가 그들의 문제를 결정해주어야 한다"고 수불진영이 그렇게 말한바 없다. 님이 일방적으로 수불진영은 아마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라는 잘못된 전제로 님의 논리를 풀어가는 것, 즉(선결 문제 요구의 오류-순환 논증의 오류)는 님의 글 전체에서 도처에 발견된다.

이런 님의 주장은 자신의 주장내에서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겪이다. 전제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있으니 님의 법적 논리 또한 오류투성이다. 이런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님이 과연 법을 전공한 변호사인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 보장되려면,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라는 님의 주장은 타당하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 명제에만 매달리기엔 그들 스스로 문제를 바라보고, 선택할 기회와 정보마저도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주의의 작동 메카니즘이다.

정보를 몰라서, 자신들의 권리주장 방법을 몰라서 적지 않은 권리들을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우리사회 [사회복지사]들이 하는 일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사회적 약자, 그들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일어서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 이것이 보건복지정책의 기초적 개념이다.


* 비례의 원칙이란 행정목적 실현을 위한 구체적 수단의 선택에 있어서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과 이로 인해 제한되는 개인의 권리사이에 일정한 비례관계가 존재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원칙으로 과잉금지의 원칙이라고도 한다.

◆수불이라는 공중구강보건 사업이 님이 말한 “과잉금지의 원칙(비례의 원칙)”에 위반 된다면 미국 60여년의 수불 역사상, 13번의 법원 판결이 선택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하여 기각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불은 국민들이 수돗물 외의 다른 물, 즉 물에 대한 선택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수돗물이 싫으면 얼마든지 다른 물을 마실 선택권이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불화 수돗물이 단지 과학적 안전성의 문제 때문에 선택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수불 실시 주관자(정부, 지방자치단체,전문가집단)가 과학적으로 안전함을 설득할 수 있으면 해결될 문제이다.

다만, 종교적, 심리적, 개인의 신념과 가치관의 문제 때문에 불화 수돗물이 개인의 선택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장은 [공공의 이익이 개인의 취향과 종교적 신념에 우선한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단지 선택권 때문에 불소화를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개인의 선택권이 공공의 이익에 우선하지 않는다는 보편원칙에 따르라, 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공익에 해가 될 때에 한하여 최소한의 기본권은 제한될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기본권 제한의 원칙은 세금납부, 운전면허증 제도, 오토바이 헬멧 강제 준수사항 등, 무수히 많다. 더군다나 수불로 인한 피해사례가 전무하다는 점에서 수불은 피해 최소화의 원칙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할 것이다.

“다른 대체 가능한 수단(불소정제, 양치, 불소치약 등)이 존재하는데도, 수돗물에 불소를 투입하는 것은 과잉 금지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에 문제가 있다.”는 하승수님의 주장은 다른 대체 가능한 수단이 수돗물에 불소를 투입하여 얻는 효과나 효율성, 안전성등이 비슷해야 성립하는 주장이다.

그러나 다른 대체 수단은 수불에 비해 그 효과와 안전성이 뛰어나지 못하다. 특히 개인의 선택권에 맡겨진 불소치약, 불소정제나 양치 등은 잘못하여 많은 양을 먹었을 경우, 경미도 이상의 반점치를 유발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수불이라는 공중보건사업 만큼 안전하지 않다.

효과 또한 불소치약의 예방율 15~20%는 수불의 예방율 40~60% 보다 높지 않고 개인의 노력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측면, 특히 어린들의 충치예방에 수불보다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측면 등을 종합해 볼 때 수불은 과잉금지의 원칙에 비추어볼 때도 전혀 문제가 없는 공중보건 사업이다.


◆ 중앙정부는 사태가 중하여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공중보건사업을 지방자치에 맡기는 경우는 없다. 보건복지부는 중요한 공중보건사업에 대해서는 지방자치단체나의 의사와 무관하게 실시를 강제할 수 있다. 전염병이나 급성호흡기 질환(SARS, 조류독감등)등은 특정지방을 뛰어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충치 발생율이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되어 호발하지 않고 타 국가와 비교하여 전국적으로 높게 발생하며, 이로인한 개인의 구강건강이 심각한 실정이고 사회,경제적 손실이 심각한 수준이라면 충치 발생율을 떨어뜨리는 정부의 보건정책도 지방자치단체에 수돗물불소화 사업을 실시하라,고 강제할 수 있다. 왜냐면 이같은 중앙정부의 적극적 역할은 헌법에 규정된 의무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불 실시이전에 주역주민에 대한 충치 발생률 등, 제반 지역조사를 한 연후에 필요하다고 인정되어 여론조사나 주민투표를 통해 과반수이상이 찬성하면 수불사업 실시를 명령할 수 있도록 법체계를 일반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하도록 개정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전북등지에서는 수불여론조사 결과 수불찬성이 90%이상으로 압도적으로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 사업시행의 결정권을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주게 되어 있는 현행 구강보건법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상수도사업본부장이 거부했을 때 실시를 못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진정한 민의가 자치단체장에 의해 무산되는 대표적인 경우다. 민의의 90%가 수불을 찬성하는데도 실시를 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진정한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다.

자치단체장이 이해관계에 따라 수불사업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지역주민 50%이상이 수불을 찬성할 때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해서 자치단체장은 그 의견을 수렴하라는 뜻에서 중앙정부의 의무실시 조항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민의를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다. 지역주민의 과반수가 수불실시를 원한다면 지방자치단체장은 수불을 실시하여야 한다.

이번 구강보건법 개정의 참뜻은 여기에 있다. 초기 구강보건법 개정안에 포함되어 있던 [과반수 반대일 경우에 실시하지 않는다]는 구절은 민주주의 일반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는 여러 시민단체의 비판적 의견을 존중하여 과반수 찬성으로 바꾸었음을 유념해 주길 바란다. 수불에 대한 과학적 사실판단을 주장한 부분을 제외하고 하승수님이 제기한 절차상 민주주의 문제에 대한 지적은 겸허히 받아드린다.

참고로 보건문제나 복지의 문제는 지방자치의 문제와 배치되는 경향이 있다. 보건과 복지의 문제가 지방자치 원칙에 묶여 있을 때, 정작 시급한 국가적 차원의 긴급 대책이 자치단체장의 반대로 무산될 수도 있다.

님비현상도 이런 것 중에 하나이다. 보건과 복지는 특히 부의 재분배와 형평성 원리에 맞아야 함으로 잘사는 지역의 세금으로 못 사는 지역민의 생활향상을 위해 쓰는 것은 정의롭고 정당한 중앙정부의 개입일 것이다. 건강보험제도, 산재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제도 등이 그것이다.


◆ 하승수 님이 주장하는 바,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의견 수렴이나 여론조사도 역시 지방자치단체의 고유 영역이다. 지방자치를 하는 이상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어떤 방법으로 의견 수렴을 하고 여론조사를 할 것인지는 지방자치단체 스스로 판단할 문제”라는 주장은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인가.

국민의 보건을 책임져야할 중앙정부가 특정 지역주민의 여론 조사를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은 자의적 해석이라 본다. 중앙정부는 지방자치단체장에게 필요한 경우에 여론조사 등을 명령할 수 있다. 이것이 자치의 원칙을 해치는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수돗물 불소화 사업을 하였을 때에 그로 인한 예산상의 부담, 시민 안전에 대한 책임은 지방자치단체가 져야 한다고 하는데, 반드시 그래야만 지방자치에 부합되는 되는 것은 아니다.

지방자치자체의 필요에 의한 지역사업이라도 중앙정부는 예산지원이나 기타 행정, 법률적 지원 등을 할 수 있다. 수불사업을 실시하는데 예산의 부담이 있을 경우, 중앙정부는 이를 지원할 수 있다. 반드시 지방자치단체에서 필요한 예산을 수불사업에 할애할 필요는 없다. 중앙정부가 수불사업의 필요성을 인정하였고 여론조사, 지역역학조사를 명령하였다면 예산부족시 이를 중앙정부에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수불실시 예산은 생각보다 적게 들어 우리나라 어느 지역이라도 지방자치정부의 예산만으로 충분히 실시할 수 있는 사업이다. 어떤 방법으로 의견 수렴을 하고 여론조사를 할 것인지는 지역마다 다를 필요가 없다.

중앙정부 보건복지부에서는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공정한 여론조사 내용을 중립적 인사들로 구성된 정부산하 “(가칭)수불위원회”에 등에서 만들면 된다. 문제는 누가 여론조사를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론조사 내용이 편파적이지 않고 중립적 입장에서 공정한가의 여부가 중요하다.


◆ 하승수님이 주장한 바, “민주주의란 단순 다수결로 치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충분하고 공정한 정보제공과 토론, 심도 있는 논의, 합의의 형성이 중요하다.”, “수돗물에 불소를 인위적으로 투입하는 문제는 설사 과반수가 찬성하더라도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아무리 좋은 일이고 과반수가 찬성하더라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굳이 예산을 들여서 사업을 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다만, 현실적으로 어떤 정부 정책에 대해 그러한 소수 반대자들도 수긍할 수 있는 정치적 합의가 도출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도 님은 잘 알 것이다. 예산을 들여서 수불사업을 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서 많이 연구 검토되었고, 수불사업 이상 효과적이고 안전한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 사업을 법으로서 명문화하자는 것이다.

수불사업 이외의 다른 방법, 양치법, 불소알약, 불소도포 법 등은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충분한 충치예방효과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의 구강보건정책으로는 우리나라 실정상 부적합하다. 다른 대안들에 대한 충분한 검토 끝에 우리나라 실정에 가장 잘 맞는 방법이 수불사업이고 비용/편익비가 월등하다는 점 때문에 이 사업을 실시하자는 것이다.

수불실시에 과반수가 찬성하면 실시하자는 것이 민주주의 일반 원칙에 어긋난다고 필자는 생각지 않는다. 더구나 대다수가 찬성하더라도 소수의 반대자들을 고려해야한다는 원칙론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정부 정책의 실시에 있어서 이 모든 소수의 반대자들을 고려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소수의 개인적 의견은 불가피하게 제한될 수밖에 없는게 현실이다. 우리나라가 자유방임주의 국가가 아닌 이상, 개인의 권리가 때때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제한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공중보건사업을 여론조사나 주민투표를 실시해야 하는 경우를 수불사업 이외에 본적이 없다. 그렇지만 반대의견도 있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충치 유병률도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여론조사나 주민투표 방식을 동원한 것이라 생각된다. 미국의 경우 주민투표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곳도 있지만, 잉글랜드와 미국의 몇개 주처럼 중앙정부가 강제하는 경우도 있다.

충치로 인한 사회적 비용과 개인적 손실이 평생 동안 한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서 충치문제는 예방이 충분히 가능한 몇 안되는 심각한 만성질환중의 하나다. 이제 충치는 더이상 개인이 전적으로 책임질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책임 질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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