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 공포의 도시 바그다드! 그러나 그 곳은 인류 최초의 찬란한 문명이 피어난 곳이었으며, 유럽이 암흑의 중세를 거치는 동안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명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던 곳이기도 하다.
바그다드의 학자들은 그리스어, 라틴어, 페르시아어, 아시리아어, 인도어로 씌어진 주요 저작들을 모두 아랍어로 번역했는데, 그들이 아니었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을 비롯한 고대 그리스의 찬란한 학문적 업적들이 모두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이탈리아의 살레르노, 프랑스의 몽펠리에 등에 세워진 유럽의 유명 의과대학들은 모두 이렇게 아랍어로 번역된 고대의 의서들을 다시 라틴어로 옮긴 텍스트를 주 교재로 삼았다. 그리스와 로마가 서구 문명의 뿌리라면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세계는 서구 문명의 인큐베이터였던 것이다.
이슬람 의학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사체해부에 대한 엄격한 금지와 개인위생의 강조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 모두 종교적 가르침의 형태를 띤다.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은 명백히 사체해부를 금하여 해부학의 발달이 지연되었고, 피를 두려워하는 아랍인의 정서와 결합되어 외과학의 발전을 늦추었다.

그렇다고 외과수술이 전혀 행해지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환자의 혀 밑에 발생한 낭종을 절제하고 그 내용물을 배출시키는 수술 장면이 그려진 그림(그림 3)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충분히 감당할 만한 수술마저 피하지는 않았던 것같다.

그들은 살바도라 페르시카라는 나무의 가지를 물에 적셔 하루 동안 방치한 다음 끝부분을 잘게 쪼개 솔처럼 만든 ‘시왁’이라는 칫솔을 사용했다. 이슬람의 선구자 무하메드는 이 시왁을 무척 좋아해서,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도 이 칫솔로 양치질을 했다고 전해진다.

중세 유럽의 치과의술이 주로 떠돌이 돌팔이들에게 맡겨져 있었으며, 시술의 내용도 끔찍할 정도의 통증과 합병증을 동반한 발치수술 위주였다는 점을 생각할 때, 무슬림들의 지혜가 더욱 돋보이는 장면이다.
강신익(인제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