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속치과이야기] 이슬람 세계의 치과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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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속치과이야기] 이슬람 세계의 치과의학
  • 강신익
  • 승인 2004.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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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와 공포의 도시 바그다드! 그러나 그 곳은 인류 최초의 찬란한 문명이 피어난 곳이었으며, 유럽이 암흑의 중세를 거치는 동안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명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던 곳이기도 하다.

바그다드의 학자들은 그리스어, 라틴어, 페르시아어, 아시리아어, 인도어로 씌어진 주요 저작들을 모두 아랍어로 번역했는데, 그들이 아니었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을 비롯한 고대 그리스의 찬란한 학문적 업적들이 모두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이탈리아의 살레르노, 프랑스의 몽펠리에 등에 세워진 유럽의 유명 의과대학들은 모두 이렇게 아랍어로 번역된 고대의 의서들을 다시 라틴어로 옮긴 텍스트를 주 교재로 삼았다. 그리스와 로마가 서구 문명의 뿌리라면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세계는 서구 문명의 인큐베이터였던 것이다.

이슬람 의학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사체해부에 대한 엄격한 금지와 개인위생의 강조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 모두 종교적 가르침의 형태를 띤다.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은 명백히 사체해부를 금하여 해부학의 발달이 지연되었고, 피를 두려워하는 아랍인의 정서와 결합되어 외과학의 발전을 늦추었다.

▲ 그림1
따라서 발치수술은 적극 강조되지 않은 대신 각종 약물을 통한 치료법이 발달하였다. <그림 1>은 13세기경 치과의사의 모습을 그린 것인데, 아무런 기구도 없이 몇 가지 약초와 종교적 의식을 결합하여 치통을 치료했던 당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치아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치료가 필요한 때에는 산(acid)을 이용해 치수를 소작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그림 2). 구강 내 다른 조직의 손상을 줄이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도관을 이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렇다고 외과수술이 전혀 행해지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환자의 혀 밑에 발생한 낭종을 절제하고 그 내용물을 배출시키는 수술 장면이 그려진 그림(그림 3)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충분히 감당할 만한 수술마저 피하지는 않았던 것같다.

▲ 그림2
이슬람 의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개인위생에 관한 강조가 종교적 명령으로 주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슬람 지도자들은 마음 뿐 아니라 몸의 청결을 무척 강조한다. 매일 다섯 번씩 올리는 기도 전에는 항상 몸을 깨끗이 씻는데, 그 때마다 입을 세 번 헹구어야 한다. 매일 15번씩 양치질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살바도라 페르시카라는 나무의 가지를 물에 적셔 하루 동안 방치한 다음 끝부분을 잘게 쪼개 솔처럼 만든 ‘시왁’이라는 칫솔을 사용했다. 이슬람의 선구자 무하메드는 이 시왁을 무척 좋아해서,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도 이 칫솔로 양치질을 했다고 전해진다.

▲ 그림3
이처럼 청결을 강조하는 종교적 전통은 예방의학적으로, 특히 구강보건학적으로 무척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10세기의 위대한 의사 아불카심은 치석이 치주병의 원인임을 밝히고 이 치석을 제거하는 스케일링을 적극 권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직접 그를 위한 기구를 고안 제작하기까지 했는데, 이는 종교적 위생관념이 의학에 확대 적용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중세 유럽의 치과의술이 주로 떠돌이 돌팔이들에게 맡겨져 있었으며, 시술의 내용도 끔찍할 정도의 통증과 합병증을 동반한 발치수술 위주였다는 점을 생각할 때, 무슬림들의 지혜가 더욱 돋보이는 장면이다.

강신익(인제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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