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실 한편에서의 ‘시간 활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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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실 한편에서의 ‘시간 활용법’
  • 이상미 기자
  • 승인 2015.12.14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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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가 있는 원장실] 일산 사과나무 치과 김형성 원장

치과의사의 일과 중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단연 병원, 그중 원장실은 한 치과의사의 공적인 일과 일상적인 일이 함께 벌어지는 공간이다. 더불어 치과의사들이 진료 사이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다른 일을 꾸민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원장실에서의 자투리 시간에는 게임, 주식 등 익숙한 일들이 벌어지거나, 혹은 우리가 예상치 못하는 ‘창의적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독서를 통한 삶의 궁금증 탐구가 될 수도, 본업을 두고 지구 방위에 힘쓰는 슈퍼맨처럼 건강사회 만들기에 힘쓰는 연대활동일 수도 있다.

본지가 이번에 찾아간 원장실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다양한 일을 하는 김형성 원장의 공간이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공동대표 김용진‧정갑천 이하 건치) 사업국장, 잡지 ‘의료와 사회’ 편집위원 등 본업인 치과의사 관련 업무를 포함한 많은 일이 그의 원장실에서 일어난다.

벌어지는 사업의 양과 밀도를 생각하면 원장실에서 과연 두 집 살림을 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운 상황. 그 의심을 보기 좋게 날리며 김형성 원장은 진료 외의 원고기고, 보건의료 관련 연대사업(틈틈이 미국 드라마 시청도 하는 것 같다) 등 여러 일을 하고 있었다.

‘특별한 시간’을 낼 필요는 없다

▲김형성 원장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자투리 시간만으로도 생각보다 매우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죠. 그러니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게 좋아요.

김 원장이 하루에 활용하는 자투리 시간은 영화 러닝타임으로 따졌을 때 두 편 반 정도. 세 시간이 채 안 된단다. 보통 8시간을 근무한다고 가정했을 때 그 중 세 시간 정도는 남는 셈이다.

이 시간 동안 김형성 원장은 본인이 매진할 ‘다른 일’을 한다. 기고 글을 쓰기도 하고, 보건의료 분야에서 즉각 대응해야 할 사건이 있을 때 관련 자료를 찾는 등의 일이 ‘남는 3시간’ 안에 이뤄진다.

자투리 시간 안에 일하다 보면 한 주제의 일에 몰입하는 집중력이 떨어질 수도 있을 터. 김 원장은 시간을 ‘특정기간’ 동안 ‘동일 주제’를 ‘정해진 시간’에 반복해서 찾는 방식으로 집중도를 확보하고 있었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효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하는 모습이, 과연 공부의 신 기질이 다분한 치과의사답다.

“석 달 동안 매일 아침에 한 일은 탄저균 관련 검색어를 쳐서 이에 대한 기사를 쭉 읽는 거였어요. 용어 검색을 위해 위키피디아를 들어가는 등 탄저에 대한 기본상식을 쭉 배운 거예요. 책을 산 적은 없고 검색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죠. 이때 중요한 건 인터넷에서 간혹 올라오는 잘못된 정보를 걸러내는 일이죠.”

인터넷‧채팅앱 사용은 ‘기본 of 기본’

▲김형성 원장의 PC 화면을 빼곡히 채우는 채팅창과 위키피디아 웹사이트

“탄저균 사건 때 한 달 안에 보도자료 내서 국회 토론회를 하고, 평택이나 용산 지역에 가서 강연하며 설명하고, 언론사에 기고하는 과정이 불과 넉 달 만에 이뤄졌어요. 근데 그게 다 특별한 시간을 내서 한 일이 아니에요. 자투리 시간에 인터넷을 계속 보고 있으면 웬만한 내용을 따라잡을 수 있어요.”

평택 미군부대 탄저균 사건이 발생했을 때, 김 원장은 보도자료 작성부터 국회 토론회 준비, 언론사 기고, 강연 등 다방면으로 동분서주했다. 이 과정에서 참여연대, 전직 통합진보당 당원 등 해당 일을 함께하는 여러 참여자와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이 과정에서 생각보다 여러 일을 원장실에서 처리하는 게 가능했다. 여러 사람과 신속하게 사건 대응을 할 수 있었던 건 발달한 인터넷과 채팅 애플리케이션 덕분이다.

채팅 앱은 대화 성격 별로 사용하는 서비스가 달라진다. 보건의료 분야 관련 성명서 발표 등의 일을 할 때는 독일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인 텔레그램을 쓴다. 건치 일의 경우 카카오톡과 텔레그램을 함께 쓴다. 감청 이슈에서 자유롭지 않은 국내 IT 환경에 대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온 습관이다.

소통 외의 실무 과정에서 파일 공유 및 아카이빙은 구글 드라이브를 활용한다. 건치 활동 초창기부터 인터넷을 활용한 소통을 시도해왔기에 나이 든 건치 회원도 인터넷 서비스를 쓰는 데 큰 거부감 없이 쓴단다.

진료 외적인 일을 병행하는 것의 의미

“(진료 외적인 일들은) 상당 부분 건치 때문에 하는 일이죠. 건치 안에서 제 역할이 있는데, 그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지켜지는 것들이 있어요. 그 일들을 하는 과정이 일상의 활력소가 되기보다는, 지나고 나서 활력소가 되는 부분이 있죠(웃음).”

김형성 원장에게 진료 외적인 일을 병행하는 게 생활의 활력소가 되는지 묻자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왔다. 또한, 그는 개인의 명성을 위해 시민활동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을 경계했다.

“시민단체 활동의 명성이나 조직 등을 활용하고 싶은 사람이 있겠죠. 그러면 조직은 망해요. 우리나라의 명망 있는 단체가 수없이 사라진 이유일 거예요. 저 자신도 붕 뜬 마음에 과장되거나 확인되지 않은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요. 제가 잘못 말하면 조직의 신뢰성이 낮아지니까요. 간혹 글이 잘 나올 때면 술 마시고 동료 건치 선생에게 자랑하면 모를까(웃음)…. 자랑하는 걸 너무 좋아하면 안 되니 주의해야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것

▲김 원장의 원장실 한편을 차지한 여러 분야의 책들. 철학, 과학, 문학 등 종횡무진 넘나드는 관심사를 가늠케 하는 목록들이다.

본업을 하는 틈틈이 또 다른 일을 하는 김형성 원장. 쉴 틈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그의 원장실에서 오직 그 자신을 위한 쉼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그의 책장 한쪽을 살펴보니 발터 벤야민, 칼 맑스 등 저자의 철학서와 소설 책이 눈에 띠었다. 양자역학, 문학, 맑스주의 경제학을 공부하는 등 의료 쪽과 상관없는 분야에서 자신의 호기심을 위해 여러 지식을 살핀다고 하니, 쉬는 시간마저 ‘생산적’이지 싶었다.

▲ 김 원장의 취향이 담긴 필기구들

결국 그의 원장실에서 비생산적으로 보이는 취미의 흔적을 더듬은 끝에 찾은 것은, 잔인한 공포영화 취향이 반영된 그의 영화&드라마 모음 폴더, 그리고 필통 속 필기구였다. 소비를 달가워하지 않는 김 원장의 물건에서 유일하게 돈 쓰는 물품이 바로 필기구다. 그의 필기구는 만년필 중 보급형 라인에 속하는 ‘라미’부터 몽블랑 등 종류가 다양하다.

예전에는 보건의료 쪽 회의를 갈 때 필기구를 꺼내면 모나미 볼펜을 사용하는 다른 사람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지금은 당당하게 그의 취향을 드러내며 몽블랑 샤프를 꺼낸다고 했다.

▲취재 후 바로 진료에 들어간 김형성 원장. 한 공간에서 시민활동가, 의사, 미국 드라마 매니아로 쉼없이 변신한다.

치과의사로써의 본업과 보건의료 활동가로서의 일, 그리고 개인적인 삶의 탐구를 위한 독서와 개인취향을 위한 수집이 이뤄지는 공간. 김형성 원장의 원장실 안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시간이 모여 그의 일상을 이루고 있었다.

그의 원장실을 방문할 일이 생긴다면 편집위원 활동을 하면서 비문과 오타로 그를 괴롭힌 필자에 대한 경험담을 물어보길 추천한다. 혹은 방문자 취향에 맞는 미국 드라마를 다운받은 게 있는지 묻거나, 최근 관심 있는 공부주제가 뭔지 물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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