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97]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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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97]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 전민용
  • 승인 2014.04.07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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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은희경, 문학동네

 

 
은희경이 여섯 개의 단편 소설을 연작 형식으로 엮은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이라는 긴 제목의 소설집을 냈다. 작가의 말처럼 각각으로 읽어도 좋고 전체를 연결하며 읽어도 좋다. 인간은 연관 짓고 분류하고 규칙 만들기를 좋아하므로 연작으로 바라보는 것을 더 즐길 것이라 생각한다.

책의 제목이 최근에 읽은 강신주의 ‘김수영을 위하여’에서 강조한 단독성의 개념을 너무도 잘 반영하고 있어 호기심이 일었다. 책을 광고하는 “너무 가까워지면 ‘관계’가 개인을 삼키고, 너무 멀어지면 ‘거리’가 고립을 낳는다.”는 문장도 좋았다.

여섯 개의 이야기는 대부분이 낯선 장소에서 낯선 경험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외국, 신도시, 친구 집 등에서 그들은 예상치 않았던 힘겹고 난처한 상황에 맞닥뜨린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익숙해진다는 건 다 헛소리”라고 말한다. ‘단 하나의 눈송이’는 다른 누구와 같지 않은 한 인간일 수도 있지만, 각자가 직면하는 비슷하지만 결코 같지도 익숙해지지도 않는 삶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독일 아이들만 아는 이야기’에서 인생을 뜨개질에 비유한다. 잘못되었을 때 과감히 포기하고 풀어버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르친 상태로 어떻게든 이어가는 사람도 있다. 잘못된 줄 알면서도 돌이키기가 아까워 계속한 사람은 일찍 완성하지만 모양은 엉망이다. 그래도 자신의 선택이니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 애쓸 것이다. 과감하게 풀어버린 사람은 다시 시작하여 원하는 결과를 얻을까? 그것도 모를 일이라고 작가는 소설 속에서 말한다.

작가는 이렇게 세상 속에 던져져 자의인지 타의인지 모르게 낯선 삶을 사느라 애쓰는 인간들은 서로 연대를 한다고 ‘T아일랜드의 여름 잔디밭’에서 말한다. “허기와 절망, 그런 감정들은 행복의 변방에서 서로를 알아본 순간 경계를 넘어 조용히 연대한다. --- 서로 이용하지만 거짓은 끼어들지 않는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연대일 것이다.”

“인생에 대단한 것은 없고 모두가 고독 속에 죽어갈 거라고 생각하면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이 조금은 견디기 쉬워진다고 한다.”고도 한다. 삶과 죽음에서 기본적으로 고독한 존재들 간에 서로를 알아보는 쓸쓸한 연대를 맺으며 살다가 영원히 고독한 존재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란 말일까? 현실이지만 너무 쓸쓸한 생각이고 기울어진 일반화가 아닐까?

마지막 소설인 ‘금성녀’에 이르면 소설 속 주인공들의 관계망이 대충 그려진다. 자매간인 유리와 마리, 유리 할머니의 둘째 며느리가 되는 ‘다른 모든 눈송이 ---’의 안나와 그의 아들인 ‘T아일랜드의 ---’의 현, 마리와 유리의 오빠의 딸인 ‘프랑스어 초급과정’의 그녀, 그녀는 ‘스페인 도둑’의 완(‘금성녀’의 완규)의 엄마이기도 하다.

완과 현의 엄마는 59년 생 동갑이다. 같은 집안사람이 되었지만 서로 알지 못했던 두 사람은 마리 할머니의 회상 속에서 입시를 앞 둔 10대의 마지막 겨울에 옆집에 살면서 우연히 만나는 것으로 그려진다. 알게 모르게 연결된 관계의 망과 스쳐 지나가는 우연들이 모여 삶과 이야기를 만들고 의미를 부여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 아이들만 아는 이야기’의 이원은 관계도가 잘 그려지지 않는데,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원의 상대역인 태현이 현을 생각하며 쓴 인물이라고 했다. 이원 역시 작가의 실제 모습을 거의 그대로 그린 것이라고 한다. 59년은 은희경이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와 남의 이야기는 뜨개질처럼 엮여 들어가는 것 일게다.

물론 이 관계도는 개연성은 있지만 완벽한 것은 아니다. 특히 완의 아빠나 현의 엄마의 경우 각각의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성격이 일정하지 않고 따로 노는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각각의 소설 속에서 다른 상황과 관계로 만나는 그들을 확인하는 것은 낯선 곳에서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 같은 의외의 즐거움을 준다. 

소설 속 인물과 상황에 온전히 집중하게 해주는 ‘단 하나의 눈송이’같은 작품이었다. 나는 이런 소설이나 영화를 좋아 한다. 최근에 읽었던 소설들 중에 가장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스페인 도둑’의 소영과 완의 미래, 유리의 자살 이유, 주인공들의 또 다른 삶의 모습 등 궁금한 것  투성이다. 이어지는 연작에 대한 기대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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