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95]최제훈의 ‘나비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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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95]최제훈의 ‘나비잠’
  • 전민용
  • 승인 2014.03.0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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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잠, 최제훈, 문학과 지성사

 

 
주인공 최요섭은 대형 로펌으로 커가고 있는 사해(四海)의 변호사다.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아 학연도 지연도 혈연도 없다. 철저한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논리에 따라 뒷돈을 쓰고, 누명을 씌우고, 주가 조작을 하는 것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온갖 굳은 일을 마다않고 몸 바친 덕분에 그는 신임을 얻고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강변의 31억짜리 아파트와 예쁜 아내와 아들 하나, 그를 뿌듯하게 만드는 전리품들이다.

경찰에 쫓기다 총에 맞고 죽는 꿈을 꾼 후로 뭔가 삶이 꼬이기 시작한다. ‘노란’ 티셔츠를 입은 불쌍한 어린애를 보고 마음이 꽂혀 그답지 않게 무료 변론을 해주면서 로펌 내에서의 위치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마누라의 바람이 들통 나고, 아들을 위해 찔러 준 촌지로 뇌물 사건 수사를 받고, 투자한 주식은 휴지가 되고, 변호사 자격은 박탈당하는 등 몰락의 길을 걸어간다.

성서에 나오는 요셉은 꿈 해몽 하나로 이집트의 총리가 되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는 인물이다. 목사인 아버지가 준 최요섭이라는 이름은 요셉에서 가져왔을 것이다. 소설 첫 도입부부터 요섭은 꿈을 꾼다. 꿈에서는 ‘나’라는 1인칭이 사용되고 현실에서는 ‘요섭’이라는 3인칭이 사용된다. 환타지와 패러디가 난무하는 꿈 이야기는 상상력이 돋보이지만 괴이하고 무겁다. 피노키오, 빠삐용, 빨간 두건 등의 변주 역시 전작들에 이은 익숙한 설정이다.     

 작가는 오래전부터 한 인물의 삶을 중심에 놓고 그의 의식을 따라가며 소설을 써보고 싶었다고 한다. 꿈과 현실이 계속 교차해가면서 이야기가 만나고 여기에 어렸을 때의 기억이 섞이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이 소설의 특징이다. 요섭은 교도소에서 태어나 목사였던 양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요섭의 의식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는 목사 아버지와 친어머니 이미지, 노란 원피스의 나영이, 은하철도 999의 메텔 등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사회 기득권자들의 부도덕하고 타락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고, 정우라는 양심적인  변호사를 내세워 다른 삶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들지만 그 뿐이다. 전체 이야기의 전개와 엇갈려 갈 뿐이다. 요섭의 완벽한 몰락 역시 개연성이 너무 부족하다. 꿈과 기억과 현실은 몇 가지 소품으로 연결되기는 하지만 기교만 보일 뿐 심층적이고 맥락적인 연결은 잘 보이지 않는다.

전작 <퀴르발 남작의 성>과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참신했고 재미있게 읽었었다.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는 작가의 재능은 여전히 감탄할만했지만 책을 덮으며 뭔가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 재미있다고 해야 할지 씁쓸하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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