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경쟁구도 속 ‘삶의 오아시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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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경쟁구도 속 ‘삶의 오아시스’는?
  • 정준오 학부생
  • 승인 2013.12.10 11:4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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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 정준오 치전원생

 

일반인들에게 치과의사라는 타이틀은 어떠한 메리트로 다가올까? 의료를 행하는 엘리트 전문가? 아니면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진 상위 1%?

외부적인 시선은 위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치과분야에 종사하는 치과인들은 조금 생각이 다르다. 그 누구보다 경쟁구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게 치과의사들의 현실이다.

치대 학부생들에은 더 많은 임상술식을 배우기 위해, 그리고 훌륭한 치과의사가 되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갓 개원한 새내기 치의들에겐 사회 적응이라는 큰 관문에서 나름대로의 생존법을 찾느라 개인시간을 반납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불어 현재 개원하고 있는 중년층의 치과의사는 치열한 삶의 경쟁구도 속에서 더 나은 현실을 누리기 위해, 환자들에게 양질의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각종 세미나나 교육을 통해 다시 예비 치과의사의 삶으로 뛰어드는 ‘다람쥐 쳇 바퀴 도는 삶’을 살고 있다.

외부의 시선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치과의사들에게 자신만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과연 사치일까? 아니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삶의 활력을 얻는 힐링 포인트일까?

정준오 경희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 2학년 치전원생은, 치과의사의 길을 걷고 있는 동시에 해외여행을 통해 자신만의 견문을 넓히고 있는 새내기 예비 치의다.

치과의사가 되기 위해 외롭고도 험난한 길을 걷고 있는 치대 및 치전원 학생들의 자리에 위치한 정준오 치전원생의, 짧지만 여행을 통해 느낀 감동과 설렘을 담은 한 편의 여행기는 팍팍한 경쟁구도 속 하나의 오아시스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편집자 주)
 

 
안녕하십니까! 저는 경희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인 정준오입니다.

서른 즈음에 느지막이 치의학을 공부하기 전에 다녀온 93일 여행 이야기로 <행복하다면 그렇게 해> (2012년 10월 출간, 지식공감)를 출간하였고, 2014년 2월 러시아 여행기(제목미정, 미래의 창)를 탈고 중입니다.

대단한 여행 스킬이나 거창한 글재주는 없지만 여기서 소개할 여행 이야기들이 치의학 관련 모든 선배님들께 여행의 설렘과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면 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겠습니다.

1. 산티아고 순례길 Part.1

유럽의 저가항공은, 너무도 정확한 예정 시간에 마드리드 바하라스 공항에 나를 안착시켜 주었다.

순례 출발 지점으로 정한 레온까지는 마드리드에서 버스로 네 시간. 연착과 지연이 일상화 된 인도에서 오래 머물렀던 탓에, 지연 시간을 고려해서 레온으로 가는 버스를 넉넉하게 예약했더니 공항에서 일곱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정이 되어버렸다.

하릴없이 공항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지난 추억을 꺼내어 보는 일이 가장 좋았다.

네팔, 인도 여행에서 있었던 일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면서 산티아고 길 공부를 하노라니 일곱 시간은 예상대로 빨리 흘렀고, 어느덧 밤이 깊어 야간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서 깊은 잠이 들었는데, 문득 눈을 떴을 때 버스가 도착 예정 시간을 넘겨 신나게 달리고 있는 거였다. 주변에도 곤히 잠자는 사람들뿐이라 물어볼 데도 없고 와이파이에 접속해 현재 위치를 찾아보았다.

올레! 버스에서 와이파이가 잡히는 스페인은 역시 좋은 나라. 아뿔싸, 그런데 이미 버스는 레온에서 한참 멀어진, 스페인 북쪽 해변에 가까운 오비에도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 늦은 밤 운치있는 조명 아래 드리워진 오비에도 거리
실눈을 떴을 때 약속된 시간에 어딘가에 정차했던 것을 느꼈는데도 유럽의 시간 개념을 다시 한 번 무시하고는 레온의 다른 역이 또 있겠거니, 종착역이 레온이려니 지레 짐작하고 눈 감고 있었는데, 한 시간 넘게 더 달렸던 거다. 세상은 내 목적지가 종착역일 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레온에서 순례자 사무소에 들러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았다. 커다란 성당이 있는 이 도시에서 300km 떨어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지도도 받고, 가리비 뱃지도 사서 달고.

순탄하진 않았지만 별 탈 없이 산티아고 길에 들어섰다. 그렇게 지리산 설악산 종주 수차례, 북악산 한라산 힐클라임, 군대 외박 나와서도 치악산에 올랐던 사나이는, 얼마 전 히말라야에도 다녀왔다는 쓸데없는 자존심으로 도합 25kg이 넘는 배낭 두 개를 짊어지고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순례자가 된 것이다. 

▲ 동네 시골마을 놓여진 길처럼 포근하면서도 아늑한 산티아고의 모습.
그러나 첫날 한 시간 후 부질없는 자부심은 흔적도 없어지고 첫 목적지로 정한 생마틴의 알베르게(순례자 숙소)까지 가는 25km를 걸으며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는가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문득 지구 위 0.1톤에 가까운 외로운 한 점이 300km 위치 이동을 하려 한다는 자각이 들었다. 지구 자전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긴 하지만 태양 중심 좌표계로 보면 이동 거리는 훨씬 길어질 것이다).

아뿔싸, 나는 오래된 그리움, 나쁜 습관, 못된 집착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나 좋으라고 가져온 내 짐과 싸우고 있음을 알았다. 바르셀로나, 런던, 프라하, 피렌체, 베네치아, 아테네, 이스탄불 편히 지낼 수 있었던 멋진 도시들도 스쳐 지나간다.

왜 하필 이 길이 끌렸던 걸까. 그래도 첫날이니까.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길 위에 서야 했다. 첫날부터 힘들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 더 밝게 웃으며 길 위의 인연들과 부엔 까미노. 어디서 무얼 하든 함께 걷는 이들은 언제나 소중하다.

첫날 공립 알베르게에서 만난 유쾌한 스패니시는 폴란드에서 일한다는 서른아홉. 교수라고 하다가 굴삭기 운전사라고도 하고, 캐묻지 않아 모르겠지만 좋은 사람임이 분명했다.

▲ 정준오 선생이 산티아고 여행 중 만난 유쾌한 스패니시, 폴란드에서 일한다는 교수 or 굴착기 운전사?
순례길은 세 번째인데, 이번에는 스페인의 시작 지점 ‘Roncesvalles’에서 시작했다며, 이 길을 걷는 이 휴가가 너무 좋다고 했다.

또 다른 동행은 영어를 잘하지 못해 나와는 거의 눈빛과 손짓으로만 대화했던 호세. 그의 크레덴시알은 도장으로 빼곡했고, 알이 배겨 내리막길을 더 힘들어 하는 이미 먼 길을 걸어온 순례자였다.

무엇이 두 아이의 아버지를 이 길로 이끈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가족과 통화하면서 보이던 아빠 표정, 절뚝거려도 중심을 잃지 않던 걸음에서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힘이 느껴졌다.

이들과 싸고 맛있는 스페인 음식을 두고 따뜻한 벽난로 웃고 떠들다 보니, 여느 여행지의 유스호스텔보다 허름한 알베르게가 세상에서 제일 아늑하게 느껴졌다.

▲ 산티아고 마을 한 곳에 놓여진 허수아비. 우리의 허수아비와 샘김새는 다르지만 어딘가 친숙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자신의 야구>가 뭔데?
그건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야. 그것이 바로 삼미가 완성한 <자신의 야구>지. 우승을 목표로 한 다른 팀들로선 절대 완성할 수 없는 - 끊임없고 부단한 <야구를 통한 자기 수양>의 결과야.

뭐야, 너무 쉽잖아?

틀렸어! 그건 그래서 가장 힘든 <야구>야. 이 <프로의 세계>에서 가장 하기 힘든 <야구>인 것이지. -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 포기하면 편하지만 포기도 습관이 된다는 것을 난 잘 알고 있고, 그러면 행복하지 않을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포기하지 않기로 선택했다.

힘든 일을 놓아 버리는 것은 오히려 쉬운 선택이다. 하지만 뒷감당은 어렵다. 오래 후회하는 것이 더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이 멀지 않은 길을 다 걷고 나면 그보다 오래 이 길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고, 이 길이 들어있는 이 여행은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 중 하나라고 여기게 될 것임을 확신했다.

▲ 수많은 순례자들이 순례했다는 산티아고는 많은 여행자들이 꼭 한번은 지나가고 싶어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처음부터 나와의 약속도 아니었다. 어차피 사서 하는 고생, 처음엔 좀 후회할 것은 알고 있었다. 25kg을 짊어지고 걷는 길은 생각보다 더 힘들긴 했지만...

트레킹, 하이킹 여행은 출발 전에는 설레다가도 막상 오면 왜 힘든 길을 걷는 고생을 사서하고 있나 생각하게 된다. 걷는 일에 의미를 만들기 위해서 나는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의미를 붙이는 행위 그 자체, 저마다 멋진 의미를 부여하는 그런 길이라는 사실에 무게를 두었는지 모른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트레일 중 하나다. 혼자여도 길 잃을 일이 없도록 노란 화살표와 가리비 껍데기 모양이 곳곳에 가득해서 평범한 길들을 특별하게 느끼도록 만들어 준다.

사람이 몰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믿었고, 만약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이라면 오지 않았을 것이다.

▲ 산티아고 어딘가에 위치한 한 순례자의 영원한 안식처
첫날, 포기하지 말아야할 이유가 생겼다. 동행이 생겼고, 하루를 걸은 뒤 숙소에서의 따뜻한 샤워는 너무 달콤했으며, 스페인식 식사는 행복 그 자체였고, 알베르게의 잠자리는 너무나 포근했기 때문이다.

처음 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찍고서는, 나를 이곳으로 이끈 환상의 알맹이야 어떻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걸어서, 순례자 여권에 알베르게 도장을 가득 찍고 증명서를 품에 꼭 안고야 말리라 다짐했다. ]

*Tip 산티아고 순례길
Camino de Santiago(카미노 데 산티아고, 산티아고로 가는 길)라고 불리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여러 갈래 길이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길은 800km 프랑스 길입니다. 프랑스의 남서쪽 마을 생장드피오르에서 스페인의 북서쪽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까지 걷는 길이고, 보통 한 달 정도가 소요 됩니다. 순례자들은 구간을 나누어 걸으면서 순례를 완성하기도 합니다. 사소한 일상이 특별해지고, 생각할 시간이 많아 나를 만날 수 있는 것은 물론, 적은 돈으로 스페인을 만끽하면서 전 세계의 순례자들과 친구가 될 수 있는 등, 매력이 철철 흘러넘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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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옹 2013-12-19 03:41:36
교수이면서 굴삭기 선생? ㅎㅎ 그걸 캐묻지 않은 정 선생도 대단합니다. 치의들에게 여행기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해줄지도 기대됩니다. (혹은 아무 이야기 없어도 좋아요)

전양호 2013-12-10 13:58:10
음...가보고는 싶은데....엄두가...일단은 글로만 만족해야겠네요...좋은 글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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