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84]‘살인자의 기억법’ 과 ‘너를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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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84]‘살인자의 기억법’ 과 ‘너를 봤어’
  • 전민용
  • 승인 2013.08.1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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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문학동네·김려령, 너를 봤어, 창비

 

덥고 짜증이 밀려드는 여름, 나의 피서법 중 하나는 선풍기 바람 속에 재밌는 소설책을 읽는 것이다. 최근 인기 있는 네 권의 우리나라 소설을 읽었다.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 정유정의 ‘28’, 김려령의 ‘너를 봤어’, 정이현의 ‘안녕, 내 모든 것’. 다 나름의 강점을 갖고 있는 훌륭한 소설들이지만 내 취향으로는 ‘살인자의 기억법’과 ‘너를 봤어’가 더 마음에 와 닿았다. 먼저 이 둘에 대한 감상평을 쓰기로 한다.

살인을 보는 태도는 극에서 극이지만 두 소설은 살인자를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 사람에게는 살인이 까다롭지만 흥미 있는 컴퓨터 게임 같은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평생을 짓누르는 죄책감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다큐멘터리보다 영화를 좋아하고, 사실에 관한 책보다 허구의 이야기인 소설을 더 좋아한다. 또 평범한 이야기보다는 특이하고 놀라운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작품을 읽어주기를 갈망하는 대부분의 작가들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내느라 늘 고심한다. 영화고 소설이고 “진부하면 망한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범이라는 설정부터가 호기심을 일으킨다.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지 25년이 된 일흔 노인의 김병수는 또 다른 연쇄살인범을 금방 알아보고 다시 살인을 결심한다. 금방 소설 속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깔끔하고 절제된 문장과 이야기의 힘이 대단하다. 무심하게 전개되는 섬뜩한 살인이야기와 이 긴장감을 금방 무장해제시키는 유머도 기발하다.

소설의 끝까지 갔을 때 나름 읽으며 구축해왔던 이야기의 줄거리가 손아귀 속의 모래처럼 스르르 빠져나가버리는 허탈한 느낌이 들었다. 소설을 따라가다 나 역시 알츠하이머에 걸린 기분이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병수의 기억과 기록에  따라 전개되는 모든 이야기는 결국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다. 심지어 알츠하이머와 연쇄 살인은 맞는지 혹시 정신분열증이나 다중인격장애는 아닌지? 이야기 없는 이야기고, 역으로 무수한 이야기가 가능한 이야기다.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엿보이는 촌철살인의 문장들이 긴 여운을 준다. 연쇄살인보다 더 무서운 박정희시대의 폭압적 통치를 이야기 속에 녹여 무리 없이 슬쩍슬쩍 보여주는 솜씨도 감탄할만하다.

소설로도 영화로도 유명한 ‘완득이’의 작가 김려령이 쓴 ‘너를 봤어’는 성장소설인 ‘완득이’와는 차원이 다른 성인을 위한 소설이다. 다양한 개성의 작가들과 출판문화계의 인사들이 등장한다. 근접 촬영한 그들만의 적나라한 세계를 보는 것만 해도 재미가 쏠쏠하다. 중견 작가이자 출판사에서 일하는 수현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달콤쌉싸름한 사랑이야기가 한 축이다. 수현의 끔찍한 가족사와 불행한 결혼 생활과 그의 생애를 관통하는 근원적 죄책감이 다른 한 축이다.

짧고 경쾌한 단문, 정곡을 찌르는 표현, 빠른 속도감, 의외의 전개 등 소설적 재미를 두루 갖추고 있어 읽기가 즐겁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짠하고 안쓰러웠다. 수현의 가족도 수현도 수현의 아내인 소설가 지연도 이렇게 살 수밖에 없나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들었다. 수현도 지연도 마음에 큰 병이 있는 사람들인데 상담치료나 약물치료 만으로도 훨씬 좋은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도하와 영재는 정말 애정이 가는 캐릭터다. 이들처럼 거리낌 없고 자유롭게 살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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