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83]하루키의 장편 “색채가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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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83]하루키의 장편 “색채가 없는---”
  • 전민용
  • 승인 2013.08.05 12:06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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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민음사

 

보기 드물게 아주 긴 소설 제목이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이 제목이 소설 전체의 이야기를 요약하고 있다. 소설의 전반부는 쓰쿠루의 나고야 시절 회상, 대학에서 만난 하이다와의 기억, 새 연인인 사라와의 관계를 통해 쓰쿠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후반부는 쓰쿠루가 친구들을 찾아 순례를 하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도입부는 강렬하다. 죽음의 문턱을 오가고 7Kg이나 살이 빠지고 얼굴 형태마저 다른 사람으로 만든 친구들과의 사건은 무엇일까? 하는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정작 본인도 그 이유를 잘 모른다는 것에 더 호기심이 인다. 밤바다에 홀로 내던져진 것 같은 끔찍한 경험을 하고서도 16년 동안이나 혼자 상처를 삭히고 진상을 알아보려 하지 않은 이유도 궁금하다.

그런데 그 뿐이다. 쓰쿠루가 ‘색채가 없다’는 의미도 순례를 통해 드러나는 진실도 잘 공감이 되지 않는다. 하루키의 이전 소설에서도 용두사미로 허무해지는 경험을 몇 번 했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는 생각이다. 

쓰쿠루가 ‘색채도 없고 개성도 없는 텅 빈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작 쓰쿠루 자신뿐이다. 전반부에 묘사되는 쓰쿠루는 개성 없는 인간이기는커녕 정반대다. 기차도 아니고 철도역을 너무 좋아하는 아이가 평범한 아이는 아닐 것이다. 부유한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을 기회를 쉽게 포기하는 것도, 역 건축에 최고라는 교수를 찾아 자신의 평소 성적을 훨씬 뛰어넘는 도쿄의 명문대에 진학하는 집념을 보이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친구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고야에 남는 네 명의 친구들에 비해 쓰쿠루는 구체적인 꿈이 있고 도전 정신이 있는 자기 색채가 분명한 인물이다. 순례를 통해 만난 친구들 역시 한결같이 쓰쿠루가 개성 없고 색채 없는 텅 빈 인간이 아니었음을 강조한다. 여자친구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인물도 알고 보면 쓰쿠루다. 아카(적), 아오(청), 시로(백), 구로(흑)라는 네 명의 친구는 이름에 색깔이 있고, 쓰쿠루는 없다는 ‘사소한 우연’만이 남을 뿐이다.

이런 사소한 우연만으로 제목부터 내용까지 지속적으로 쓰쿠루의 색채 없음을 강조하면서 16년의 숙제와 연관 짓는 작가의 발상이 자꾸 억지스럽게 느껴진 것은 나만 일까? 실제로 자기의 색깔과 개성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자기만의 삶의 태도는 무엇인지 아는 것은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구스타프 융은 인간의 삶의 목적을 의식화와 개성화라는 말로 요약했다. 자기의 색채를 갖는 것의 중요성은 크다. 하지만 이런 일반론을 소설의 이례적인 특수한 상황에 단순 연결시키는 하루키의 발상은 과문한 나로서는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순례를 통해 드러나는 진실들도 “이게 말이 돼?”하는 느낌이 목울대를 치민다. 시로의 충격적 고백, 일방적인 절교, 묻혀진 진상, 쓰쿠루의 회피 등에 대한 이야기 연결 고리들이 전혀 그럴듯한 개연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꿈이나 상상, 악령까지 등장시켜 납득시키려 애쓰지만 그럴수록 억지스러움은 더 커질 뿐이고 도입부의 궁금증은 하나도 해소되지 않는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해프닝을 너무 크게 키우고 무리하게 이야기를 만들어 간 결과일 것이다.

소설 속에는 하이다와의 관계, 아카와의 대화, 쓰쿠루의 여성들과의 성관계 장면 등을 통해 쓰쿠루의 동성애 성향 가능성에 대해 궁금증을 키운다. 하지만 이 궁금증은 결말 부분의 사라에 대한 태도를 통해 애매해진다. 가장 현명한 사람으로 보이는 사라의 판단이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소설은 이야기의 단락 없이 끝난다. 왜 이런 복선을 깔았는지?

소설 속 주인공들이 전작의 주인공들과 자꾸 겹쳐 보이는 점도 불편하다. 쓰쿠루는 내성적이고 꼼꼼하고 성실한 ‘1Q84’의 덴고를 연상시킨다. 시로는 아름답지만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상실의 시대’의 나오코와 여러모로 비슷하다. 구로 역시 ‘상실의 시대’의 활달한 미도리와 현명하고 헌신적인 레이코를 합쳐놓은 것 같은 인물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을지?

하루키 소설의 단골 배경인 섹스와 음악이 은은하게 깔린다. 음악은 리스트의 ‘르 말 뒤 페이’, ‘순례의 해’라는 소곡집의 제 1년 스위스에 들어 있는 음악인데, 소설 속의 음악은 늘 감흥을 느끼기 어렵다. 유튜브에서 들어보니 나에겐 좀 지루하게 느껴졌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순례의 해’라는 제목이 어떤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다.

쓰다 보니 소설에 대한 나의 불만만 모아 놓은 것 같아 겸연쩍다. 워낙 인기가 많은 소설이라 마음 놓고 쓸 수 있겠다 싶었다. 모 대형서점에 갔더니 이 소설로 입구를 장식하고 중앙에는 탑을 쌓아 놓았다. 소설의 인기를 반영하는 것일 게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도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비대중적(?)인 나에게 누군가 그 점을 콕 집어 알려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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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2014-04-13 12:32:52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입장에서~ "색채가 없는.."을 좋아하는 이유는 모든걸 가지고 있음에도 자존감이 낮은 쓰쿠루를 보면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존감이 낮아지는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보고~ 자존감을 회복해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때문은 아닌지~ 생각해 봤어요~~^^
제가 궁금한건" 하루키가 이책에서 녹색과 죽음을 연결한 이유가 뭔지~ 죽음에대해 무슨 말이 하고싶엏는지 궁금해요. 혹시 짐작가는

전민용 2013-08-08 14:19:49
쿨해지고 싶네요~~~ 조금만 밖을 걸어도 땀에 젖는 요즘에^^
오늘 누군가 무더위는 물더위라 습한 더위를 부르는 말이고 습하지 않는 더위는 강더위(강된장의 강과 같데요)라고 한다던데요~~~ 요즘 무더위 괴롭네요 ㅎㅎ

전양호 2013-08-08 13:41:46
어떤 잡지에서 봤는데...하루키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는 아니지만...이전에는 쿨한 사람들이 열광했지만, 이제는 쿨한 사람들의 외면을 받는다는...점점 쿨해지시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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