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버스는 인간의 땅을 만드는 우리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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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버스는 인간의 땅을 만드는 우리의 약속
  • 김랑희
  • 승인 2013.07.1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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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랑희, 인권활동가

 

인간의 땅에 살고싶어 하늘로 올라간 노동자들

노동자들이 자꾸 하늘 높이 올라간다. 대부분 지겨운 일상이라 푸념하는 출퇴근이 간절하고, 동료들과 웃으며 소주잔 기울이는 퇴근길이 그리운 이들이 하늘에 거처를 만든다. 땅으로 돌아가기 위해 하늘을 임시거처로 삼는 노동자들. 그들이 떠나온 땅과 다른 인간의 땅으로 그들이 내려올 날은 언제일까? 무엇이 그들이 편히 딛을 수 있는 인간의 땅으로 만들 수 있을까?

2년 전 하늘에 머문 한 노동자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마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더 높은 곳에 올라간 것처럼 크레인은 안테나가 되어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사람들은 그 메시지에 응답했다.

그녀는 안테나에서 해고노동자들과 세상을 연결하는 길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해고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그 길을 넓히기 위해 그들을 만나러 갔다. 목소리로 주고받던 이야기를 눈을 마주하고 손을 잡고 나누기 위해, 당신들만의 목소리가 아니라 ‘우리’의 목소리가 되어 함께 외치기 위해. 나는 그렇게 2년 전 희망버스를 탔다.

희망을 약속하는 버스

이제 또 다른 메시지를 수신하고 응답하기 위해 다시 희망버스에 오를 예정이다. 울산의 철탑에서 280일째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최병승, 천의봉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나러 간다. 두 노동자가 280일째 철탑에서 보내는 목소리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10년의 목소리이다.

현대차를 상대로 불법파견 투쟁 10년을 벌여오면서 최병승 씨는 3년 전인 2010년 7월 대법원으로부터 현대자동차의 근로자지위를 확인받았다. 그런데 공장에서 자동차를 만들고 있는게 아니라, 자동차를 당당하게 만들려고 하늘에 머물고 있다. 무엇이 그를 하늘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하고 있는지 우리는 확인해야한다.

그래서 정규직 전환을 해야하는 판결을 받고도 꼼짝하지 않는, 오히려 경비용역을 시켜 폭력을 사주하는 세계 5위의 자동차 회사 현대와 싸우고 있는 이들을 만나러 간다. 그들을 만나는 것은 우리는 당신들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 우리가 당신들의 투쟁에 함께 하겠다는 것, 당신들이 웃으면서 딛을 인간의 땅을 함께 만들겠다는 우리의 약속이다.

약속을 하기도 전에, 약속을 실행하기도 전에 또 한명의 현대차비정규직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 앞에 약속의 무게는 더 무거워진다. 당신의 삶이 머물던 시간이 힘겹고, 절망스러웠다면 비록 당신의 세계는 사라졌지만 남은 이들의 세계는 생의 에너지로 가득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약속한다. 울산으로 향하는 희망버스가 약속버스이길 바란다. 삶의 희망은 저절로 굴러오는 것이 아니기때문에.

삶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박정식씨가 지난 15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에 ‘삶은 끈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삶은 동아줄처럼 단단하고 두꺼워서 쉽게 끊어질 수가 없는 반면에, 다른 누군가의 삶은 가는 실처럼 언제 끊어질지 모르게 위태롭다. 굵고 단단한 끈은 보통 여러 겹의 끈이 서로 엮어있다. 그래서 서로 힘을 받고 지탱할 수 있다.

인간도 단단하게 살아가려면 삶을 지탱하는 희망, 미래, 기쁨, 존중 등으로 엮어있어야 어려움이 닥쳐와도 쉽게 끊어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이런 것들은 혼자서 만들 수가 없다. 누군가로부터 인정받는 것이기도 하고, 누군가와 함께 만들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곁에 있어 응원하고 지지해야 만들어지는 것들도 있다. 그런데 박정식씨의 죽음을 앞에 놓고 보니 이런 것들이 한꺼풀씩 벗겨져 나가 줄은 가느다랗게 변하고 위태위태해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비정규직이라는 것이 단지 직장에서의 지위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존중하기 어렵게 만든 문제였다. 정당한 요구가 받아들여지기는커녕 차별은 고착되고, 폭력으로 억누르고, 법원의 판결마저 무시해버리는 저 거대한 현대와의 싸움으로 많이 지치고 외로웠던 모양이다. 그의 삶을 좀 더 단단하게 만들지못한 것을 후회하고 미안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지만 그는 이제 없다. 그래서 삶을 더 단단히 만들기 위해, 더 이상 삶을 놓는 일이 없도록 약속하자.

비용이 아니라 사람으로 존중받는 노동자

삶을 긍정하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을 때 삶의 끈이 단단해질 것이다. 돈을 버는 것만이, 밥을 먹기만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니까. 인간으로서의 존중받고, 생명력 넘치는 생활, 함께 사는 즐거움 이런 일상을 누리는 것이 왜 어려운 일이 되었을까?

현대 자동차의 정몽구 사장에게 하청노동자들은 돈, 비용으로만 헤아려진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판매 441만357대, 매출액 84조4697억원(자동차 71조3,065억원, 금융 및 기타 13조1천632억원), 영업이익 8조4369억원, 경상이익 11조6051억원, 당기순이익 9조563억원(비지배지분 포함)의 실적을 올렸다.

그리고 그보다 1년 전인 2011년에는 판매 405만9438대, 매출액 77조7979억원, 당기순이익 8조1049억원의 실적을 기록했다. 그런 그들이 10,000여명에 이르는 사내하청 노동자 전체의 정규직 전환비용을 최대로 잡아도 지난 해 당기순이익의 4.4%(4,000억원)정도에 불과한 배분조차 할 수 없다고 한다.

불법파견을 10년 이상 지속하면서 차별을 조작하고 노동력을 착취하면서도,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을 면제받고자 온갖 소송을 제기하고, 폭력을 사주하는 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고용된 노동자를 인간으로 보지않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삶에는 애시당초 관심이 없었을뿐더러, 아프고 피흘리고 목숨을 걸어도 상관없다. 그냥 비용만 줄이면 된다. 이런 기업이 버젓이 존재하는 이상 노동자들의 삶은 인간의 삶으로부터 멀어질 수 밖에 없다.

을들의 반격을 시작할 때

요즘 ‘갑’과 ‘을’의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세상은 갑과 을로 나뉘고 을은 갑의 눈치를 보며 갑의 횡포에 숨죽이며 살고 있다. 세상엔 을이 더 많을 것 같은데 왜 갑의 횡포는 나날이 반성은커녕 뻔뻔하게 커져만 가는가? 아니다. 을이 너무 많으니 갑이 두려운 게 없는 것이다.

계약관계에서 시작된 갑과 을의 관계는 계약을 맺으려는 그 순간부터 인간과 인간의 평등함은 사라지게 된다. 인간관계를 뺀 돈과 권력의 관계. 누군가에게 군림해도 된다고 생각한 그들, 스스로 인간적이길 거부한 ‘갑’들의 횡포를 막는 것은 '을'들의 저항밖에 없다. 끊임없이 저항하는 세상의 을들 중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러 간다. 그들을 만나서 우리도 함께 을들의 반격에 합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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