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82]치과의사가 쓴 ‘왜 호찌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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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82]치과의사가 쓴 ‘왜 호찌민인가?’
  • 전민용
  • 승인 2013.07.16 13: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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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호찌민인가?, 송필경, 에녹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임순례 감독)를 보면 한국에서 찌질하게 살던 주인공들이 베트남에 가서 구김살 하나 없는 밝은 미소를 짓고 희희낙락하며 지내는 사진들을 마지막에 펼쳐 보인다. 나는 영화 속 그 함박웃음의 정체를 나의 것처럼 느낄 수 있었다.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이하 건치)’가 꾸린 ‘화해와 평화를 위한 베트남진료단’의 일원으로 2001년 베트남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참혹함, 고통, 죄책감, 감동 같은 여러 가지 감정들을 겪으며 최종적으로 남은 것은 강보에 싸인 아이가 된 것 같은 순진무구한 편안함이었다.

베트남진료단(현재는 ‘베트남 평화의료연대’)은 올해로 벌써 열네 번째 베트남을 다녀왔다. 이 단체의 대표이자 이들 중 아마도 가장 베트남에 빠져있는 치과의사 송필경(그는 진정한 베트맨이다.^^)이 ‘제국주의 야만에 저항한 베트남 전쟁’, ‘지난밤 나는 평화를 꿈꾸었네’에 이어 세 번째 베트남 관련 책 ‘왜 호찌민인가?’를 내놓았다.

저자의 말대로 베트남은 우리나라와 매우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국 문화권으로 모든 면에서 중국의 지대한 영향을 받아왔다. 수많은 외침을 겪었지만 독립된 국가를 유지해 왔다.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 2차 대전 후 냉전 체제하에 분단국이 되었고 동족상잔의 전쟁을 했다.

그 다음부터는 극적으로 달라진다. 우리는 여전히 분단국이지만 베트남은 세계 최강의 제국주의 군대인 프랑스와 미국을 차례로 꺾고 민족 통일을 이룬다. 1858년 프랑스군이 다낭을 점령한 지 약 120년 만에 프랑스, 일본, 다시 프랑스를 거쳐 1975년 미국까지 굴복시키고 통일국가를 완성한다.

제국주의의 탐욕과 비겁함과 비윤리적 행태가 적나라한 악의 축을 구성한다. 인민들의 희생과 헌신, 청렴하고 겸손한 지도자, 유명 무명의 수많은 영웅들, 허를 찌르는 전략과 전술 등이 완벽하게 선의 축을 이룬다. 고진감래와 권선징악과 해피엔딩 등 흥행 공식의 요소들을 두루 갖춘 한편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전쟁드라마의 백미는 완벽한 진지를 구축하고 최후의 승리를 준비한 프랑스군을 바로 그곳에서 괴멸시킨 디엔 비엔 푸 전투이다. 

드라마의 중심에 호찌민이 있다. 본명은 응우엔 신 쿵, 호찌민은 170개의 가명 중 하나다. 1890년에 태어나 통일 베트남을 보지 못하고 1969년 작고한다. 21세에 베트남을 떠나 51세에 다시 돌아올 때까지 아시아, 유럽, 미국,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전 세계를 다니며 시야를 넓힌다. 공산주의자지만 민족주의자로 불리기를 즐겨했고, 이념보다 실용을 중시했다. 좌우를 막론하고 그를 존경했고, 베트남 사람들은 그를 호아저씨라는 친근한 이름으로 불렀다.   

풍부한 상식과 문학적 감수성에 더해 달필인 이 책을 읽으며 나 역시 “왜 호찌민이지?”하는 의문을 가지고 읽어 나갔다. 부제로 달린 ‘베트남의 진실이 위기의 한반도에게 묻는다.'와 그 아래 쓰여 있는 “서로를 겨누는 총부리로 증오심이 가득한 한반도, 공자의 언어로 마르크스주의를 실천한 혁명가의 해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저자의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대학 시절 미-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의 추악한 모습을 폭로한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나 베트남 학생운동을 섬세한 필치로 그렸던 ‘사이공의 흰옷’ 같은 책들은 그 당시 우리에게 대단한 영향을 주었다. 87년 민주화운동을 만든 여러 힘들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2013년 한국에서 과거의 베트남과 호찌민을 불러내 어떤 힘을 만들 수 있을까?

호찌민은 탁월한 전략가, 고결한 도덕가, 청렴한 정치가로 평가 받는다. 전략과 도덕과 정치를 종합할 줄 아는 큰 그릇, 지혜와 인격 그리고 영도력을 하나로 융해한 인격체라고도 한다.(392쪽) 범국민적으로 존경받는 지도자를 가진 적이 없는 우리가 부러워할 대목이다. 물론 이런 지도자를 가진 통일된 베트남과 여러 가지 이유로 분단된 한국의 지금까지의 역사적 결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또 다른 숙제로 남아있다.

전쟁이나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 호찌민이라는 인물은 그런 시대의 반영일 것이다. 일단 평시가 시작되면 영웅의 시대는 간다. 추앙받는 전쟁의 영웅은 많지만 존경받는 정치 지도자는 거의 없는 이유다. 평시에는 ‘나를 따르라’는 구호가 아니라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해가는 정치력과 섬세함이 중요해진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제 2의 ‘호찌민’은 불가능할까? 아마도 저자의 문제의식대로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이루는 지도자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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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양호 2013-07-17 16:50:13
베트맨...이번건 좀 웃겼어요...저도 좋은 책 잘 읽었습니다

전민용 2013-07-17 11:07:51
좋은 책 읽을 기회주셨는데요~~~ 북칼럼이 너무 늦어진 건 양해해 주세요^^ 오쿠다 히데오의 '소문의 여자'를 옆에 놓고 이 책부터 읽는 것 솔직히 어려웠답니다^^

송필경 2013-07-16 15:48:32
꼼꼼이 읽어 주셨군요. 그리고 내용을 정확히 짚어셨군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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