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77]인문의학자 강신익이 들려주는 ‘인간의 삶’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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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77]인문의학자 강신익이 들려주는 ‘인간의 삶’ 이야기
  • 전민용
  • 승인 2013.04.18 14:2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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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 강신익, 페이퍼로드

 

인간과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과학적 인문학적 답변이다. 어떤 주제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 주제에 대한 역사적 계보를 세우고 최근의 연구 경향과 결과를 섭렵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관점과 해석을 제시하는 것일 것이다. 이 책은 과거와 현재의 축적된 지식들 중에 핵심들만을 잘 간추렸고 저자의 관점과 해석 역시 미래지향적으로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생로병사의 경험적 현상을 과학적 방법으로 설명하고, 그것을 인문학의 가치와 규범을 통해 이해하려는 것이 인문의학이라고 정의한다. 이 책은 인문의학의 교과서 같은 책이다. 크게 ‘태어남과 늙어감’, ‘질병과 고통’, ‘뇌와 마음’, ‘유전과 진화’, ‘몸과 사회’라는 다섯 범주로 분류되어 있다.

태어남과 늙어감 

동물에 비해 사람의 분만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위험 요소도 많다. 진화생물학에서는 인간이 두 발로 걷게 되면서 신체의 균형을 위해 골반이 작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했기 때문으로 본다. 지능이 발달하면서 뇌가 커져서 체구에 비해 큰 아기의 머리도 문제다. 분만의 고통과 위험은 인간이 똑똑해진 대가인 것이다. 원시인부터 문명 이후까지 분만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840년대는 아직 세균을 발견하지 못한 시기였다. 빈종합병원에는 두 개의 산부인과병동이 있었다. 의사가 관리하는 1병동에서는 평균 29%, 산파가 관리하는 2병동에서는 3%의 산모가 산욕열로 죽었다. 제멜바이스라는 의사가 책임자로 부임해서 의사들이 죽은 산모들의 시신을 부검하는 것에 원인이 있다고 보고 분만 전에 손과 기구를 염소 용액으로 씻게 했다. 사망률은 급격히 떨어졌다. 제멜바이스가 과학적으로 입증하지는 못했지만 일상적 삶의 지혜를 잘 활용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우리나라는 제왕절개가 차지하는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40%에 이른다. 이런 추세라면 분만의 규범이 바뀌어 자연분만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 이미 애완견 중에는 스스로 새끼를 낳지 못해 일일이 제왕절개를 해줘야하는 종들도 많다. 인공 환경에 적응한 결과다. 

지금도 정력 강장제로 쓰이는 해구신은 수컷물개의 생식기다. 40-50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고 2-3개월의 번식 기간에 하루에 20-30회씩 통산 600-1800번의 교미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19세기 프랑스 생리학자 브라운 세카르는 어린 개와 기니피그의 고환을 으깬 액체를 주사했다. 빈의 생리학자  슈타이나크는 남자의 정관을 묶어 남성호르몬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면 젊음의 활력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세기에도 프랑스 의사 보로노프는 원숭이 고환을 500명이 넘는 남성에게 이식했다. 이 시술은 나중에 폐기되었지만 지금도 ‘원숭이 고환 Monkey gland’이라는 이름의 칵테일을 파는 술집이 많다고 한다.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의 욕망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식욕과 성욕도 그렇게 진화한 욕망이다. 인간의 성욕이 동물들과 달리 시기의 생리적 제한이 없다는 것은 생물학적 법칙보다 문화적 영향에 따른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따라서 그 욕망을 억누르는 문화적 압력 또한 정당하다. 욕망은 무조건 따라야 하는 지침도, 억눌러야 할 괴물도 아니다. 생물학적이고 문화적인 자아를 통해 적절히 관리해야 할 대상이다.

현재 300개 이상의 노화 관련 이론이 있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것이 텔로미어다. 염색체 끝에 붙은 DNA의 사슬인데 분열할 때마다 짧아진다. 정상적인 체세포가 50-60번 분열하면 더는 새로운 세포를 만들지 않는 이유다. 노화와 관련해서 돌연변이, 활성 산소, 식사량 등 여러 연구들이 있다. 오래 살고 젊어지기를 원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고 욕망이다. 자본은 이런 욕망에 기생해서 거대한 노화 방지 시장을 형성한다.

어떻게 늙는지 뿐 아니라 왜 늙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노화생물학자 스티븐 오스태드는 노화를 생존 환경과 번식의 시기와 관련해 자연선택이 진화시킨 적응 현상으로 설명한다. 중년 이후에 발병하는 치명적인 헌팅턴병은 이미 유전자를 후손에게 전해 준 뒤에 발병하므로 자연선택으로 제거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노화도 중년 이후에 발현되는 유전자라는 가설이다. 

두 번째 가설은 성장-번식-보전이라는 생물학적 과업 사이의 자원 경쟁의 결과로 본다. 포식자가 없는 섬의 주머니쥐는 잡아먹힐 걱정이 없으니 번식을 서두르지 않고 절약한 자원을 성장과 생명 유지에 쓰니 노화가 지연된다는 것이다. 거세된 환자들이 평균 14년이나 더 오래 살았다는 1960년대 연구도 있다. 

삶은 주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살아가는 것이다. 늙어감을 즐기고 늙어가는 자신을 좋아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정말로 행복한 사람 아닐까? 

질병과 고통

오감 중 과거의 기억을 불러내는 데 가장 효과적인 것이 후각이라 한다. 진화의 역사에서 생존과 번식에 가장 중요한 감각이었다. 배설물과 부패한 냄새를 피하고 잘 요리된 음식과 매력적인 이성에게서 나는 냄새에 끌리는 것은 본능에 가깝다. 인간 등 많은 동물에게 있는 페로몬도 성적 파트너에게 정보를 전달한다. 인간이 더러운 하수를 정화하고 상처를 소독한 것도 냄새라는 본능이 작동했을 것이다.

제멜바이스의 무기가 손을 씻는 것이었다면 나이팅게일의 무기는 청소, 빨래, 환기 그리고 따뜻한 위로였다. 1848년 독일에 발진티푸스가 유행하자 현장에 파견된 의사 루돌프 피르코는 연구 끝에 전염병 문제에 대한 처방으로 사회의 민주화를  제시한다. 제멜바이스는 감염의 자연적 원인에 주목했고(자연의학), 나이팅게일은 환자가 병을 이기도록 도왔고(인문의학), 피르코는 사회 구조를 바꾸려고(사회의학) 했다. 이 세 가지는 현재까지도 의학의 귀중한 가치이며 목표다.           

파스퇴르와 코흐 등에 의해 세균 이론이 공식화되면서 많은 의학적 발전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작은 부위에 생긴 국소적 감염이 퍼져 심각한 질병을 일으킨다는 ‘국소감염설’ 같은 엉터리 이론도 등장했다. 당시에 충치는 흔한 질병이었고 치과의사들은 썩은 부위나 결손 부위를 금으로 메우거나 인공치아로 대치해주는 치료를 했다. 영국의 내과의사들은 잘 못 만들어진 보철물이 국소 감염의 온상이며 이것이 정신질환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큰 병들을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이후 조금이라도 문제 있는 치아는 모두 뽑아내는 발치의 열풍이 불었다.

이 이론의 극단적인 사례는 뉴저지 주립 정신병원의 헨리 코튼이었다. 그는 정신질환자의 썩은 치아와 보철물을 제거했다. 그래도 호전이 안 되면 국소감염이 의심되는 편도, 고환, 난소, 담낭, 위, 췌장, 자궁 경부, 대장 등의 장기를 차례로 들어내는 수술을 감행했다. 끔찍한 진실이 밝혀진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최근에는 세균을 적으로 여겨 물리치려고만 하지 말고 친구로 여겨 함께 살자는 견해들이 대두하고 있다. 미국 미생물학회는 “미생물을 구해서 세상을 구하자!”는 캠패인을 펼치고 있다. 과학은 자연을 정복하는 무기가 아니라 자연을 제대로 알아가는 앎의 도구라는 자각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세균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나는 세균이다. 나는 같은 유전자를 가진 후손을 많이 퍼뜨리는 방향으로 행동한다. 의료인들이 손을 씻지 않아 쉽게 나를 감염시킨다면 그 사람이 심하게 앓거나 죽어도 나는 손해가 없다. 곧 다른 사람에게 감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인들이 손을 자주 씻어 감염의 기회가 줄어들면 나는 지금 있는 곳에서 오랫동안 살아가는 길을 모색할 수  밖에 없다. 즉 독성이 약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편이 이득이다.

전쟁터에서 중상을 입은 병사는 안전한 장소로 가서야 통증을 느낀다고 한다. 침술마취도 통증이 물리적 자극에 대한 반응일 수만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밀가루를 진통제로 알고 먹고도 통증이 사라지는 플라세보 효과도 있다. 통증은 물리적 자극의 결과만이 아니라 그 자극의 의미에 대한 뇌의 무의식적인 해석의 결과이다.

통증이 물리적 자극이 말초에서 중추로 가는 상향 회로와 그것을 해석해 의미가 부여된 뇌의 신호가 전달되는 하향회로가 상호작용한 결과라면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자극의 강도와 양을 줄여야겠지만 하향신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고려한 다른 새로운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고통의 기원은 생존이다. 생존에 유리한 자극은 받아들이고 불리한 자극은 멀리한다는 생명의 법칙이 고등동물에 와서 쾌락과 통증이라는 감각으로 진화한 것이다. 포유류부터는 감정을 느끼는 변연계가 진화했고 사회생활을 하는 동물은 공감 회로를 진화시켰다. 거기다 인간은 생명 유지와 감정을 담당하는 뇌 부위를 통제할 수 있는 전전두엽을 진화시켰다.

결국 생존을 위한 일차적 통증은 이차적으로 발달한 속성인 감정, 공감과 교류, 이성의 통제가 더해지고 문화화 되면서 ‘의미’있는 고통이 된 것이다. 인간은 자신에게 가해진 고통의 의미를 찾아내도록 진화한 유일한 동물일 것이다. 지금은 그 의미 찾기의 첫걸음을 떼는 단계다.

뇌와 마음

자우림이 부른 ‘가시나무’에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란 가사가 있듯 내 속엔 통일 되지 않는 ‘나들’이 가득 들어 있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빠른 마음과 느린 마음이 있다. 본능과 직관에 따라 움직이는 코끼리와 목적에 따라 코끼리를 조정하는 사육사를 두 마음에 비유할 수 있다. 대체로 전자는 감성과 욕망, 후자는 합리적 이성이라고 볼 수 있다. 연구에 의하면 빠른 마음에 따라 행동한 후에 느린 마음으로 그 행동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두 마음의 기원을 생존 조건에서 찾는다. 살기 위해서는 즉각적인 위험 회피 본능이 먼저였고 안전을 확보한 다음에는 시간이 걸리는 먹이를 찾고 번식하는 활동을 했다. 먹이와 배우자 선택을 위해 진화된 습성이 느린 마음의 뿌리이며 문명의 토대가 되었다. 하지만 빠른 마음이 없이는 느린 마음도 없다. 이성이 문명의 원동력이지만 빠른 마음인 다양한 감수성이 그 보다 앞선 뿌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느리고 확실한 마음과 함께 부당하게 억압되거나 무시된 빠른 마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탈리아 파르마대학에서 원숭이를 대상으로 연구하다 우연히 거울뉴런(거울신경세포)을 발견했다. 다른 동물이나 사람의 상태에 동조해서 함께 활성화되는 신경세포를 발견한 것이다. 이것은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이 뇌 속의 특정 활동을 통해 서로 공감하도록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함께 행동하고 기쁨과 아픔을 함께 느끼는 것이 생존과 번영에 유리했을 것이다. 최근 자폐환자나 사이코패스를 대상으로 거울뉴론의 결함 여부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함께 뛰노는 사람들이나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는 경우 모두 공감하는 대상과 같은 뇌 부위에서 비슷한 활성 패턴을 보인다. 사랑은 두 사람의 뇌 활성 패턴이 공명을 일으키는 작용이다. 마음은 1천억 개나 되는 뉴론들이 하나당 1천 개 이상의 뉴런과 닿으면서 만드는 무수한 연속적 활동의 패턴이고 이것이 세상에 펼쳐지면서 만들어내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라이트 씨는 림프육종으로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였다. 기적의 치료약이라는 실험신약이 주사되면서 라이트 씨의 병세는 종양이 줄어드는 등 극적으로 호전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약의 효과가 별로 없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다시 악화되었다. 담당의는 편법을 써서 약효를 크게 개선한 후속약이 개발되었다고 속이고 증류수를 주사했다. 라이트 씨의 병세는 처음보다 더 극적으로 호전되더니 얼마 후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했다. 한 의학협회의 신약의 효과가 없다는 발표를 우연히 보게 되면서 병세가 재발된 그는 재입원한지 이틀 만에 사망했다.

‘할머니 손은 약손’처럼 마음과 이야기에 따라 몸이 달라지는 플라세보효과는 흔히 경험하는 현상이다. 그 이야기가 몸의 의도와 상반되어 악화되는 것은 ‘노세보’라 부른다. 플라세보는 아픈 가족과 동료를 정성껏 보살피던 진화적 조상들의 몸속에 차려진 천연의 약방이다. 동료를 보살피고 위로하는 행위는 침팬지, 보노보, 돌고래 사회에서도 발견된다. 상처를 핥거나 덮어주고 약초를 주는 등 치유 효과가 있는 행위와 위로의 행위가 동시에 행해지다 보니 두 행위가 조건화되어 위로의 행위만으로도 치유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의사들 사이에 내려오는 격언이 있다. “가끔 치료하고 자주 도와주고 항상 위로하라!” 치료라는 과학적 행위와 돕고 위로하는 사회적이고 인간적인 행위를 다시 연결하는, 현대 의학에서 잃어버린 고리를 플라세보 현상을 통해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팔이나 다리를 절단한 사람의 95%가 사라진 부위의 존재를 느낄 뿐 아니라 그 부위가 가렵거나 아픈 증세를 보인다. 뇌와 말초 사이에는 끊임없이 신호를 주고받는데 말초로부터 갑자기 정보가 사라지면 뇌는 정보를 업데이트 못하고 직전에 형성된 회로에 따라 신호를 만들어낸다. 이 신호는 말초로 가지 못하고 중추를 맴돌며 반복된다. 환상통은 중추와 말초의 소통이 단절되어 중추가 현실에 맞지 않는 신호를 만들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라마찬드라박사는 환상통에 대한 간단한 해결책을 생각해냈다. 환자의 몸 가운데 거울을 놓고 오른손을 비춰 비춰진 손을 왼손으로 착각하게 하는 방법이다. 오른손을 움직이며 거울을 보면 뇌는 왼손이 움직이고 있다고 느끼고 그 순간 막혔던 신호들의 통로가 열리고 통증을 일으켰던 신호도 주변으로 흩어진다. 뇌를 속여 안정된 몸과 마음을 얻는 것이다.

뇌는 몸을 지배하는 독재자가 아니라 몸과 환경에서 오는 다양한 신호와 정보를 종합해 새로운 대처방법을 만들어내는 그래서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만담꾼이다.

유전과 진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생존과 번식을 추구하는 생명의 속성을 복제품을 최대한 퍼뜨리려는 유전자의 이기적 행동에서 찾는다. 물론 생명체들이 이익의 관점에서 상호이타주의를 보인다는 것도 말한다. 반면에 생물학자 크로포트킨은 ‘상호부조’에서 생명의 본질은 상호 협력을 통한 상생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현실에서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도 하고 때론 무한히 희생적이기도 하다. 경쟁과 협력은 인간이 갖는 두 가지 본성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유전자는 낱말이고 유전체는 사전이고 단백질은 낱말로 이루어진 문장이라고 볼 수 있다. 단백질이 발현하는 형질은 문장들로 구성된 단편소설이고 인생은 단편소설들이 모인 대하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유전자의 변화 없이도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따라 활성화되는 유전자가 달라져 다른 형질이 발현되고 이것이 후손에 까지 전달되는 것을 후성유전이라 한다. 유전자에 메틸이 추가되거나 유전자를 둘러싼 히스톤 단백질이 변화되어 형질발현이 달라지는 매커니즘도 있다. 이렇듯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많은 증거가 있다.

유전은 유전자의 명령을 단순히 실행하는 과정이 아니라 늘 되먹임 과정이 있고 수시로 자연의 조정과 감시를 받는 복잡계다. 세포 내외의 환경에 따라 구조와 기능을 바꾸는 역동적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같은 유전 정보를 가진 줄기세포를 만들어 이식하기만하면 망가진 조직을 재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게이 유전자는 있을까? 동성애 성향에 영향을 주는 유전적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게이 유전자라 부르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을 많은 연구들이 보여준다. 유전이 아니라면 다음으로는 뇌를 의심해 볼 수 있다. 유전적 요소가 뇌의 몇몇 부위를 특정한 패턴으로 바꾸고 그로 인해 동성애를 비롯한 삶의 취향을 가지게 된다고 볼 수 있다. 동성애는 심리적 사회적 생물학적 요소가 상호작용하며 만드는 성적행동의 패턴인 것이다.

두드러진 사건과 함께 했던 경험은 무의식에 기록되어 의식보다 더 강력하게 삶을 지배한다. 어려서 학대를 받으면 공포와 증오의 회로가 과도하게 활성화되고 반복되면서 뇌의 물리적 구조로 굳어진다. 유사한 상황이 오면 이 구조가 활성화되고 공격적인 행동을 유발한다. 반복되는 학대로 공격적으로 변한 개를 치유하는 과정을 보면 건강과 행복은 합리적 판단이 아닌 정서적 경험을 통해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나친 단순화일 수 있지만 대체로 보수는 오래 전에 진화한 경쟁의 본능을 진보는 상대적으로 최근에 진화한 협동의 가치를 중시한다고 할 수 있다.

뉴욕대 심리학자 조나단 하이트는 정치적 마음을 다섯 조각으로 나누고 진보와 보수가 추구하는 가치와 관련지어 설명한다. 진보는 배려와 공정성의 가치를 중시하고 보수는 질서와 권위에의 복종, 소속 집단에 대한 충성, 순수성 등의 가치를 더 강조한다는 것이다. 진보는 소속 집단에 대한 충성이 약해 자주 분열하고, 보수는 결속력은 강하지만 그 때문에 도덕적 자정작용이 약해 부패하기 쉽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친밀한 개인과 집단의 편을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진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서 도덕심리학자들은 도덕 감정이 집단 내의 결속력은 높이지만 다른 집단은 경계하는 심리 상태로부터 진화했다고 한다.  

진보와 보수의 가치 체계에서 중요한 특징 하나는 진보가 다섯 가지 가치에 차등을 두어 배려와 공정의 가치를 특별히 강조하는 반면  보수는 선호하는 가치의 불균형이 진보만큼 심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이트는 이것이 유권자의 정서에 호소하는 선거에서 보수가 유리한 이유라고 한다. 진보는 두 가지 가치만 강조하지만 보수는 다섯 가지 가치를 두루 활용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 공화당은 낙태 반대나 가정의 가치 등 유권자의 도덕 감정에도 호소하는데 민주당은 감성보다 합리적 이성에 주로 호소하므로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흔히 선거는 정책대결이어야 한다고 하지만 합리적인 정책이 유권자의 정치적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다는 게 정치심리학자들의 결론이다. 굶주리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한 모금에 사용하는 유니세프의 포스터에는 설명 대신  고통스런 아이의 눈망울만 부각된다. 이것이 진화가 우리에게 준 마음이다. 선거에서도 합리적인 정책과 더불어 유권자의 내면에 있는 도덕 감정을 끌어내는 것이 관건이다. 물론 정략이지만 과학이고 현실이다.

2010년 가디언의 보도에 따르면 스스로를 보수 또는 진보라고 밝힌 런던대학생 90명을 대상으로 뇌를 스캔했더니 보수는 편도체가 진보는 전측대상회 부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편도체는 주로 공포를 담당하고, 전측대상회는 외부 정보의 수용과 학습을 담당한다. 보수는 생존의 일차적 조건에 민감하고 진보는 변화하는 환경에 더 민감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진화생물학과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진화의 추동력인 자연선택은 변이, 유전, 선택의 과정이다. 모든 생명체는 같은 종이라도 서로 다르다(변이). 그 다름은 후손에 전해진다(유전). 다른 형질 중에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것만 살아남아 후손에 전해진다(선택).

남녀의 사랑도 후손을 많이 남기기 위해 선택된 심리적 형질이다. 우리 조상에게 임신은 진화적으로 필수지만 현실적으로 위험한 과정이었다. 임신된 몸은 엄마와 아빠의 유전적 이익이 충돌하는 곳이기도 하다. 아빠의 유전자는 아이를 크게 키우려고 하고 엄마의 유전자는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지나치게 키우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인간은 직립보행으로 좁아진 산도와 커진 뇌 때문에 성숙되지 않은 아이를 낳아야 했다. 이 때문에 뇌의 발달 과정에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문명을 이룰 수 있었다. 번식을 위해 진화한 사랑을 우리가 문화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생물-문화적인 존재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몸과 사회

수렵채집인들은 다양한 동식물을 먹어 균형 잡힌 영양상태가 가능했다. 자주 이동해서 오물이 축적되거나 전염병이 발생하지도 않았다. 자연재해나 자연의 위험은 컸으므로 주술과 종교가 발달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쉽지 않아 유아살해도 적지 않았다.

농업이 가능해지면서 신분제도가 시작되었다. 반복되는 단순 노동은 근골격계의 퇴행성 질환을 불러왔다. 가축을 기르고 정착 생활을 하면서 감염병과 전염병들이 생겼다. 곡물을 주식으로 삼으면서 칼로리 섭취는 늘기도 했지만 영양의 균형이 깨지거나 영양실조가 늘었다. 고대 이집트의 미라를 조사해보면 평균수명이 30-35세 정도였다.

20세기 이전의 무서운 전염병들이 근대의학의 탄생으로 정복되는 듯이 보였지만 최근 새로운 병들이 등장하고 있다. 미국에서만 한 해 1만 9천명이 사망하는 슈퍼박테리아나 에이즈, 사스, 에볼라, 조류 독감 등 신종 바이러스 질환에 변형 단백질(프리온)의 광우병까지 다양하다. 이것은 모두 잘못된 먹이를 먹이거나 새의 날개 근육을 잘라 새장에 가두는 등 자연의 질서에 균열을 초래한 인간이 자초한 일이다.

무너진 질서에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인간은 질병을 통해 세상을 앓으면서 세상을 알아간다. 앎에 끝이 없듯이 앓는 질병을 완전히 정복하는 날도 없을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과 평균 수명의 관계그래프(241쪽)를 보면 국민소득 1만 달러까지는 소득과 수명이 강한 상관관계를 보이지만 그 이후에는 아무리 소득이 늘어도 더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득 수준에 비해 평균 수명이 상대적으로 짧은 나라들이 눈에 띄는데 소득 격차가 크고 상호 신뢰 수준이 낮은 나라들임을 알 수 있다.

최근 소득 불평등 정도가 질병 및 고통과 깊은 상관관계에 있다는 연구결과가 주목받고 있다. 평균 수명과 비만, 유아 사망률, 심장병과 당뇨, 약물 남용과 정실 질환 등의 건강 수준은 물론 학업 성취도, 10대 출산율, 폭력과 투옥, 살인 등의 사회적 지표도 소득 불평등과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사회가 평등해지면 가난한 사람뿐 아니라 부자들도 더 오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산다고 한다.

불평등이 심한 사회는 일반적으로 경쟁심과 상호 불신이 깊고 범죄가 잦을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이 공포와 분노를 촉발하는 방어의 심리 기제를 부호화한 예측 회로를 갖고 이것이 경험을 통해 강화되면 몸과 마음은 만성 스트레스로 피폐해지며 질병과 범죄로 연결된다. 몸과 마음과 환경은 뇌를 매개로 하는 상호 되먹임의 구조로 얽혀 분리되지 않는 경험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건강이 생물-심리-사회적 안녕인 이유의 근거다. 몸은 시대를 담는 그릇이며 시대의 병을 앓는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의 몸은 지금 풍요와 불평등을 앓고 있다.    

삶을 향유한다는 것은 내 속에 세상을 새기고 그 세상의 거울로 나를 비춰보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 수많은 네트워크가 생긴다. 삶은 그런 의미의 흐름과 그 흐름의 패턴이 만들어 가는 이야기다. 죽음은 삶을 향유함으로써 극복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일상적으로 일하고 즐기는 것이 행복한 삶과 죽음의 핵심이다.     

의미 있고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가급적 소개하다보니 글이 길어졌다. 워낙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압축적으로 쓴 책이라 불가피했다. 책에 있는 풍부한 사례와 이야기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꼭 책을 읽어보시길 바란다.

진보와 보수의 마음에 대한 하이트의 견해에 대해서는 인간의 본성 중 문화적 요소의 영향이 큰 부분이므로 미국인과 다른 한국인의 마음 조각을 더 연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삶과 죽음, 행복의 의미에 대해서는 특히 더 많은 철학적 윤리적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내용 소개를 생략한 문제 많은 네트워크 치과의 원조 격인 발치왕 페인리스 파커 이야기, 저자의 이웃에 사는 팔다리가 없는 어르신의 사연, 옥시토신과 결혼제도 같은 사랑이야기 등 흥미 있는 내용들이 많다. 내용의 일부만을 반영하는 책 제목은 마음에 안 들었다.

책을 3차원 그래프로 본다면 과거와 현재의 지식들과 미래지향적인 해석 등 세 개의 축 모두를 잘 갖춘 책이라고 서두에 말했었다. 그런데 하나의 차원을 추가하고 싶다. 그것은 세상과 인간을 대하는 저자의 훈훈하고 따뜻한 마음이다. 눈에 보이는 축은 아니지만 마음으로는 느낄 수 있는 4차원의 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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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령 2013-04-23 18:19:51
형,서평쓰기에는 에너지와 지식이 너무 넘치시네요. 차라리 책을 쓰세요.

김용진 2013-04-18 17:06:01
그런데 전민용 선생님이 재미있는 부분을 너무 많이 알려주어서 책 읽는 재미가 좀 떨어질 듯...
그래도 꼭 직접 사서 읽어보길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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