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나라 '대한민국' 하나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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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나라 '대한민국' 하나 되기를"
  • 윤은미 기자
  • 승인 2013.04.0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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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연 현장르포]베트남전쟁(American war in Vietnam) 한국인 학살의 생존자 '런 아저씨'를 만나다

 

진료단 일정 넷째 날. 필자를 포함한 진료팀은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 지역 중 하나인 빈딩성을 찾았다.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통계자료에 따르면, 빈딩성에서의 피해지역은 총 6개 마을.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따이빈사(구 빈안) 안빈촌의 '고자이마을'이다. 이 마을은 1966년 2월 26일 한국군에 의해 단 1시간 만에 주민 380명 전원이 학살되는 비극을 겪었다. 당시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진료단은 이날 빈딩성의 당시 참사 흔적이 남아있는 위령탑과 박물관을 방문했다. 아맙 구수정 본부장은 이 지역의 희생자 역시 대부분이 여성과 노인,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지어지기도 전에 참혹한 죽음을 맞이한 갓난아기들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대로 위령탑에서는 사망한 여성들의 이름과 '이름없음'으로 새겨진 아이들의 숫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이날 진료단은 따이빈사의 한국군 학살 지역 중 하나인 안빈촌 '안칸마을'에서 학살 생존자를 만나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을 그대로 전해들을 수 있었다.

고자이마을에서 1~2km정도 떨어진 인근마을에 살고 있는 응웬떤런(Nguyen Tan Lan) 씨가 바로 그 참혹한 역사의 산증인이다. 구수정 본부장은 1999년 처음 이 마을을 방문했을 때 한국군 학살로 갓난아이였던 딸을 잃었다며 자신을 향해 달려들었던 한 주민을 온 몸으로 막아줬던 사람이 런 씨 아저씨라고 소개했다.

이날 런 씨는 담담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이했지만,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는 일을 무척 괴로워했다. 하지만 그는 베트남과 한국의 젊은이들이 찾아왔다는 말에 이내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이 15세였던 당시의 기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런 씨는 2월 26일 한국군들의 학살에 의해 어머니와 여동생을 잃고 하루아침에 고아가 돼 마을사람들 손에 자랐다. 런 씨는 가족들이 이날 학살에서 수류탄을 맞았고, 어머니는 하반신이 통째로 날아가고 여동생은 머리통이 터진 채 눈 앞에서 죽어갔다고 했다. 그는 고통스러운 당시 기억을 꺼내놓으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런 씨 역시 반공호를 향해 도망치려던 순간 발목에 수류탄을 맞았다고 했다. 그리고 당시 15세 청년이었던 그의 여생은 참혹했던 그날의 악몽으로 뒤덮였다고 한다.

'살아남은 자의 고통'은 여전히 그의 몸과 정신을 괴롭히고 있다. 런 씨는 수류탄이 터지면서 수천 개의 파편이 온몸에 박혔고, 지금도 그 고통에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미친사람처럼 들판을 뛰어다닌다고 했다. 수년 전 베트남평화의료연대의 도움으로 한 차례 파편 제거 수술을 받았지만, 큰 파편 일부만이 제거됐을 뿐 여전히 잘잘한 파편들이 몸속을 돌아다녀 쇠약해진 런 씨를 괴롭히고 있었다.

자신이 겪고 있는 육체적 고통을 표현할 때도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런 씨의 표정이 일그러진 때는 어머니와 여동생의 죽음을 이야기 할 때였다. 수류탄을 맞고 한밤중에 깨어났을 때 꼼짝 없이 누워 여동생의 끔찍한 비명을 소리를 들어야했던 런 씨는 여동생과 어머니의 참혹했던 죽음을 자신의 몸에 박힌 파편보다 더 아프게 기억하고 있었다.

한국군에 의해 참혹하게 가족을 잃은 런 씨가 지금 우리를 마주하고 있음에 진료단은 숨죽여 울었고, 통역을 거치지 않고 런 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베트남 학생들은 곳곳에서 통곡했다.

15살, 몸이 채 회복되기도 전에 내 가족의 복수를 위해 베트콩이 됐었다는 런 씨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어떤 상황에도 전쟁은 안된다. 여러분의 나라(한국)가 하나가 되길 바란다" 였다.

우리가 떠나는 버스에 올라탔을 때 런 씨는 한 쪽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다음에 자신을 찾아올 때는 너희나라가 통일이 됐길 바란다"는 런 씨의 마지막 말이 그의 몸에 박힌 수류탄 파편처럼 우리 마음 속을 아프게 돌아다닐 것이다.

아래는 런 씨의 이야기 전문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런이라고 합니다. 올해 62세 입니다.

저희 마을에 학살이 일어났던 때는 제가 15살 때 였습니다. 음력으로는 1966년 1월 23일, 양력으로 2월 26일이었습니다. (포격이 처음 발발한 것은) 아마 새벽 5시 경으로 기억합니다. 갑자기 우리 마을을 향해 사방에서 포격이 시작됐습니다. 우린 자고 있을 때였는데, 당시 워낙 포격이나 폭격이 많았기 때문에 집집마다 반공호가 있어서 마을 사람들은 모두 반공호로 뛰어들었고 우리 가족도 그랬습니다.

밖에서는 곧바로 포격소리와 함께 엄청난 총소리가 났습니다. 저는 반공호에 엎드려 점점 총소리가 가까워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총소리와 함께 아비규환 같은 외침과 울음소리, 비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굉장히 참혹한 소리였어요. 그렇게 총소리는 제가 있는 반공호에 가까워졌다 멀어졌다가를 반복해 오후 4시쯤에는 좀 멀어지는 듯 하다가 또 다시 우리집 반공호까지 가까이 온 게 느껴졌습니다. 그 때 한국군들이 "BCBC(베트콩 나와)!”라고 소리쳤고 우리는 이내 끌려나왔습니다.

제가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우리 가족들이 논밭 위에 있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25가구 정도 됐던 것 같습니다. 한국군들이 우리에게 조용히 엎드려 있으라고 명령했고, 마을사람들이 다 엎드리자 한국군들이 주변을 에워쌌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뭐라고 크게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를 기점으로 한국군들이 우리를 향해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수류탄이 터지자 포연이 자욱해졌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우리 가족이 무사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희미한 가운데 주변을 둘러보니 어떤 사람은 머리가 터져 뇌수가 흘러나오고 있고, 어떤 사람은 배에 수류탄을 맞아 창자가 튀어나와있었어요. 그 와중에도 아직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을 찾아 헤매며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정말 참혹한 모습이었습니다. 그 순간에 수류탄 하나가 제 발목에 떨어졌습니다. 반공호 쪽으로 세 걸음 정도 걸어 나갔을 때였습니다. 수류탄이 터지면서 파편들이 제 몸에 다 튀었고 곧바로 기절했다 한참 후 깨어보니 밤이었습니다.

제 곁에는 그 때 살아남은 마을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 어머니는 하반신이 다 날아갔고, 제 여동생은 머리에 수류탄을 맞아 머리가 다 짓이겨져있었습니다. 저는 누워있는 내내 제 여동생의 끔찍한 비명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 시간에 저에겐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밤 12시쯤 여동생이 조용해졌고 마을사람들은 내 여동생을 돗자리에 말아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마을사람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 어머니도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 실려 나가는 걸 지켜보며 저는 고함을 치다 또 다시 기절했습니다.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 저는 이 세상에 혼자 남게 됐습니다.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마을 주민들이 저를 거둬 보살피고 키워줘 오늘날까지 살아있게 됐습니다.

제가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은 그날 하루, 우리 마을 25가구의 비극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저는 알게 됐습니다. 한국군들이 지나는 경로마다 이렇게 학살을 자행했다는 것을. 제가 그날의 이야기를 하자면 끝도 없이 많은 시간이 걸릴 겁니다. 제가 이렇게 짧게 요약해서 들려드릴 수밖에 없다는 게 한편으로는 좀 안타깝습니다.

지금까지도 전쟁의 후유증은 참혹합니다. 전 지금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다리 쪽에 자잘한 파편들이 엄청나게 박혀있습니다. 예전에는 종아리부터 무릎까지의 부위가 집중적으로 아팠고 주로 밤에 고통이 심해졌는데, 지금은 파편들이 발바닥까지 내려가 24시간 내내 통증이 있어요. 양쪽 발을 끌어안고 씨름하다 밤을 지새우는 날이 부지기수입니다.

학살 직후 여러분들이 왔다면 결코 용서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욕을 하고 소리를 질렀을 수도 있겠죠. 실제로 구수정 씨가 처음 이 마을을 찾았을 때도 마을주민들의 반감은 거셌어요.

저도 학살 직후 15살 때는 몸이 채 회복되기도 전에 내 가족의 복수를 위해 베트콩이 돼 군대로 들어갔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베트콩이 된 청년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정부에서도 과거를 덮고 미래로 나가자고 끊임없이 말해왔고, 저 역시 그 말에 따르기로 했어요.

젊은 친구들이 많이 왔네요. 여러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딱 한마디에요. 앞으로 어떤 이유에서든 어떤 목적에서든 전쟁만큼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절대 이런 비극을 만들지 말아야 해요. 베트남이 세계 각국으로부터 많이 뒤쳐져 있고 여러분들이 그만큼 많이 배우고 발전시켜나가야겠지만, 그 과정에서 국가 간의 충돌이 생긴다 해도 꼭 현명하게 대처하길 바랍니다. 내가 겪었던 참혹한 전쟁의 비극이 여러분 세대에서는, 앞으로 후세에서는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그것이 제 유일한 바람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젊은 친구들에게도 말하고 싶어요. 나는 여러분의 나라가 하나였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한국인들이 저를 찾아오면, 남한과 북한 어디서 왔느냐고 묻지 않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바로 여러분들 세대에 여러분의 나라가 꼭 하나로 통일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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