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억의 막걸리나]금정산성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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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억의 막걸리나]금정산성 막걸리
  • 조남억
  • 승인 2012.05.14 11:18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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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 조남억 사무국장

 

본 연재코너는 인천건치 조남억 사무국장이 프레시안 인문학습원의 막걸리 학교를 다니면서  경험한 다양한 막걸리의 맛을 소개하고자 마련됐습니다. 우리 전통주 '막걸리'를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편집자주)

퇴근 후 집에 일찍 들어가 저녁밥을 먹으려면 꼭 막걸리 한잔이 생각난다. 수천가지 막걸리들 중에서 최근에 내가 제일 많이 찾는 막걸리는 부산 금정산성 막걸리다. 입맛이 없을 때, 싱싱한 회초무침 한 젓가락 입에 넣고 씹으면 입안에 침이 고이고 입맛이 살아나는 것 같은데, 이 막걸리가 꼭 그 느낌을 준다. 은은한 자두의 신맛이 돌아 기분까지 상쾌하게 해준다.

막걸리의 맛을 보통 세 가지로 이야기 한다. 쓴 맛, 단 맛, 신 맛이 그것인데, 이 막걸리는 신 맛의 으뜸 같다. 이런 맛 좋은 신 맛이 나는 이유는 이곳만의 독특한 누룩 때문이라고 하는데, 전통의 방법대로 누룩을 만들고 있는 전국에서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금정산성 막걸리의 역사를 보면, 우리나라 막걸리의 역사와 괘를 함께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금정산성 안에 자리 잡은 마을에는 논밭이 적고 돌이 많아 옛날에는 먹고 살기가 힘든 동네였다. 그래서 남자들은 나무를 해서 땔감으로 내다팔고, 여자들은 누룩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다. 누룩을 만들기 위해 여자들은 30리가 넘는 산 밑에서 생밀을 사다가 맷돌에 갈아 피자처럼 둥글납작하게 디뎠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주세법이 시행되어 허가받지 않은 양조장에서는 술을 만들어 팔지 못하게 되자 이 마을은 탈법, 불법의 소굴이 되고 말았다. 이런 조치는 해방 후에도 계속 지속되었다. 국가 세금의 큰 부분을 주세가 담당했기 때문이었다. 세무서나 경찰서의 극심한 단속에도 불구하고 동네 사람들은 살기 위해, 기를 쓰고 누룩을 디디고 술을 담갔다. 단속반들이 산을 넘어오면, 순식간에 마을은 전쟁터로 변했다.

주민들은 똘똘 뭉쳐 누룩을 찾으러 온 단속반들 차 앞에 드러눕고, 아녀자들은 마른 누룩을 이고 산으로 도망쳤다. 한쪽에서는 아직 덜 마른 누룩의 형체를 없애기 위해 마구간에 던지기도 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각되어 빼앗긴 누룩이 차에 실리면, 이를 증거로 삼지 못하게 똥물을 뒤집어씌우고, 차바퀴를 펑크 내며, 때론 차를 뒤집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난투극도 벌어졌다. 경찰력이 다시 투입되기까지는 가까운 구포까지 왕복 60리길을 되짚어 올라와야 했으니, 그때쯤이면 주모자는 산 속으로 도망친 뒤였다.

마을 사람들은 그 누룩이 발견된 집이 누구의 집인지 구분할 수 없게 하려고 문패도 달지 않고, 돌아가면서 살았다. 그렇게 금정산성마을은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1970년대까지 생존을 위한 눈물겨운 투쟁을 계속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이 동네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전과자들이라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기 전 부산에서 군수사령관으로 재직했다. 그 당시 금정산성 막걸리를 자주 마셨고, 그 밀주 맛을 못 잊어 해운대 동백섬에 있던 대통령 휴양지로 쉬러 올 때면 금정산성 막걸리를 찾았다고 한다. 그러던 차 1979년 박 대통령이 부산에 연두 순시를 왔을 때, 금정산성 주민들과의 문제로 골치아파하던 부산 시장의 요청을 받아들여, 금정산성 막걸리가 양성화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통령령 민속주 1호로 선정되었다. (출처: 막걸리, 넌 눈구냐?  허시명 저)

막걸리는 가난한 민중들의 주식이었다. 집에서 김치를 담그듯 하던 음식이었다. 3만개가 넘던 주막에서 스스로 담가서 팔던 음식이었다. 1920년대 주막에서 술을 직접 만들어서 팔지 못하게 하고, 양조장에서 받아서만 팔게 하면서, 수많은 개성 넘치던 막걸리들이 사라졌다. 1960년대 쌀로 막걸리를 만드는 것을 금지하고 미국에서 수입된 밀가루로만 만들게 하면서, 또한 양조장에 일본에서 수입된 개량 누룩 제조법을 보급하고, 그것으로 술을 만들게 함으로서 한국 전통 누룩제조법은 사라지고, 전통 막걸리 제조법도 사라져갔다. 그러나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통의 방법대로 누룩을 디디면서, 막걸리를 빚어온 곳이 이곳이었다고 하니, 그 어려운 시절 지켜내신 분들의 노고까지 느껴지면서 막걸리 맛이 더욱 색다르게 다가온다.

2001년 이후로 주류의 지역 한정 판매가 폐지됨에 따라, 전국 어디에서든지 구입할 수 있게 되었고, 택배의 발달로 인하여 주문 다음날이면 아이스박스에 담겨오는 막걸리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입맛 없고, 식욕이 없을 때마다 나의 상큼이, 금정산성 막걸리 한잔 마시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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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enker 2012-05-15 11:13:25
아, 이 연재 너무 좋아...ㅎㅎ

schenker 2012-05-15 11:13:10
아, 이 연재 너무 좋아...ㅎㅎ

전양호 2012-05-14 16:49:14
시켜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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