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개혁운동과 시민운동의 성과 및 한계
상태바
의료개혁운동과 시민운동의 성과 및 한계
  • 김창보
  • 승인 2011.11.15 14: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건강권 시민운동과 의료개혁운동(上)

 

본지는 오늘부터 건강세상네트워크의 홈페이지(www.konkang21.or.kr)에 실린 기사 및 칼럼들을 연재합니다. 건강세상네트워크는 지난 2003년 창립 이래 모두의 평등한 건강권 실현에 적극적으로 앞장서 왔으며, 시민단체를 비롯한 의료공급자와 환자 간의 연대 활동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더 자세한 소식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편집자주)

 

건강권 시민운동의 등장과 의료개혁 운동

건강세상네트워크가 출범했던 2003년은 시기상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개혁기였다. 무엇보다 2000년 여름, 의약분업이 도입되었고 통합된 국민건강보험 체제가 출범했다. 그러나 2001년 건강보험 재정위기를 맞이하였고, 이러한 상황에서 건강보험 통합과 의약분업을 뒤집으려는 반개혁적 시도는 지속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시점이지만 건강권 시민운동이 본격 출범할 수 있었던 힘은 두 측면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하나는 1990년대 의료보험 통합운동을 통해 시민운동이 탄생할 수 있는 대중적 기반을 만들었던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2001년 백혈병 환자들의 글리벡 약가 투쟁으로부터 본격 분출되기 시작했던 ‘환자운동’이었다.

이 둘은 자연스럽게 결합되었다. 즉, 건강권 시민운동의 탄생은 곧바로 통합건강보험과 의약분업을 지키기 위한 임무를 당장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것은 건강권 시민운동이 ‘보건의료 개혁운동’을 중요한 과제로 설정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이런 상황에서 ‘의료개혁운동’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건강권 시민운동이 세상에 나왔던 시점은 김대중 정부를 이어서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던 시기와 같다. 즉, 위로부터는 민주적이고 개혁적 성향의 정부가 가버넌스 구조를 확장하던 시기이기도 했으며, 시민운동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시기를 거치며 규모와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던 시기이기도 했다. 건강권 시민운동은 이런 분위기를 타면서 성장해 나갔다.

특히 보건의료 정책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시민과 환자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포지션을 차지했던 점 역시 건강권 시민운동이 빨리 자리잡고 관계 형성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개혁운동’은 ‘환자권리’, ‘가난한 이들의 건강권’ 운동과 함께 건강세상네트워크의 3대 핵심 과제로 자리잡았으며, 2003년 이후 현재까지 건강권 시민운동이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다. 건강세상네트워크가 출범한 이후 수행했던 의료개혁 과제를 연도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003년: 건강보험 DRG 전체 의료기관 확대 촉구, 서울시립동부병원 민간위탁 반대

2004년: 건강보험 본인부담상한제 도입 방안 논쟁

2005년: 암부터 무상의료, 국민요양보장제도 도입 운동(2005~2007)

2006년: 민영의료보험법 제정 운동, 의료급여법 개악 반대

2007년: 약가 대응과 한미FTA 반대

2008년: 제주도 영리병원 반대, 의료법 개정안(의료법인 인수합병, MSO 등) 반대

2009년: 영리병원 추진 반대, 저소득층 건강권 보장 (건강보험료 체납자 문제 해결 촉구)

2010년: 원격진료, 건강관리서비스법 등 의료민영화 반대, 건강보험대개혁(‘100만원의 개혁’)

의료개혁운동의 성과와 한계

이와 같은 과제를 수행하면서 건강권 시민운동이 지향했던 가치는 ‘공공성(국가의 책임 강조)’, ‘건강불평등 해소와 형평성 추구’, ‘권리로서의 건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가치에 기반해 정책적 이슈를 해석하고 대응논리를 펼치며 시민과 환자의 입장에서 대안을 제시했다.

이러한 의료개혁운동은 행정부는 물론, 국회나 언론의 주목을 받는 사회적 쟁점 현안이 많았던 만큼 시민운동의 존재가 드러나는 화려한 영역이기도 했다. 의료개혁의 성과도 상당한 수준에서 얻어냈다. 우선, 2004년 건강보험 본인부담상한제가 처음 도입되던 상황에서 세부 방안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건강권 시민운동이 적극적인 개입과 참여를 수행했고 상당한 수준에서 성과를 만들어 냈다.

2005년에는 ‘암부터 무상의료’ 운동을 전개하며 입원환자 식대의 건강보험 급여화와 암, 심혈관, 뇌혈관 등 중증질환자의 본인부담률을 낮추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이러한 성과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수준을 50%대에서 60%대로 끌어 올리며 민간의료보험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는 일이 되기도 했다.

그런 만큼 시민운동의 정착과 성장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건강권 시민운동이 대안을 가진 운동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축적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이런 의료개혁운동은 ‘정책운동’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2008년 촛불 이전의 시기에서는 시민과 환자의 입장에 서서 의견을 대신해주는 ‘대리적 방식의 운동’이 주를 이루었다. 시민들은 후원하고 응원하는 입장이었고, 시민운동은 시간적 여유나 전문성에서의 한계를 대신 채워주는 관계였다. 이런 속에서 정책대안을 중심으로 한 ‘주창형 운동’이 잘 결합할 수 있었다.

여기에 정치적, 정책결정과정에서 가버넌스가 강조되며 확장되던 시기와 맞아 떨어졌으며, 보건의료가 의약분업과 건강보험 통합 등 격변기였기 때문에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나 민간의료보험 저지, 의약분업 정착 등과 관련한 정책과제가 꾸준히 제기되었던 시기적 특성도 결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07년을 기점으로 건강권 시민운동은 뚜렷한 반전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 공세적으로 의제를 제기하며 선도했던 상황의 주도권을 빼앗기게 된다. 이는 정치적으로 노무현 정부의 임기말이라는 배경도 있겠지만, ‘보건의료’를 산업과 경제발전과 결합하여 사고하는 경향이 정부와 사회적으로 확산되면서 정부-자본 간의 관계가 긴밀해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 실손형 보험의 허용 등 민간의료보험이 새로운 시장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마련되었고, 영리병원도 매우 적극적으로 검토되었다.

사실 이런 과정에서 시민사회운동의 주도성이 반전을 경험하게 된 것은 어느 한 순간 급격하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2000년 이후 새로운 의료개혁과제를 설정하고 이를 추진하기 위한 정책담론을 형성하기 위한 고민은 충분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보건의료의 시장화, 상품화 경향을 추진하려는 세력들은 진지하고 신속하게 상황을 밀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향후 ‘의료민영화’의 흐름으로 밀고 왔고, 시민운동은 의제를 주도하던 입장에서 정부와 자본의 의료민영화 공격을 막아야 하는 입장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후퇴도 시민운동의 성장과 확산에 어려움으로 작용했다. 특히 보건의료 정책 결정 과정에서 가버넌스가 축소되었고, 정부에 의해 활동이 검증되지 않은 우파시민단체가 대신하는 등 활동의 입지도 좁아졌다.

결국 시민사회운동이 새로운 의료개혁운동의 담론을 준비하지 못한 사이 어느새 힘 관계가 변화하고 주도권을 의료민영화 세력에게 빼앗겨 버렸다. 하지만 새로운 의료개혁운동의 담론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건강권’을 중심으로 ‘탈보건의료’를 시도하자는 문제의식이 내부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대한 인식이 넓어지면서 건강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과 함께 발전했다. 이 가운데 ‘보건의료를 넘어 건강’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인식이 점차 퍼져갔다.

정책결정 과정에 개입하는 운동에서 벗어나 시민의 참여와 건강권 운동의 새로운 동력을 일구어 가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확산되기 시작했다. 공무원과 의회 구조에서 정책적 여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었던 시점에서 더 이상 국회와 행정부에서 일어나는 정책결정 과정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시민과의 접촉면을 직접 만들고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도 넓어지기 시작했다.

한편, 복지국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확대되며 보건의료 문제도 그 안에서 새롭게 관계를 설정해야 할 요구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문제의식이 정리되어 새로운 건강권 운동의 담론으로 자리잡기 이전에 세상은 우리를 앞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008년 촛불과 '식코(Sicko)'는 건강권 운동, 특히 의료민영화 저지 운동의 대중적 동력을 한꺼번에 형성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향후 MB정부에서 의료민영화를 저지하는 사회적 힘이 되었다는 긍정적인 역할을 해주었지만, 시민운동의 입장에서는 ‘대변형 운동’, ‘정책주창형 운동’이 더 이상 설득력이 없으며 건강권 시민운동도 변화할 것을 촉구하는 따끔한 질책이기도 했다.

 

보건의료 개혁운동의 구담론, '끝자락'을 내보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20년 가까운 시기 동안 지속되어 오던 시민사회, 진보진영의 보건의료 개혁 담론은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것은 2011년 ‘건강보험 하나로’와 ‘무상의료’로 표현되었다.

사실 ‘보건의료 개혁운동의 구담론’이라는 표현은 내가 붙인 이름이다. 이것의 목표는 ‘건강보험 강화 - 공공의료 확대’라는 핵심 슬로건으로 요약된다. 여기에는 여러 특징이 담겨져 있다. 시행주체가 ‘국가’이며, ‘건강 전반’이 아닌 ‘보건의료’ 안에서의 개혁이라는 범위로 설정된다. 여기에 ‘서비스 제공에서 민간의 주도성’은 인정된채 재정적 정책수단으로서의 ‘건강보험’과 ‘일부 공공보건의료기관’을 활용하여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추구해 나가겠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그마저 지난 2007년까지의 경험을 통해 ‘공공보건의료 확충’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였고 그 논리와 접근방식을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려있다. 결국 두 날개 중에 한 날개는 정상이 아닌 상황인 셈이다.

나는 ‘건강보험 하나로’와 ‘무상의료’를 구담론의 ‘종결자’ 정책이라고 본다. 구담론에서 남아있는 하나의 날개가 ‘건강보험’인데 이것을 가지고 던질 수 있는 최상의 정책카드는 두 개밖에 없다. 하나는 ‘재정’의 문제이며, 또 다른 하나는 ‘보장성’이다. 전자가 ‘건강보험 하나로’로, 후자가 ‘무상의료’로 표현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모두 구담론에서 나올 수 있는 최상의 정책 목표이다. 다시 말하자면 구담론에서 그 이상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종결자’다.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좋든, 싫든 이 둘은 최소한 내년 2012년 대선까지는 영향력을 발휘할 것 같다. 문제는 그 뒤의 상황이다. 건강권 시민운동은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하는가가 문제인 것이다. ‘보건의료’를 넘어 ‘건강’이라는 가치로 우리 사회를 설득할 수 있는지, 그런 건강권 시민운동은 무엇을 목적으로 해야 하며, 이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 접근전략은 무엇인지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오해가 있을 듯하여 덧붙이자면, ‘보건의료 개혁’ 과제가 이제 모두 사라진다거나, 의미없다거나, 시민운동이 할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어쩌면 인구고령화가 가져올 충격이 보건의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대응해야 할 과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건강보험과 공공의료는 여전히 유의미한 정책수단으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건강세상네트워크가 2003년 이후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으로 이런 과제를 수행해 나갈 수 있는지, 그것이 올바른 방법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다. 변화된 상황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새로운 동력을 발굴하면서 우리의 힘을 재조직하는 방안이 무엇일지 풀어야 한다.

운동의 담론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보건의료’를 넘는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로서 ‘건강레짐’을 만들어 가기 위한 운동의 영역과 논리가 필요하다.

김창보 (건강세상네트워크 운영위원장)

건강세상네트워크는 건강권 시민운동의 지금까지 활동을 평가하면서 발전 전망을 모색해 보자는 의미에서 ‘건강세상 미래광장’을 진행중입니다. 지난 11월 3일에는 “건강권 시민운동과 의료개혁”이라는 주제로 김창보 건강세상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의 발표와 토론이 있었습니다. 상기의 글은 발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나머지 내용은 (下)편에서 이어집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