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속 치과 이야기] 고대인의 얼굴과 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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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속 치과 이야기] 고대인의 얼굴과 치아
  • 강신익
  • 승인 2004.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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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나이 40을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얼굴은 부모로부터 타고난 생물학적 속성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 맺어온 인연과 살아온 과정을 반영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철학자 레비나스는, 우리의 얼굴을 단순한 해부학적 구조와 형태를 넘어서는 도덕적 정체성으로 파악한다.

치과의사의 임무는 이 얼굴의 일부인 구강의 생물학적ㆍ도덕적 기능을 보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상실된 앞니를 수복해 주거나 들쭉날쭉한 치아를 교정하는 일은 그래서 자동차 정비공이 닳아빠진 바퀴나 깨진 앞 유리를 갈아 끼우는 작업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얼굴에 관한 규범은 역사적 시기와 문화권별로 다양한 편차를 보인다. 한반도 남동쪽에 살았던 가야인을 비롯한 많은 민족들은 어려서부터 앞머리에 부목을 대어 넓적하고 뾰족한 이마를 만들었으며, 아마존 유역이나 호주의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앞니를 뾰족하게 갈아내는 의식이 성행한다.

구약성서를 보면 고대 유대인들이 건강한 치아를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잘 알 수 있다. 건강한 치아는 아름다움과 힘, 온전함의 상징이었다. 고위 성직자는 완전한 사람이어야 했으며 단 하나의 치아가 없어도 온전한 인간일 수 없다고 여겨졌다. 이런 기준이 성직자나 귀족에게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었다. 출애굽기에 보면, 노예의 치아를 부러뜨렸다면 그에게 자유를 주어 보상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모든 치아는 소중한 신체적ㆍ도덕적 재산이었다.

그러나 고대 히브리인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스스로 상실된 치아를 수복하려고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예술적 작업은 페니키아인이나 그리스인에게 맡겨졌다. 위 <그림 1>과 <그림 2>는 페니키아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골의 일부로 그들의 치과의술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케 한다.

<그림 1>은 치주염으로 느슨해진 치아를 금으로 만든 철사로 건강한 치아에 걸어 매 탈락을 막았던 모습을 보여주며,

 

 

 

 

 

<그림 2>는 탈락된 치아를 상아로 된 인공치아로 조각한 다음 역시 금으로 만든 철사를 이용해 인접 치아에 고정시킨 초기의 보철치료 모습이다.

 

 

 

 

<그림 3>은 이베리아 반도에 살았던 에트루리아인의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로 여기서는 금 철사 대신 금으로 만든 밴드와 리벳이 사용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보철물이 그다지 견고하게 고정되었던 것 같지는 않다. 고대 히브리인의 생활을 규율하는 탈무드에 보면 보철물을 가진 여인이 안식일에 외출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논쟁이 나온다.

만약 외출 중  보철물이 탈락된다면 여인은 그것을 다시 입 속에 집어넣는 ‘일’을 해야 하는데 이것은 안식일에 일을 하지 말라는 율법에 어긋나므로 외출을 해서는 안 된다고 결론을 내린다.

또 보기에 흉한 보철물을 가진 여인이 약혼자로부터 파혼에 직면하지만 성직자의 중재로 새로운 보철물을 제작하여 무난히 결혼에 이르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처럼 고대인에게 얼굴의 한 부분인 치아는 음식을 섭취하고 말을 하는 기능에서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 만나고 교제하며 신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데서도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또한 보철의 기술 수준에 따라 행동의 규범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당시에 보철물을 치아에 고정시키는 접착제가 있었거나 지금과 같은 심미적 수복기술이 있었다면 안식일에 여인의 외출을 금지하는 율법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이처럼 자신의 얼굴에 도덕적ㆍ종교적 책임을 지고자 했고 의술은 그 책임을 다하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쌍꺼풀을 만들고 콧대를 높이며 튀어나온 턱을 깎아내고 인공 치아를 심어서 감쪽같은 새 얼굴을 가질 수 있게 된 현대인들은 자신들의 얼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그렇게 다른 얼굴을 만들어주는 의술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것일까?


- 강신익(인제대 의사학 및 의료윤리학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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