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불경기도 그런 불경기가 없었다는 추석 직전에 나는 개원을 했다. 아름다운 젊은 시절을 공부하느라 소진한 것도 아니고, 제대로 놀아보거나 여행을 맘껏 해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벌어놓은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내게 있는 건 치과의사 면허증뿐이었다.
내 또래 다른 직종의 사람들보다야 훨씬 좋은 조건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늘 일깨우곤 했지만, 인수를 하여 인테리어를 조금 손보고 기구를 새로 들이는 그 간단한 과정에서도 나는 밤마다 통곡을 했다.세상물정 모르고 진료실에만 곱게 있다가 이런저런 업자들을 상대하려니 얼굴이 벌개지는 일이 다반사고, 싸게 할 수 있는 거 죄다 비싸게 해서 사기당한 기분에, 나를 젊은 여자로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과 반말에 맞추어 내 자신이 쪼그라드는 현실이 못마땅할 뿐만 아니라, 개원자리욕심과 기구욕심, 좀 더 멋지게 출발하고 싶다는 욕심은 자꾸만 나의 지난 과거를 들추어내며 나 자신을 한쪽 구석으로 몰아가기에 바빴다.
한 때는 먼저 지하철을 타고 훌쩍 떠나버린 사람들을 약간은 비웃으며 탈탈거리는 낡은 버스를 타고 바깥 풍경을 구경했고, 함께 있던 친구들과의 수다와 밝은 햇살을 자랑스러워했건만. 여유로움을 한껏 즐겼으면서 이제 와서 기껏 한다는 소리가 그때 그걸 했어야 했는데, 그때 그러지만 않았어도,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물리학의 카오스 이론(chaos theory)의 토대가 된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는 중국 베이징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다음 달 뉴욕에서 폭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과학이론이다. 영화의 내용과 제목과는 다소 거리가 있으나, 어쨌든 영화 ‘나비효과’는 독특한 시간여행 SF다.
그런데 운명을 재구성할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소유한 주인공의 인생이 오히려 자꾸만 충격적인 불행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보고 있자니 10년 전 코미디 프로 ‘인생극장‘처럼 착한 선택은 행복으로, 나쁜 선택은 불행으로 이어진다는 단순한 권선징악의 교훈이 오히려 편할 텐데 싶다.
함부로 살지 말 것이며, 어쨌든 간에 불행은 운명으로 다가올 것이며,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간은 벌 받아 마땅할 것이며, 현재에 자족하며 살라는 교훈은 어깨를 움츠러들게 만드는 찝찝함이 있다.
영화 때문에 쫄아서 그런 건지, 지금의 나는 작년 가을 한때 후회했던 내 과거 속으로 돌아갈 마음이 없다. 한방에 얻지 못하고, 남들 쉽게 가는 길 어렵게 돌아서 가고,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오기를 반복했던 나의 과거가 늘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가지 않은 길은 그저 가지 않은 길일 뿐.
다만 군자는 대로행이라 했으나 좁은 골목길과 오솔길과 비탈길로 돌아가는 내 모습에 안타까워하는 주변인들께 죄송할 따름이다.
강재선(인천 남동구 유명치과)
제가 맡은 꼭지 자체가 그럴듯한 영화평과는 좀 거리가 있잖습니까?? ^o^;
주로 영화를 매개로 해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편인데
감명깊게 본, 정말 추천하고 싶은 영화로는 제 얘기를 섞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안타깝죠..
반대로 영화 자체에는 별 호감이 없으나 그 영화의 소재나 주제를 통해
현재 제가 겪는 고민이나 생활을 얘기할 수 있는 때도 있구요.
한편의 영화가 나오기 위해 많은 이들의 노고가 있어야 한다는 걸 어렴풋이 알기 때문에,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쪽으로 영화의 내용이 비춰질 수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영화에 대해 심하게 험담하는 편은 아닙니다.
그래서 가끔은 해당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정확하지 않다보니..ㅋ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제 글을 풀어내기 위한 단순한 소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분들께서 그 영화가 꼭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시는 거 같아 죄송합니다^^;
전에도 그런 지적을 받은 적이 있거든요..
기대하고 봤는데 글의 내용과 달라 실망했다고..^^;
참, 저 73년생인데요^^ 저도 영화 보면서 실은..구역질이 났답니다..ㅡㅡ
강도가 센 영화는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라..제 취향의 영화도 아니랍니다..
지난 가을 개원하면서 겪었던 심정을 언젠가 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마땅한 영화를 찾지 못하다가..마침 '나비효과'와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길래 그리 됐습니다.
영화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잡지며 TV, 인터넷에 많기 때문에 일부러 안쓰려고 했었는데요..
영화의 성격을 알수 있는 간단한 내용을 보충하는 것이 좋을 거 같네요.
변명이 너무 길죠? ^^;
그동안 영화한편 잘 읽어주시고 믿어 주셨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물을 흐리다니요..아하하^^;;
앞으로도 가차없는 지적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