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32]화제의 책 - 다음 국가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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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32]화제의 책 - 다음 국가를 말하다
  • 전민용
  • 승인 2011.03.2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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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을 위한 열세 가지 질문, 박명림-김상봉, 웅진

 

우리나라의 건국 정신은 무엇인가? 자유 민주주의? 박명림 교수에 따르면 아니다. 이 땅의 보수주의자들이 금과옥조로 삼는 이념이 자유 민주주의이다. 그들은 한국의 건국헌법을 자유 민주주의의 출발로 본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건국헌법 어디에서도 자유 민주주의의 정신과 이념은 찾을 수 없다. 자유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처음 헌법에 들어간 것도 역설적으로 자유 민주주의를 가장 억압한 유신헌법이었다.

민주공화주의는 1919년 임시정부가 제정한 대한민국 임시헌장 헌법 제 1조에 등장한 이후 줄기차게 이어져 1948년 건국 때도 헌법 제 1조로 제정되었다. 건국 정신을 꼽는다면 민주공화주의라고 보아야 한다. 임시정부헌법부터 건국헌법까지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을 추구한 삼균주의와 형평주의에 기반한 공화주의가 그 뼈대를 이루고 있다. 더구나 자유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처음으로 강력히 주장한 세력은 건국헌법을 제정한 세력이나 이승만 정부가 아니라 <사상계>, 함석헌, 장준하를 비롯한 재야와 비판 세력이었다. 자유 민주주의는 건국 정신도 아니고 원래 보수주의자들의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2008년 촛불 집회를 위시해서 최근 들어 민주공화주의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철학을 주로 공부한 김상봉 전남대 교수와 정치학을 주로 공부한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이 책의 대담을 진행한 이유도 좋은 민주공화국에 대한 열정과 소망 때문이라고 한다. 철학자와 정치학자의 생각을 엮어 만들어서인지 서로 보완이 되어 폭과 깊이가 풍부해진 느낌이다. 적당한 길이의 구어체 편지글들의 모음이라 읽기에도 수월하다. 두 사람의 견해는 상당부분 비슷하지만 정치의 정의, 정치 체제(내각제, 대통령제)등 곳곳에서 차이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차이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의 전개와 문제의 제기를 더 풍부하게 해준다.        

김상봉 교수에 따르면 누군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렀던 시절은 한국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나랏일을 가장 덜 생각하고 살았던 시기였다. 평화적 정권교체로 민주주의가 확립되었고,  두 번의 정상회담 등으로 남북 화해도 진전된 것으로 보였다. 물 건너 온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철학은 이제 개인의 삶과 내면의 욕망에 눈을 돌리라고 부추겼다. 남한 역사에서 가장 탈정치적인 시기, 상대적으로 대다수 사람들이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다.

그런데 이 시기는 IMF구제 금융과 시작이 맞물려 있었다. 재벌이 비대해지고 경제적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더니 어느새 우리나라는 재벌독재국가가 되어 있었다. 현 정부 들어서 민주주의도 공화주의도 더 노골적으로 심각하게 후퇴하고 있다. 다시 나랏일과 민주공화국을 생각해야 하는 배경이다.  

민주공화국이란 무엇인가? 민주 국가란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권력의 주체를 규정하는 개념이다. 공화국은 내용과 목적을 가리키는 말이며 국가가 공공적 기구라는 뜻이다. 민주 국가가 모두에 의한 나라라면 공화국은 모두를 위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대의민주주의가 공공성의 정신을 저버리면 다수결의 원리만 남는다. 공공성 없는 다수결은 다수가 담합해 소수를 약탈하는 것이고, 한국에서는 지배세력이 1/3의 지지에 기대어 다수의 민중을 지배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다수결의 원리는 공공성의 원리에 기초해서만 정당화 될 수 있다. 

로마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키케로에 따르면 공화국은 법적 정의와 이익의 공유에 기초한다. 법적 정의는 강자의 특권을 용납하지 않고 약자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뜻이다. 이익 공유의 원칙은 국가가 하는 일이 결과적으로 소수 특권층이 아닌 모든 구성원에게 골고루 이익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반대로 말하면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 못한다면 형식적 절차가 공정한 외관을 띠고 있어도 공화국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런 경우 공정한 절차란 제도화된 불평등이기 때문이다. 불평등이 제도화되면 공동체는 내적 결속력을 잃고 붕괴의 길을 걷게 된다. 절차적 공정성과 그 이상의 실질적 공정성을 확립해야 한다. 민주공화국은 시민의 주체성과 나라의 공공성의 조화로 이루어진다.

박교수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민주공화주의의 필수 요체인 국가, 시장, 시민사회 3자 간의 상호 균형과 견제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화가 시장과 사회 기득 세력의 자유화로 연결되면서 시민, 민주, 공화 국가가 아니라 기업, 시장, 경제 국가로 치닫고 있다. 현 정부는 반드시 독립적인 역할을 가져야 할 안보, 교육, 언론 영역마저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여 탈공화, 반민주, 탈공공의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어디까지 갈지 두려운 상황이다. 그 결과 현재 우리나라는 공적 사회 지출, 노동 시간, 자살률, 출산률, 소득 분배, 부와 권력의 세습 등 거의 모든 면에서 퇴보하고 있다.

박교수는 정치란 한마디로 가치의 배분 행위라고 본다. 한정된 여러 재화, 물질, 자원들을 어떤 원칙에 따라 적절하게 배분하느냐이다.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 및 ‘재화와 자원의 제한’ 사이의 충돌이 갈등을 조정하는 정치를 필요로 하는 근본 요소이다. 그래서 그는 비스마르크처럼 정치를 ‘가능성의 예술’로 본다. 불가능한 최선과 가능한 최악을 배제하고 가능한 최선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능한 최선’은 결국 ‘차선의 이상’을 의미한다. 이상과 현실의 조화이다.

김교수는 정치를 가치의 배분으로 보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가치의 배분은 본질적으로 사람과 사물 사이의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정치란 너와 내가 만나 우리가 되는 활동이라고 본다. 개별적인 주체들이 만나 서로주체성을 형성하는 것이다.

2008년 촛불항쟁도 결국 실패했다. 촛불을 드는 것 자체가 국가 권력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는 시민들이 제풀에 지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터득했을 뿐이다. 결국 가능한 길은 정당을 통해 국가권력에 참여하는 것 뿐이다. 그는 개방적이고 대중적인 진보정당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두 사람 모두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현재 한국을 지배하는 최고의 권력인 재벌권력을 민주적 통제 아래 두는 방법을 찾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본다. 미국의 루즈벨트는 사회주의를 정부사회주의와 사적사회주의(기업사회주의)로 나누고, 전자 뿐 아니라 소수의 경제권력 집중을 통해 다수 시민을 예종시키는 후자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거부했다는 것이다. 루즈벨트는 취임 이후 자본과의 연대인 올드딜이 아니라 노동과의 새로운 연대인 뉴딜을 통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기업총수지배 국가를 해체하고 미국을 시민의 국가로 만들어 황금의 시대,  미국의 시대를 열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노동자 경영권이나 4권 분립 등 민주주의와 법의 통제로 시장전체주의를 극복할 방안들을 제안하고 있다.     


두 사람은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에 따른 폐해에 대해서도 상당히 깊이 있게 설명하고 있고, 교육, 다문화, 법, 분단과 통일에 대해서도 별도의 장을 두어 심도 깊은 논의를 전개한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국가의 울타리를 넘어 세계 시민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갈 것을 제안하고 있다. 

여러 가지 토론 꺼리가 있지만 하나만 지적하면 4권 분립을 통해 검찰, 감사원, 공정거래기구, 금융감독기구 등을 시민통제를 받는 독립적인 감독부로 만들어 권력과 시장을 견제하겠다는 박교수의 생각은 시민 통제의 실효적 방안이 없는 한 시민을 지배하는 또 다른 권력 기관으로 변질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속성을 갖기 위해 선출하지 않으면서 시민이 내용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일까 궁금하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자유 민주주의를 억압했던 유신헌법에서 자유 민주주의를, 가장 정의가 땅에 떨어졌던 5공 시절에 정의사회 구현을, 공정과 녹색이 가장 무너진 지금 공정사회와 녹색성장을 국정지표로 내세우는 것을 보면 이 땅의 자칭 보수주의자들의 이념적 허약성과 사실 왜곡이 얼마나 극심한 지 알 수 있다. 그들의 후안무치도 문제지만 일부 진리를 밝힐 학자들과 진실을 알릴 언론이 거꾸로 자의든 타의든 진리와 진실을 왜곡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민주공화주의 정착을 위해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다가올 권력 교체기의 내용을 풍부하게 할 많은 주제들을 담고 있는 책이다. 정치와 사회 문제 뿐 아니라 시민의 권리와 책임이나 개인 삶의 문제까지 다양한 분야와 층위의 문제꺼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많은 숙고와 토론이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거듭 인용되는 함석헌의 사상과 철학에 대한 맛보기나 개인의 자유와 주체성은 오직 전체와의 합일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저자들의 기본적인 철학을 음미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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