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는 길] 깨소금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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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는 길] 깨소금 만들기
  • 구인영
  • 승인 2005.01.07 00: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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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는 아무 것도...

한국 음식에는 빠지지 않는 양념 몇 가지가 있다. 그중에 하나가 깨이다. 나물을 무치거나 볶음 요리를 할때 마지막에 넣어서 향과 맛을 더하고 거기에 모양까지 좋게 한다. 그리 소중한 양념인 깨를 슈퍼를 이용하지 않고 직접 볶아 보기로 했다.

지난 가을 , 아니 봄부터 참깨 모종을 밭에 심었다. 아주 정성스럽게... 어느 작물도 적당한 습도와 온도를 필요로 하지만 특히 참깨는 가물어도, 또 비가 많이 와도 작황이 좋지 않은 예민한 식물이다.

가을이 되면 깨나무는 열매걷이를 하는 것이 아니고 줄기 채 낫으로 베어야 한다. 콩을 따듯이 깨를 따면 좋겠지만 워낙 작은 것이라 오죽하면 작은 것의 대표로 깨알 같다는 말을 사용하겠는가?

베어낸 깨를 단을 만들어 줄을 맞추어 담벼랑에 한달여 동안 이리 저리 뒤집어 주면서 잘 말려야 한다. 요즈음은 누군가 훔쳐가기도 하는 통에 감시까지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잘 마른 깨단을 마당에 큰 천막을 깔고(멍석에서 작업을 하면 틈새에 깨가 끼어 털어내기가 어렵다) 커다란 대야를 엎어 놓고 두드려 털어 낸다. 두드려 털어 내다 보면 티도 섞이고 또 껍질도 들어가기에 키로 까불러 줘야 작고 하얀, 아니 미색의 깨알들을 만날 수 있다. 수북히 쌓인 깨단 속에서 겨우 몇봉의 깨을 얻어내고 그것들은 다시 여러 집으로 나누어져 보내진다.

그 중에서 용인으로 보내진 깨들이 오늘 우리집 씽크대 물속에 담겨져 있다.

여러번 물에 헹구어도 밑바닥에 온갖 흙과 먼지들이 있다. 작은 깨알들을 씻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다. 하지만 털어낸 부모님의 정성을 생각하면서 한알이라도 씽크대 배수구로 흘러보내지 않으려고 애를 써본다. 고운 망사 채반에서 물을 쪽 뺀뒤 후라이팬으로 옮긴다. 깨의 입장에서 본다면 두드리고 물에 담구더니 이번에는 웬 후라이팬이냐 할 것이다.

뜨겁게 달군 후라이팬에 한참을 볶다 보면 집안 가득히 고소한 내음이 퍼지면서 뜨거운 열기에 제 속살을 감추지 못하고 톡톡 튀명 껍질 밖으로 살을 들러 낸다. 마치 높이 뛰기 시합이라도 하는 듯 요란하게 튀는 소리가 나고, 깨들이 약간 갈색을 띄게 되면 몇 개를 건져 손가락으로 으깨 본다. 쉽게 으깨지면 볶기를 멈추고 일부는 통깨용으로 그릇에 옮겨놓고 일부는 절구에 담는다. 그리고 소금과 함께 몇 번 찧어 주면 깨소금이 된다.

무심코 먹던 깨소금이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오늘 깨알들을 볶으며 새삼스레 되돌아 보았다.

입맛 없을 때 간장에 깨소금만 넣고 비벼 먹기도 하고, 나물을 무칠 때 깨소금이 빠지면 왠지 허전하기도 하고, 또 우리 눈에 비친 음식을 맛깔스럽게 바꾸기도 하는 깨들이지만 그렇다고 혼자 어떤 맛을 낼 수는 없다. 어딘가에 어우러져야 그 맛과 모양을 발한다.

난 세상의 작은 깨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도 적은 인원이 모인 모임이다. 하지만 변화를 위해 반드시 큰 힘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난 현재와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한다.

지금은 비록 작은 깨알 하나이지만 새로운 곳에서 욕심부리지 않고 새로운 시작을 하려고 한다. 구강보건교육이 그곳 아이들에게도 꼭 필요한 일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용기를 가지고 작은 고소함을 전하려고 하는 것이다.

구인영(치과위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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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황 2005-01-16 16:58:44
이 코너 이름도 함께하는 세상이야기지요?

이선생님처럼 이름뿐이지 않고 꽉꽉 속이 채워지는 후배들을 바라 보는 것이 제 행복입니다

선배들이 걸어온 길 처럼 후배들에게 멋진 치과위생사로 기억 되십시요

이윤정 2005-01-15 22:53:08
저는 이제 막 시작하는 치과위생사입니다.
처음엔 무조건 치과위생사가 되려 했습니다.
그래서 치과위생사가 되었지만... 전 이름만 가졌더군요.
아직 제 안에 채운것이 너무 없었어요.
부족하다고 생각했을때....
선배 치과위생사분들을 만났습니다.
적은 시간동안 제게 여러가지를 담아주셨습니다.

깨소금이 고명이 되고, 기름이 됐듯이..
저도 그 선배 치과위생사분처럼....
남에게 채워주는 치과위생사가 되고싶습니다.
혼자였을때...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나누면서....
함께하는 사회를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황윤숙 2005-01-14 13:14:10
참 고소하게 쓰셨네요
아마도 깨를 볶아 본 사람이라면 이 광경들이 그려질거 같아요

그래요 우린 작은 깨알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없어서도 안돼지요
눌러 짜면 참기름이 되고 볶아 찧으면 깨소금이 돼고 그냥 뿌리면 맛난 음식의 고명이 됩니다

어디 계시던지 자신이 가진 고소함을 잃지 마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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