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는 아무 것도...

지난 가을 , 아니 봄부터 참깨 모종을 밭에 심었다. 아주 정성스럽게... 어느 작물도 적당한 습도와 온도를 필요로 하지만 특히 참깨는 가물어도, 또 비가 많이 와도 작황이 좋지 않은 예민한 식물이다.
가을이 되면 깨나무는 열매걷이를 하는 것이 아니고 줄기 채 낫으로 베어야 한다. 콩을 따듯이 깨를 따면 좋겠지만 워낙 작은 것이라 오죽하면 작은 것의 대표로 깨알 같다는 말을 사용하겠는가?
베어낸 깨를 단을 만들어 줄을 맞추어 담벼랑에 한달여 동안 이리 저리 뒤집어 주면서 잘 말려야 한다. 요즈음은 누군가 훔쳐가기도 하는 통에 감시까지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잘 마른 깨단을 마당에 큰 천막을 깔고(멍석에서 작업을 하면 틈새에 깨가 끼어 털어내기가 어렵다) 커다란 대야를 엎어 놓고 두드려 털어 낸다. 두드려 털어 내다 보면 티도 섞이고 또 껍질도 들어가기에 키로 까불러 줘야 작고 하얀, 아니 미색의 깨알들을 만날 수 있다. 수북히 쌓인 깨단 속에서 겨우 몇봉의 깨을 얻어내고 그것들은 다시 여러 집으로 나누어져 보내진다.
그 중에서 용인으로 보내진 깨들이 오늘 우리집 씽크대 물속에 담겨져 있다.
여러번 물에 헹구어도 밑바닥에 온갖 흙과 먼지들이 있다. 작은 깨알들을 씻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다. 하지만 털어낸 부모님의 정성을 생각하면서 한알이라도 씽크대 배수구로 흘러보내지 않으려고 애를 써본다. 고운 망사 채반에서 물을 쪽 뺀뒤 후라이팬으로 옮긴다. 깨의 입장에서 본다면 두드리고 물에 담구더니 이번에는 웬 후라이팬이냐 할 것이다.
뜨겁게 달군 후라이팬에 한참을 볶다 보면 집안 가득히 고소한 내음이 퍼지면서 뜨거운 열기에 제 속살을 감추지 못하고 톡톡 튀명 껍질 밖으로 살을 들러 낸다. 마치 높이 뛰기 시합이라도 하는 듯 요란하게 튀는 소리가 나고, 깨들이 약간 갈색을 띄게 되면 몇 개를 건져 손가락으로 으깨 본다. 쉽게 으깨지면 볶기를 멈추고 일부는 통깨용으로 그릇에 옮겨놓고 일부는 절구에 담는다. 그리고 소금과 함께 몇 번 찧어 주면 깨소금이 된다.
무심코 먹던 깨소금이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오늘 깨알들을 볶으며 새삼스레 되돌아 보았다.
입맛 없을 때 간장에 깨소금만 넣고 비벼 먹기도 하고, 나물을 무칠 때 깨소금이 빠지면 왠지 허전하기도 하고, 또 우리 눈에 비친 음식을 맛깔스럽게 바꾸기도 하는 깨들이지만 그렇다고 혼자 어떤 맛을 낼 수는 없다. 어딘가에 어우러져야 그 맛과 모양을 발한다.
난 세상의 작은 깨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도 적은 인원이 모인 모임이다. 하지만 변화를 위해 반드시 큰 힘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난 현재와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한다.
지금은 비록 작은 깨알 하나이지만 새로운 곳에서 욕심부리지 않고 새로운 시작을 하려고 한다. 구강보건교육이 그곳 아이들에게도 꼭 필요한 일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용기를 가지고 작은 고소함을 전하려고 하는 것이다.
구인영(치과위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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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생님처럼 이름뿐이지 않고 꽉꽉 속이 채워지는 후배들을 바라 보는 것이 제 행복입니다
선배들이 걸어온 길 처럼 후배들에게 멋진 치과위생사로 기억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