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窓> 제 무덤 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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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동窓> 제 무덤 파기
  • 인터넷참여연대
  • 승인 2004.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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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과 이철우 의원 문제로 야기된 색깔론 공방을 보면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그런데, ‘아, 옛날이여’를 외치며, 무자비한 자행된 이 색깔공세의 끝이 어디인지 짐작케 하는 몇가지 장면이 있다.

장면 세가지

장면1) 이철우 의원에게 ‘간첩암약’ 운운하면서 기세를 올렸던 주모의원은 스스로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다면서 꼬리를 내렸을 뿐 아니라, 한 인터넷신문이 객관적인 ‘팩트’에 의해 낱낱이 밝혀낸 그의 검사시절의 무용담(?)에 의해 망신살이 뻗쳤다. 여기서 다시 일일이 열거하긴 어렵지만 그의 행동을 법적으로 평가하자면 주취운전, 음주측정불응, 직권남용, 공무집행방해, 흉기사용 야간폭행, 직무유기가 성립됨이 분명해 보인다.

장면2) 80년 5. 18.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서 소위 ‘서울역회군’의 장본인이었던 심모의원은 이 와중에 “이념적으로 문제있는 사람들이 민주투사로 위장하고 있다”는 한마디했다가 그를 잘 알고 있는 동료들이 쿠데타세력의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조작’에 부역했던 그의 숨기고 싶은 과거사를 적나라하게 증언함으로써 본전도 찾기 어렵게 됐다

장면3) 저격수로서 명성을 날렸고, 검사 출신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안기부에서 승진을 거듭했던 정모 의원은 자신을 고문수사의 주범으로 몰고 있는 현실에 발끈하여, “자신에 대한 모든 음해와 왜곡에 법적으로 철저하게 대응하겠다”고 선언한 후 피해자들을 고소하기에 이르렀으나, 계속되는 구체적 증언과 폭로로 인해 곤경에 처해 있으며 결국 “조금이라도 고문수사와 관련이 있으면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말았다.

누가 과거를 말하는가

누구나 과거가 있다. 드러내서 자랑하고 싶은 과거도 있지만, 가능하면 숨기고 싶은 과거도 있을 것이다. 이철우 의원이 주체사상에 심취했던 과거를 고백하고, “지금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이야기할 때, 그는 청년시절의 이념적 편향성에 대해서는 감추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고문피해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민주주의와 일하는 사람의 행복, 조국의 통일을 위해 헌신했던 투쟁의 경력은 자랑스러운 과거로 남았겠지만, 운동의 실패와 좌절, 동료들로부터의 오해와 불신, 특히 고문의 고통과 치욕은 다시는 들추어내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을 터이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아프기 때문이다. 격동의 세월이 그렇게 지나갔고, 그들은 하고 싶은 많은 이야기를 가슴에 묻고, 각자의 자리에서 삶에 충실해 왔다. 정치에 입문하기도 했고, 학원강사를 하기도 했으며 생태살림운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자 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그들의 아픈(부끄러운 게 아니다) 과거를 들추어내면서, 반성을 강요하고 전향을 종용하는 자들이 나타났다. 놀라운 일이다. 그들이 누구인가. 권력을 휘두르고, 권력에 부역하며, 온갖 고문과 용공조작에 앞장섰던 자들이 아닌가.

물고문만 고문이고, 잠안재우기는 고문이 아니라고 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통닭구이, 비녀꽂이만 금지되고, 얼차려나 외상없는 폭행은 관행이라고 생각한다면 대화는 불필요하다. 4살배기 어린아이가 보는 앞에서 엄마에게 폭행과 폭언을 가하는 것이 고문이 아니라면 무엇이 고문인지 묻고 싶다.

역사는 말한다

쿠데타, 군사독재, 부패, 정경유착, 지역감정, 권언유착, 탈세, 병역기피 등등…. 반세기가 넘는 기득권의 역사에서 호의호식했던 자들이 다시 색깔론의 낡은 칼을 꺼내 과거의 피해자를 다시 죽이려고 한다. 그렇지만 남의 과거를 들추어내 ‘정치적 성과’를 얻으려고 했다면 처음부터 오산이다.

색깔론을 통해 국보법 폐지를 막아보겠다고 기대했다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보려는 허망한 시도에 불과하다. 과거를 들추어내면 들추어낼수록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고구마줄기처럼 줄줄이 캐어져나오는 그들의 추악하고 비겁한 과거일 뿐이다.

역사는 더디지만 계속 발전하고 있으며, 숨겨진 진실은 밝혀지게 되어 있다. 이 시대착오적 색깔공세가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이 꺼내든 낡은 칼은 결국은 부메랑이 되어 그들의 가슴에 꽂히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장유식(협동사무처장, 변호사)     ⓒ 인터넷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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