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마의 세상보기] 아프다고 말할까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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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마의 세상보기] 아프다고 말할까 말까
  • 편집국
  • 승인 2002.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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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엔 생리통 때문에 무척 아팠다. 아랫배는 떨어져 나갈 듯 했고, 허리는 시종 구부리고 있었고, 먹은 걸 토하기도 했다. 실습시간이었는데 따뜻한 방에 누워 한 숨 자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아픈 기색을 보이자 옆자리 애들이 누나 어디 아프냐고 묻는다.

그런데, 나는 아직까지도 이 순간에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생리통 때문에 아픈 거라고 해야할지, 아프지 않다고 해야할지. 고민을 하다가는 결국, 아프지만 그건 그저 몸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건 곤란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대답인데, 이렇게 말하고 나면 또 기분이 좋지 않다.

임신을 하지 않는 한 내가 한 달에 한 번씩 월경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건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한데, 아프다고 해서 그 상태를 ‘몸이 좋지 않다’는 부정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생리하는 날 아픈 건 정말로 아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걸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아픈 거다. ‘감기에 걸렸어요. 너무 아파서 조퇴를 해야겠어요.’ 이렇게 말하면 충분한 이유가 되지만, ‘생리를 해요. 너무 아파서 조퇴를 해야겠어요.’ 이렇게 말하는 건 말을 꺼내기에도 결심이 필요하고, 말을 해도 이해 받기 힘들고, 그래서 어떻게 조퇴를 하게 된다해도 여자들은 조금 힘든 것도 참지 못한다는 소리 듣기 좋은 행동이다.

그 날도 나는 그냥 머리 속으로만 뜨듯한 방바닥을 그리면서 진통제 한 알로 시간들을 견뎠다. ‘지금은 한 알이지만 언젠가 한 알로 부족한 날이 오면 어떡하지’하는 소심한 걱정을 하면서….

그러고 보니 생리도 생리통도 참 희한한 현상이다.
질병이 아니면서도 피를 흘리고 통증이 있다. 그러니까 많은 여자들에게 자연스러운 상태는 한 달에 하루 이틀이 아픈 상태라는 거다. 인내하는 건 어쨌든 위대한 행위고 생리통을 견디는 것은 수행과도 닮아있다. 그래서 하루쯤 경건하게 도를 닦는 마음으로 지내는 때도 있지만 새삼 화가 날 때가 있다.

아무리 자연스러운 통증이라도 그 원인이 있게 마련일텐데 나는 내가 왜 아픈 지도 모른다. 여성의 생리주기와 호르몬, 난자가 뚫고 나오는 길을 달달 외워 시험을 봤어도 여전히 나는 내 몸의 어디쯤이 어떤 작용 때문에 아픈 건지 모른다.

의학이 여성의 몸에 대해 유일하게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재생산에 관한 것밖에 없다는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인 것 같다. 교과서는 배란기에 초점을 맞추고 월경을 수정이 실패한 결과처럼 묘사한다.

의학에서의 남성 중심성을 비판해 온 에밀리 마틴은 의학교과서에 쓰이는 언어에 대한 분석에서 교과서들이 월경을 퇴화, 사라짐, 수축, 출혈 등의 부정적 단어로 설명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렇지만 실제 내가 일상적으로 알아차리고 느끼고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건 배란보다는 생리의 시기이다. 그리고 많은 여성들은 오히려 수정과 임신을 피임이 실패한 결과로 받아들인다. 의학이 여성들의 아픔에 조금만 관심이 있었더라도 월경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었을 거고, 아마도 여성들이 그 기간동안 느끼는 몸과 마음의 고통을 줄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자연의 시계를 몸 속에 지니고 있는 게 대체로 좋다. 자연이 순환하듯, 그렇게 내 몸도 순환하는 것이 놀랍고 신기하다. 다만, 우리가 좋을 때 웃고, 슬플 때 울 듯이, 아플 때 아프다고 얘기하는 것이 하나도 흉이 되지 않고, 아픔을 참고 싶지 않을 때는 적절한 도움을 얻을 수 있었으면 하는 거다.

헤마(웹진 달나라 딸세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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