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이 물러난 건치 대표의 씁쓸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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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이 물러난 건치 대표의 씁쓸한 단상
  •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9.12.10 12:03
  •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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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황홀한 미래

***나는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 임박한 시점에서 건치 대표를 맡았고 몇 일 전 그만 두었음.

***건치 공동대표는 내 생애 최고의 감투였는데 제대로 퇴임식도 못하였음.

***삽질을 하기 위해 모든 자유를 말살할 듯이 몸서리나게 설친 이 정권의 기나긴 2년, 그동안 내가 건치 대표를 맡아 곤혹을 치렀다는 의미를 아무도 몰라줌.

***건치 모임 할 때 마다 내가 최연장자였음. (그 다음 연장자는 항상 김인섭 선생이었음)

내 위 선배는 한 분도 나오시지 않아 모임 때 마다 쭈굴시러웠음.

노땅들이 참여하지 않는 이런 병명이 건치의 ‘신종 플루’라 사료함.

***그래서 나는 지난 2년간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에 시달렸음.

***2009년 12월 5일 제 22차 정기총회에서 최대 주제는 대표 임기를 2년으로 하자였음.

모두 대표를 맡기 싫어해 주로 1년씩만 대표했음.

2년 대표한 내가 모범이었다고 말한 사람이 한 분도 없어 몹시 섭섭했음.

나에게 하는 김에 1년 더해 3년 채우라고 말하는 사람은 더구나 없었음.

***총회 끝나고 건치 사무실에서 탁자를 모아놓고 11시부터 소박한 뒷풀이 했음.

12시 무렵 이 핑계 저 핑계로 슬금슬금 빠져 나가 2시가 되자 대부분 사라졌음.

옛날 생각이 울컥 났음.

그 시절에는, 큰 음식점 하나를 점령해서 수 십 명이 흥청망청 마시고 꼭 2차 갔음.

그것도 모자라 호텔 큰 방을 잡아 고주망태 될 때까지 밤세워 마셨음.

심지어 아침 해장국집에서 다시 술판을 벌였음.

참가자 대부분이 그러했음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음.

***나를 잘 아는 후배들은 고리타분한 이야기한다고 내 옆에 아무도 앉지 않음.

이유는 다음과 같은 재미없는 이야기하다가 후배들에게 찍혔음

『“훈구파가 뭐냐, 이 거시기 한 것들 정체가 뭐냐.”고 묻고 훈구파를 장황하게 설명했음.
 

*조선시대 여러 쿠데타(이를 반정이라 했음)에 성공한 자들을 일컬임.

그 덕에 경제적 혜택을 지독하게 누려 도덕적으로 타락해 버린 자들임.

왕의 권력은 유한했으나 경제 독점한 이들의 권력은 무한했음.

그들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거세하려 한 조광조에게 사약을 내린 자들임.

양심적인 성균관 유생들이 경복궁 앞마당에 수 천 명이 모여 돌바닥에 이마를 찍으며 ‘아니 되옵니다’고 울부짖으며 조광조의 목숨을 구걸했으나 왕도 어쩔 수 없었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마자 선조를 끼고 압록강까지 잽싸게 도망을 간 자들임.

거기서 명나라에게 목숨을 빌붙으려 한 자들임.

명나라에게 압록강을 넘게 해달라고 애걸하려는 찰라 전라도에서 희소식이 옴.

전라도에서 비주류 무명인사가 왜적의 해안길을 봉쇄하였다고 함.

이렇게 숨을 돌린 쥐새끼들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쪽 다 팔고 서울로 돌아옴.

쪽팔림을 만회하기 위해 전라도의 거시기한 이순신을 털어 먼지를 내고 잡아가둠.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없는 해안길이 풍비박산이 됨.

속으로는 거시기 하지만 해고시킨 이순신을 복직시킴.

우리의 이순신은 다른 세계전사에서 도저히 찾을 수 없는 혁혁한 전과를 올림.

일본 쥐새끼 히데요시의 동북아 평화파괴를 저지한 공로가 지대했음.

즉각 노르웨이 오슬로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했음.

이 소식을 들은 졸렬한 훈구파들은 속이 부글부글 거렸음.

정유재란이 끝날 무렵 아주 현명한 이순신은 불안한 상황을 침착하게 예측함.

이기고 서울 올라가 봐야 포도청에 불려 왔다 갔다 하면서 언론 플레이에 능수능란한 한양쥐새끼들한테 또 뜯길 것이 뻔하다고 생각함.

처형을 당하기보다는 전투에서 미리 정해진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임.

쫓기는 적의 꽁무니에 갑옷의 웃통을 벗어던지고 바짝 다가가 흉탄 맞을 것을 자초함.

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과 다름없음.』

혹독하게 타살당한 ‘아! 위대한 조광조여, 성웅 이순신이시여!’라고 속으로 외치면서 내 멋대로 고리타분하게 이런 이야기하였음.

후배들의 ‘송필경으로부터의 도피’가 타당하다고 나도 인정함.

 

***김대중을 까지껏 폄하하고 노무현을 죽음으로 내 몬 현대판 훈구파가 분명 있음.

바로 조선일보(좃선)임

 1970년대 까지 좃선의 사세는 동아일보 사세의 반도 못 미쳤음.

1980년 전돌대가리(전돌)의 쿠데타가 성공하자 전비어천가를 불렀음.

참혹하게 짓밟힌 5·18 광주 시민을 빨갱이 폭도로 몰아 전돌의 귀여움을 독차지 함.

덕분에 전돌 임기 말에는 동아일보 사세를 완전히 눌러 훈구파의 지존으로 떠올랐음.

김영삼 정권은 물론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도 조선시대 훈구파보다 더 쎈 권력을 휘두름.

조광조에게 그랬듯이 노무현에게도 죽도록 어퍼컷과 잽을 날린 좃선은 지독히 힘이 쌤.

(어리고 고운 나이에 목숨을 끊은 한 탤런트의 유서를 보라!

그 애절한 유서를 깡그리 뭉개는 저 좃선의 막강한 힘이여! 찬양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왕의 권력은 유한했지만 훈구파의 권력은 무한했음.

명바기의 권력은 기껏 몇 년이지만 좃선의 권력은 마르고 닳도록 임.

고로 주적은 명바기가 아니라 좃선임이 분명함.

좃선은 전염병이 만연한 공기와 같아 일상에서 알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해독을 끼침.

주적이 다르면 전술도 달라야 하는 법.

그 전술을 상세히 부연하려면 너무 장황해서 그만하겠음.

 뭐 대충 이런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아무도 들어주는 이가 없었음.

*

**우리 사회의 진보도 중요하지만 우리 치과 진료 진보도 중요하다고 역설함

이 역시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음.

예방진료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자, 발치하기 전 임플란트 하기 전 한번 더 생각하자, 라미네이트와 레진 수복을 비교해 보자, 근관치료에 더 신경쓰자, 그럴러면 최소한 러브 댐은 꼭 하자, 보험진료 만으로도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자 등등등 따위였음.

***2시 쯤 몇 명 남지 않은 휑한 건치 사무실에서 혼자 잔을 따르며 쓸데없는 생각을 했음.

겨우 2시에 모두 헤어짐.

아침에 술에 깨자 이제까지 모든 썰은 나의 무척 옹졸한 생각이었음을 이제는 고백함.

 

***올해의 가장 감명 깊었던 고 김대중 선생님의 말씀을 생각함.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고 역사는 그래도 진보한다.”

올해의 가장 위트있는 말도 생각함.(연고전에서 연대생이 고대생에게 내건 현수막 내용임.)

“너거뜰은 김연아 있제, 우리는 명박이 엄따.”

***공형찬 원장, 박남용 원장, 이흥수 교수가 성년 건치의 새로운 대표로 자리했음.

역대 최강의 공동대표 임이 분명함.

명바기 없는 세상 만들어 ‘건치는 아름다운 것이고 진보한다’는 명제에 충실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음.

이분들에게 격려 특히 노땅들의 격려와 함께 건치 행사에 적극적 참여가 필수 임.

***정기적인 노땅 모임을 만들면? 또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주절거리는 것을 마침.


송필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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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 2009-12-17 14:11:02
이라는 말이 나오도록 더 괴롭혀 드릴 걸 그랬나요? 개콘에 나오는 형님처럼... 전화받으면서 맥주잔이라도 부어드리는건데... ㅋㅋㅋ

배석기 2009-12-16 15: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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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준 2009-12-15 20:28:31
부경건치 20주년에 오신것도 기억나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멀리서 인사드립니다. 꾸벅
멋진 이야기도 지면이나마 잘 읽었습니다. 탁견이십니다.

전민용 2009-12-15 11:11:59
송선생님의 고차원 농짓거리인 것 같은데요. 다들 이리 이실직고 석고대죄를 하니 용서해 주시지요. 행간 속의 주요 지점들은 다들 접수해야겠지만요. 멀리서 오신 분 끝까지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건치 노땅모임 꼭 만들어 주세요.

선장 2009-12-14 11:51:55
대표를 더 하고 싶으신데 아무도?? 안 권해서 무척서운하셨나 보네요..
미리 언질이라도 하셨으면 좋았을텐데..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자주 얼굴 ㅤㅂㅚㅆ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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