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와 어혈(瘀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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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와 어혈(瘀血)
  • 편집국
  • 승인 2002.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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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도 궁금한 한의학상식

 

요즈음은 좀 낮아졌는지 모르겠지만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는 언제나 교통사고 사망률 몇 손가락 안에 들어왔다. 성격이 매우 조급해서 그런가보다. 사망자 수가 많은 것도 문제지만 교통사고는 그 후유증이 심각하다. 아무리 사소한 사고라도 당사자는 매우 괴롭다.

예외도 있긴 하다.
절친한 선배가 얼마 전에 교통사고를 냈다. 밤늦도록 일하고 새벽녘에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만 졸음운전을 한 모양이다. 혼자 난간을 들이받고 기절하였다가 응급실에 실려 가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오른쪽 갈비뼈가 부러지고 여러 군데 타박을 입는 등 전치 8주 진단을 받았다. 자타 모두 죽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선배는 비록 몸은 여기저기 아프고 숨만 쉬려고 하여도 고통스러웠지만 마음만은 아주 맑고 평온하다고 하였다. 온 세상이 더 깨끗하고 맑고, 하여튼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고 무언가 평화로움으로 인한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선배 말에 의하면 몸속의 모든 것이 엔진을 새로 간 자동차처럼 새로 세팅이 되어 머리도 맑고, 그대로 기분도 좋고 몸도 아주 좋았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퇴원을 하여 거의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남에게 뭔가 도움이 될만한 일을 열심히 하였다. 원래 마음이 조금 좁고 소심한 사람이었는데 현재 아주 넓고 큰 대인이 되어가고 있다.

누구나 이렇게 될 수 있다면 한번쯤 사고를 낼 만하겠다. 그러나 그것은 벼락 맞은 후 몸의 지병이 나았다는 사람처럼 드문 일이다.

교통사고가 나면 처음에는 대부분 정형외과에서 치료를 받는다. 대부분 보험에 가입하였으므로 이러한 경우 보험의 적용대상이 된다. 그러나 외상이 다 치유되면 비록 몸은 아프더라도 정형외과에서는 치료를 지속할 수 없다. 그리고 대부분 교통사고는 후유증이 있어 외상은 다 낫더라도 환자는 괜히 여기저기 몸이 아프기 마련이다. 이런 경우에 환자들은 대부분 한의원을 찾게 된다. 그러나 현 자동차 보험회사의 규정상 침 치료는 보험 혜택을 받지만 한약은 보험적용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환자는 부득이 자비로 한약을 복용해야 한다. 교통사고 후유증은 대부분 한약을 복용해야 치료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통사고 후유증에 내리는 진단이 한의학에서는 ‘어혈(瘀血)’이다. 정형외과 검사 상 뼈에도, 근육에도, 기타 외상도 모두 없는데 환자는 몹시 아파하는 이상한 병증이 ‘어혈’의 범주에 들어간다. 그리고 어혈을 풀어주는 약을 복용하면 틀림없이 병증이 호전된다. 물론 이러한 개념의 어혈은 눈으로 볼 수 없다. 음기나 양기와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혈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반드시 선행조건이 있어야 진단을 내린다. 타박이나 추락, 기타 사고 등 반드시 어떤 외부에서 가해지는 자극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뇌진탕, 교통사고, 공사장에서의 타박이나 추락사고, 넘어짐, 권투시합, 주먹싸움, 다양한 외과수술, 출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기왕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양한 동통이나 마비, 진전, 정신장애 등을 호소하며, 각각의 병증에 해당하는 다양한 치료를 하여도 효과가 전혀 없다면 대부분 어혈로 진단하고 치료하였을 때 호전된다.

현재 서양의학에서 해결할 수 없는 기능상의 병증들은 의외로 많다. 교통사고나 산업재해 등으로 인한 다양한 병증들도 한의학 치료가 우수한 효과를 발휘한다.

한의학이 하루 빨리 널리 인식되어 국민 모두 한약은 무조건 보약이라는 편협한 시각을 버렸으면 좋겠다. 한약은 어디까지나 질병을 치료하는 적극적인 치료수단이며, 보약은 그 중 극히 일부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구한 설명 없이도 모든 분들이 한의학은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교통사고는 자체로 경제적 손실도 크지만 그 이상 육체적, 정신적으로 인체에 큰 손상을 입힌다. 조심하는 것이 상책이다. 운전하는 사람은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좀더 느긋하게, 여유있게, 편안하게 운전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고, 보행하는 사람은 늘 주위를 살펴 미연에 사고를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꾸 시간을 재촉하고, 마음을 졸이고, 초조해하면 화(火)가 자꾸 치성하면서 음기를 손상시켜 건강을 해치고 온갖 성인병도 초래한다. 마음이 늘 호수처럼 평화롭고 고요하고, 태산처럼 안정되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우리 모두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것 같다.

조대진(올림픽 만당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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