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의료자본과의 한판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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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의료자본과의 한판승부
  • 편집국
  • 승인 2002.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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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답으로 알아보는 WTO 의료시장 개방

 

지난 6월말로 WTO에서 제시한 서비스분야(의료서비스분야 포함)의 시장개방협상 일정상 각 국의 양허요구안(타 회원국에 대한 시장개방요구안) 제출시한이 마감되었다(물론 이후에도 추가 양허요구는 가능하다). 이후 내년 3월말까지는 이들 타 회원국들의 양허요구안들에 대한 자국의 양허안(시장개방 허용안)을 제출하고 양자간, 혹은 다자간 협상을 통해 2004년 12월말까지 협상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이에 본지에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WTO 의료시장개방 협상에 대한 전망과 우리의 대응책들을 알기 쉽게 문답 형식으로 정리해 보았다.             편집자

 

도대체 양허요구안이란 무엇이고, 양허안이란 또 무엇인가?

우리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양허요구안이란 우리가 진출하고 싶은 나라에 대해 이러이러하게 시장개방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안이고, 양허안이란 타국의 우리나라에 대한 양허요구안에 대해 이러이러하게 시장개방을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양허요구안이란 창이고 양허안은 방패라고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나라에 대해 요구를 한다는 것은 우리도 그렇게 하겠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양허요구안 제출시 앞으로 우리가 제출할 양허안을 반드시 염두에 두고 있어야만 한다.

의료시장개방 관련 우리는 어떤 양허요구안을 제출하였나?

치협과 약사회 등은 양허요구를 하지 않았다. 이는 우리의 시장을 개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에 반해 의협과 병협, 그리고 간협에서는 일부국가에 대해 양허요구안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건치신문 129호/2002년 6월22일자 커버스토리 참조). 물론 양허요구안의 제출 주체는 우리나라의 정부(외교통상부)이기 때문에 변동사항이 있을 수 있으나, 대체로 이런 수준에서 양허요구안이 작성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우리의 양허요구안들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는가? 있다면 치협은 왜 양허요구안을 제출하지 않았나?

의료시장개방 협상은 서비스분야의 협상에 속하는 것이다.
이는 상품시장개방과 달리 인력과 자본의 이동을 수반하는 것으로 상품무역에 비해 매우 복잡한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다. 더욱이 보건의료서비스의 경우 일반 서비스분야(예를 들면 건설이나 금융, 유통서비스)와는 달리 WTO내에서도 정부개입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는 국가차원에서 의료시설 및 인력을 적정수로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미국과 일본, 캐나다 등 선진국을 대상으로 의료인력의 이동을 요구하고 있는 우리의 양허요구안은 실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미국은 현재 의료인력에 대해서는 양허를 하지 않고 있으며, 의료시설의 경우도 수요에 따른 공급의 제한을 두고 있다. 또한 프랑스도 의료인력에 대해 국적취득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마저도 해마다 일정량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협상의 필요에 따라 이같은 상황이 변화할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제한규정을 두어 실제적인 의료인력시장의 개방을 막으려고 할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 언급해야 할 것은 현재 WTO 의료시장개방 협상 과정에서 보이고 있는 선진국과 개도국들의 입장차이이다.
선진국들은 자본의 진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반면 인력의 진출에 있어서는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개도국들은 이와는 반대로 인력의 진출에 관심이 있는 반면 자본의 진출에 있어서는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의 양허요구안들을 우리 뜻대로 관철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했기 때문에 치협은 양허요구안을 제출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이는 치협이 내년 3월까지 제출해야할 우리의 양허안을 고려한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
의료시장개방과 관련하여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들은 우리나라에 대해 자본시장에 대한 개방을, 필리핀이나 중국 등 제3세계국가들은 의료인력시장에 대한 개방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들 모두를 막아내야 한다는 취지에서 치협은 타국에 대한 양허요구안을 제출하지 않은 것이다.

의료시장개방을 둘러싼 선진국들과 제3세계 개도국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한다면 앞으로 협상의 전망이 어렵다는 말인가?

그렇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협상타결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이번 WTO의 의료시장개방 협상이 타 분야의 서비스협상과 함께 진행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일괄타결방식(한 분야의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다른 분야의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협상전체가 결렬)으로 진행되는 까닭에 어떤 방식으로든 협상의 타결을 위해 WTO(특히 미국 등 선진국들)가 노력을 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한 의료시장개방의 경우 다양한 방식으로 실질적인 개방을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문서상으로는 개방을 허용하고, 내용적으로 이를 막아내는 방식으로 타결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외국은 우리나라에 어떤 부분의 개방을 요구할 것으로 보이는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선진국(특히 미국)들은 의료자본(시설)의 개방, 개도국들은 의료인력의 개방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와 관련된 실제적인 내용이다. 결국 의료자본시장의 개방과 관련해서는 현행 의료법상의 영리법인 허용여부와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도의 폐지, 민간의료보험의 도입, 그리고 인력시장개방과 관련해서는 면허제도 상호인정 등이 핵심쟁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면허제도 상호인정문제는 각국의 면허제도가 통일되어 있지 않고, 의료(교육)의 질적 수준이 달라 협상타결은 쉽지 않을 것(특히 선진국에서 반대)이다.
결국 우리나라와 관련된 주된 관심은 의료자본시장의 개방과 관련된 쟁점들이며, 이는 특히 선진국에서 강력한 요구를 해 올 가능성이 높은 항목들이다.

▲ 지난 5월 23일 조건산업진흥연구원에서는 치협 등 보건의료단체 관계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WTO DDA 의료 서비스 분야 대책위원회 비공개 전체 회의가 열렸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만 하나?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는 공적의료부문이 매우 취약한 상태에서 의료의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를 사적의료기관에 강제로 위임해 오는(정부의 투자 없이) 과정에서 현재의 왜곡된 의료체계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건치신문 129호 참조). 따라서 공공의료기관의 확충과 현행 50%대에 머물고 있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80%대로 확대하는 등 최소한의 의료의 공공성을 확보할 때까지는 현행 의료법을 고수하여야 한다. 또한 해외의 의료자본에 비해 경쟁력이 뒤쳐지고 있는 우리의 사적의료기관들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후 정부의 보조금지급 등을 통해 우리나라 일반 병의원들의 경쟁력을 확보한 뒤 의료시장개방의 허용을 검토해야만 할 것이다.

현재 의협 등은 영리법인 허용 등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행법의 고수가 가능한 것인가?

의협과 병협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매도만 할 수는 없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현행의 왜곡된 의료체계는 정부의 투자가 뒤따르지 못해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현재 의협 등이 보이고 있는 태도는 순서가 잘못된 것이다.
왜곡된 의료체계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순차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우리는 영리법인 허용불가와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도 등은 대규모 병원자본으로부터 일선 개원가를 보호하는 구실도 하여 왔음을 인식해야만 한다. 물론 이 때문에 우리나라 의료계가 외국에 비해 경쟁력이 약화되게 된 측면도 있기는 하다. 따라서 현재의 왜곡된 우리의 의료체계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정확한 원인분석과 함께 적절한 처방이 필요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의료시장의 자유화(세계화) 논리는 부유층의 의료수요(우리나라의 경우 해외병원 진료환자 등)를 둘러싼 국내외 의료자본의 싸움이라는 성격이 있음을 직시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부유층은 어느 나라이고 10%이내일 뿐이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료수요의 확충--전국민의 진료에 대한 접근보장--을 위해서는 오히려 현재의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더욱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상위 계층 10%는 최고의 (사적)의료기관에서, 최하위 계층과 차상위계층 30%는 공공의료기관에서, 나머지 60%의 국민들은 건강보험제도를 통해 진료권을 보장하는 것이 최선이며, 이는 이미 선진국에서 확립되어 있는 의료체계이다.
이래야만 적정한 의료수요를 보장할 수 있어 대부분의 의료인들에게도 궁극적으로는 이익으로 작용할 것이다. 만약 이러한 최소한의 의료 공공성이 무너진다면 최상위 계층을 뺀 대부분 국민들의 의료수요는 급감할 것이고, 현재 이를 기반으로 90년대 이후 크게 늘어난 많은 수의 의료인들 중 대부분(특히 일선 개원의)은 몰락하게 될 수도 있는 문제인 것이다.

현 세계화 추세에 비추어 볼 때 의료시장개방을 막아낼 수가 있나? 그리고 의료시장개방으로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게 많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 논리에는 함정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해외의 의료기관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우리나라 의료의 질적 향상을 꾀할 수가 있고, 이러한 경쟁을 통해 진료수가가 낮아져 국민들에게도 혜택을 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치열한 경쟁은 일순간일 뿐이라는 점이다.
그 이후에는 결국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빼앗기는가 하는 주체의 문제뢰 귀결될 것이다.
의료시장개방과 관련해서는 선진국과 후진국간, 그리고 일국 내에도 처한 위치에 따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선진국에서도 의료인 유입에 대해서는 병원자본과 의료인력간에 서로 엇갈린 입장을 나타낼 수가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영리법인 허용문제도 개원의들에게는 경쟁력의 문제로만 바라본다면 당연히 대형병원에 비해 불리한 문제일 것이고, 대형병원은 국내상황만 본다면 일면 유리하면서도 해외자본과의 경쟁이라는 측면에서는 불리한 문제일 것이다. 중소병원은 당연히 몰락할 것이고. 결국 누구의 입장에서 이들 문제를 바라볼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또한 “의료시장개방을 막아낼 수가 있는갚 하는 문제에 있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현재 WTO(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국가가 바로 미국이라는 점이다. 특히 의료분야에서 자본의 해외진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미국일 뿐이다. 공공의료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유럽의 선진국이나 일본, 중국, 그리고 제3세계의 개도국들과 연대한다면 이것이 반드시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또한 개방을 하더라도 이를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리고 WTO내에서도 공중보건에 대한 정부의 노력을 인정하고 있듯이 오히려 공공의료를 대폭 강화하는 방식이 실제적인 의료시장개방을 막아내는 현실적인 방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공공의료망이 정착되어 있는 유럽의 경우 의료시장개방을 하더라도 별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며, 미국의 의료자본이 현재 주된 표적을 삼고 있는 나라도 우리나라와 일본, 그리고 중국 정도일 뿐인 것이다.

하지만 쌀 시장 개방의 전례로 볼 때 개방을 불가피한 것 아닌가? 차라리 의료시장개방을 전제로 이에 대비하는 것이 났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그렇다. 특히나 정부의 협상주체인 외교통상부의 입장을 살펴보면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냄새를 짙게 풍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보건복지부의 입장은 현행 의료법의 고수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정부내 대립). 이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공공성과 정부규제의 인정이라는 의료의 특성상 기인하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물론 현행 의료법을 무조건 고수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의료법 개정의 전제조건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의료시장개방을 전제한다면 중요한 것은 그러기 전까지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이는 현재 왜곡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의료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난 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시급히 해야 할 일, 그리고 우리 의료계가 해야 할 일들을 적시하여 장기적인 발전계획 속에 각각의 구체적인 사안에 대응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픈 것은 ‘차라리 의료시장개방을 전제로 이에 대비하여야 한다’는 말속에 담겨있는 함정이다. 이는 얼핏보면 현실적인 사고방식인 듯도 하지만, 개별적인 대비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집단적인 대응이 아닌 개인적인 대비는 물론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한계 역시 명확한 만큼 의료시장개방에 대한 전체 의료인의 단결 속에 풍랑을 해쳐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따라서 의료시장개방을 반대하는 제 시민사회단체들과 의료인 단체들의 긴밀한 연대를 통해 공공의료 확충 등 적극적으로 정부를 압박해 나가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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