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자기 성찰을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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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자기 성찰을 생각함
  • 편집국
  • 승인 2002.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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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말과 글이 항상 사회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지식인이라는 범주적 용어의 존재이유가 사회적이라는 데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지식인의 말과 글들은 그것이 드러남과 동시에 논쟁의 흐름 속에서 꿈틀거리며 유기적으로 살아 남을 때만이 사회적 존재들의 사유양식의 정화로서 의미와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논쟁은 형식의 측면에서는 상대를 존중해 주지만 내용과 논리의 측면에서는 상대에게 한치의 빈 공간도 허용해서는 안될 일이다. 이러한 자세를 기피하는 언설은 단지 정치언어일 뿐이며, 이러한 태도를 초월하는 것은 거룩하고 심오한 종교적 언어가 될 것이다.

최근 문부식씨의 발언을 통해 제기된 ‘지식인의 자기성찰의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그것이 ‘자기성찰’이라는 표제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논쟁의 필요성과 가치를 담는 내용이라 생각한다. 그의 말대로 이 시대의 어느 누가 ‘80년대의 광기와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지 않겠는가.

“우리 안의 폭력을 제대로 성찰할 때만이 국가 폭력을 제대로 성찰할 수 있다. 그래야 사회적 논의 과정에서 국가 폭력의 부당성을 주장할 수 있다.”

“지금까지 광주에 대한 이해는 거의 대부분 미국과 군부의 ‘음모’에서 원인을 찾거나, 군부의 ‘예외적인 폭력’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한국 사회구성원들의 내면에 감춰진 집단적 욕망(한국적 근대의 확장)은 이 폭력과 무관한 것인가. 그런 폭력을 통해 자신들의 욕망이 안전하게 보장받기를 내심으로 기대하면서 폭력을 애써 외면하려 했던 것은 아닌가.”

충분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또한 충분한 비판의 여지를 보여주는 주장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지식인의 자기성찰에서 비롯된 논쟁이 더욱 깊이 있게 진전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이러한 진전이 우리의 정신사와 문화사의 풍부한 자양분이 되기를 더욱 더 기대한다.

다만 논쟁의 형식과 場에 있어서 보다 더 진지한 성찰과 자세를 요구하고자 한다.

이제 지식인들은 자기들만의 소통의 장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적인 소통과 개입과 의도된 기획이 항상적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솔직한 이해와 바른 태도만이 의미 있는 논쟁을 위해 바람직하다.

우리 사회에서 눈에 보이게 혹은 눈에 뜨이지 않게 일상적으로 작용하는 폭력의 기제와 파시즘적 기획을 도외시한 채 일상적 파시즘을 논하는 것 또한 지식인의 자기성찰이 미흡함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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