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남한의 백두대간과 아홉 정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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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남한의 백두대간과 아홉 정맥
  • 이거종
  • 승인 2009.05.2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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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 2009년 39호 소식지에 기고한 글의 전문이다.(편집자)

2009년 2월 16일 월요일 오전.

경기도 김포 문수산 넘어 보구곶, 속리산에서부터 시작한 한남정맥의 산줄기가 서해바다로 잠기는 곳. 백두대간과 남한의 아홉 정맥을 마무리한다.

2008년 5월 2일, 중산리에서 지리산천왕봉에 올라 백두대간을 시작하여 9개월 15일 만의 대장정이다. 친구 좋아하고 술 좋아하던 내가 홀로 이산 저산 돌아다니다가, 백두대간과 정맥이라는 산줄기를 알게 되고, 이후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대간과 정맥 산줄기에 안겨 그 갈무리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산줄기에는 백두대간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백두산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 물줄기에 의해 끊어짐이 없이 오직 한 길로 쭈욱 이어진 산줄기. 바꾸어 말하자면, 지리산 천왕봉에서 백두산을 거쳐 대륙으로 이어지는 한반도의 오직 하나의 이어진 산줄기. 남한에서 안길 수 있는 백두대간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진부령까지 지도상 거리로 672KM 정도 된다.

남한에는 이 백두대간에서 나뉘는 정맥이 아홉 개가 있다. 아홉 정맥 역시 오직 한 길이다. 한북정맥, 한남금북정맥, 한남정맥, 금북정맥, 금남호남정맥, 금남정맥, 호남정맥, 낙동정맥, 낙남정맥이 남한의 아홉 정맥이다.

오직 한 길이라고 하는 것.

물에 의하여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산이 물을 나눈다(山自分水嶺)는 것이다.

광양의 백운산에서 지리산은 지척으로 보이지만, 물을 건너지 않고 가려면 지도상거리 460여 KM의 산길을 걸어야 한다.(호남정맥)

배타고 가면 되지, 삥~돌아 산길로 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그 백두대간과 아홉 정맥의 산줄기에 우리 민족, 조상의 기쁨과 슬픔과 문화와 역사가 있다.

국토지리와 인문지리의 구분이 있다. 외적 침략, 민란, 반란의 애환이 그 산줄기를 중심으로 서려 있다. 가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산성이 있고, 숫돌로 날 세운 조선낫과 죽창이 있고, 민초의 함성소리가 있다.

좌절된 민중의 넋이 있고 혼이 있다. 휴전선이 있고, 군부대 철조망이 있고, 빨치산 처녀와 국방군 대위의 사랑과 죽음이 있다. 민중들의 사랑과 눈물과 아픔이 있다.

먼 길 떠나는 서방님의 청운의 뜻이 있고, 윗동네, 아랫동네 처녀총각의 달짝지근한 사랑의 속삭임이 있고, 시집간 딸과 친정어머니의 애틋한 이별이 있다. 국토의 혼이 서려 있고, 우리들이 ‘마음 붙일 데’가 있는 것이다.

이제 백두대간에 안겨 보자. 여럿이도 좋고, 혼자라면 더욱 좋다.

지리산群, 덕유산群, 속리산群, 소백산群, 태백산群, 오대산群, 설악산群…. 산줄기 따라 쭈욱~ 안기면 된다. 물만 안 건너면 된다. 지도를 펴 놓고 공부를 해서 가면 더욱 좋고, 먼저 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 묵묵히 가도 좋다. 독하게 가면 한 달 남짓이면 되고, 유유자적 가면 3년, 5년이어도 좋다.

(백두대간을 시작하면서 적었던 글이다.)

대자연에, 대간길의 산에 안기는 데서야 출정이라는 단어는 옳지 않으나 짧지 않았던 나의 삶을 중간정리하고 오랫동안 지겹게도 나를 얽매고 있었던 것들을 풀어버리는 계기로서의 출발이 코앞에 있기에 이번만큼은 감히 출정이다.

창창할 줄로만, 핑크빛일 줄로만 알았던 삶의 10대 후반 어느 화창한 날.
80년 5월 어느 날의 역겨운 핏빛 소리에. 그 때 같이 죽지 못한 부끄러움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감상에 젖어 헤매었던 정신적인 역마살.
싸납게 투쟁하지도, 철저하게 거부하지도 못했던, 뜨뜻미지근했던 20대의 삶.
사상의 일천과, 일신의 어중간함과, 언어의 유희로 얼룩졌던 어리숙했던 20대의 삶.
30대도 선택 없이 여지도 없이, 당위로서 짓눌렸고.
40대 중반에서야 차라리 시원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다다라서 되살아난 후.

이제는 다시 내 마음대로, 내 발로 걷고 싶다.
의무도 아니고, 당위도 아닌 그저 내 걸음걸이대로 걷는.
그 계기로서 오월 오늘 백두대간에 출정한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이 땅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먼저 살았던 이들의 애와 환과,
나중에 살아갈 이들의 이정을 생각하며 나누며.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그리도 미어지게 그립던 지리산!

그 지리산에서 덕유산, 민주지산까지 빨치산의 여정과 역정과
그 인생들의 파고를 생각하며. 내 자신의 참자유와 참 해방을 깨닫기 위해,
극기를 위해 몸과 마음의 고통을 달게 삼키고자 한다.

내 발로 걸으며 또 걸으며. 오늘은 출정이다.
내일부터는 안기더라도.. 오월 오늘만큼은 출정이다.
내 자신에의 出征이다!

이거종(건치 인천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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