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하누크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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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하누크병원
  • 이동호
  • 승인 2009.03.02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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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친구들 이야기-(27)

 

그를 만난 건 오로지 오형진원장의 부지런함과 적극적인 성격 탓이었습니다. 목요일 새벽, 리디 챠우 (Rithy Chau)는 여느 때처럼 반바지 차림으로 바싹강변을 따라 조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한 깡마른 친구가 그의 뒤를 따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속도를 내며 내달리자 그 친구도 속도를 내며 계속해서 따라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영어로 "Hello, Good morning?" 하며 인사를 건네기 전까지 챠우는 그가 캄보디아친구인 줄로 알았지요. 옆에 서서 나란하게 달리며 다소 서툰 영어로 자기 소개를 하고서야 그가 한국의 치과의사이며 캄보디아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왔음을 알게 되었지요.

제가 정효경 원장님과 왕궁 앞의 절에서 새벽예불광경 속에 빠져 있을 때, 오형진 원장은 혼자 조깅을 계속했고 바로 그 때, 시하누크병원의 병원행정책임자인 리디 챠우를 만났습니다. 그로부터 건네받은 명함으로 그 날 오후 김지훈 신부님과 안롱껑안 메리놀센터의 헤드스태프인 싸랏 씨와 함께 시하누크병원을 찾아갔습니다.

병원은 생각보다 매우 규모가 큰 종합병원 수준이었습니다. 그의 명함에 <HOPE Worldwide>라는 기독교계열 국제 NGO의 이름이 적혀있는 것으로 봐서 저는 이 병원이 미국의 원조에 의해 운영되는 NGO병원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 병원은 가난한 캄보디아사람들을 위한 무료병원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세기를 풍미했던 캄보디아왕국의 국왕을 병원이름으로 붙인 것으로 보아 캄보디아정부의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는 병원일거란 짐작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병원은 종합병원이라 하기엔 병실규모나 과목의 수가 적었지만 적어도 준종합병원의 수준의 면모는 갖추고 있었습니다.  내과와 외과를 중심으로 의사  54명, 물론 그 중에는 수련 과정에 있는 의사가 많은 수를 차지했지만  적어도 캄보디아 내에서 400명이 넘는 직원을 가진 이만한 규모의 병원은 흔치 않을 것입니다.

현재 2명의 미국인 의사가 상근하면서 이들을 지도하고 있고 병원설립의 가장 큰 목적도 가난한 이들을 위한 진료와 함께 캄보디아의사들과 간호사들에 대한 수련병원으로서의 역할에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이곳은 캄보디아의 의대졸업생들이 가고 싶어 하는 수련병원이며 이곳에서 일정기간의 수련을 마친 뒤에는 일부만이 이곳에 남고 대부분은 개인병원이나 공공병원에서 근무한다고 합니다.

리디 챠우는 매우 유창한 영어로 병원의 거의 모든 시설들을 우리들에게 보여주며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는 매우 자랑스러운 표정과 확신에 찬 목소리로 시하누크병원이 캄보디아에서 얼마나 훌륭한 병원인가를 우리들에게 전달해주려고 애썼습니다.

그는 중국계 같아보였는데 캐나다에서 공공보건학을 공부했다고 하는 걸로 보아 나름대로 전문가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미국지원으로 설립되고 운영되는 이 큰 NGO병원의 책임매니저로서 충분한 능력과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하지만 너무나 유창한 영어와 마치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한 그의 설명을 듣고 있으려니 그가 특별한 관련도 없는 우리들에게 왜 이토록 열심히 병원을 보여주는가 하는 의문과 함께 그가 이 병원에서 무엇인가 특별한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1996년에 설립된 이 병원의 주요 후원자는 미국의 Hope Worldwide라고 합니다. 이 병원이 발간한 자료에 의하면 2005년도에 이 병원의 자산은 600만 달러, 약 60억원이었습니다.

이 중에는 주식으로 신탁기부를 한 액수도 260만 달러가 들어있습니다. 기부문화가 비교적 발달해 있는 미국에서 이 시하누크병원의 대부분을 후원하고 있지만 일본에서도 일정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을 병동 벽에 붙어 있는 기부안내판을 보고 알았습니다.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국가차원의 원조뿐 아니라 국제NGO연대의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이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수술이 이루어지는 외과병동의 입구에는 이 병동의 역사를 담은 사진기록들이 걸려 있습니다. 이 사진을 보면, 이 병원의 성장과정 속에 이처럼 각 파트별로 희생과 헌신을 다한 많은 이들의 땀과 노력의 흔적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곳에 처음 와서 외과를 만들고 지식과 기술수준이 형편없는  캄보디아의사들을 가르치고 훈련시켜 오늘의 수준까지 이끌어 올린 사람들, 그들이 있기에 캄보디아는 그래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시하누크병원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무료병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프놈펜 시내에서 무료병원은 그리 흔치 않습니다.  챠우씨는 프놈펜 유일의 무료병원이라고 설명했지만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조그만 의원이나 진료소 수준이 아니라 병원급으로서는 유일한 무료병원이라는 말이겠지요. 

저희들이 갖는 당연한 의문은 몰려들게 뻔한 그 많은 환자들을 어떻게 선별해서 진료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들이 병원을 방문했을 때, 병원의 앞마당에는 이미 환자들로 가득 찬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휠체어를 탄 환자들도 여럿 보였고 대개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지요.

챠우씨에 의하면 그동안 많은 시행착오와 오류를 거치면서 지금은 환자들을 선별하는 노하우를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필요하다면 환자의 가정을 직접 방문하기도 한다는군요.

장애인들과 에이즈환자들에 대한 케어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그의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병원정문 맞은편에 있는 창고와 외래환자를 위한 약국을 들렀습니다. 창고건물은 미국으로부터 건너온 많은 의약품들과 자재들, 그리고 다양한 지원물품들로 가득했습니다.

이곳에서 새삼스레 미국이란 나라의 힘을 느낍니다. 막대한 원조물량을 쏟아 붓는 것으로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의 지난날의 과오와 죄를 얼마나 씻을 수 있을까요? 

비록 미국정부에 의한 역사적 범죄행위로 인해 많은 인도차이나의 민중들이 고통을 받았지만 또 많은 미국인들이 그들의 정부를 대신하여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서 봉사하고 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시하누크병원은 만성질환으로 고통 받는 외래환자들을 위한 약국을 병원외부건물에 설치해두고 있었습니다. 이것 또한 경험에서 나온 아이디어일 것입니다. 정기적으로 약을 타러 오는 환자들이 일일이 병원건물 안으로 들어갈 필요 없이 창고건물 옆에 설치된 약국에서 약을 받아가도록 해두었기 때문에 이 병원은 하루에 500명 정도의 환자들을 효과적으로 케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리디 챠우와 함께 병원을 둘러볼 수 있었던 것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오형진원장의 덕택으로 뜻하지 않은 프로그램으로 풍성해진 하루였습니다. 인생이란 종종 계획에 없던 일로 행복해지기도 하고 불행해지기도 하는 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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