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나마라 회고 '우리는 잘못을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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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나마라 회고 '우리는 잘못을 저질렀다'
  •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9.01.07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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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제1장 역사진실관-(17),(18),(19)

본 연재글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연재글 첫회부터 읽기를 당부드립니다. (편집자)

17
『1975년 4월 30일은 베트남 통일의 극적인 순간이다. 대통령 궁에 해방군의 탱크가 밀고 들어갔다. 1호차는 하노이에 있고 대통령 궁에 있는 것은 2호차이다. 탱크 깃발을 들고 있는 어린 소년병은 대나무에 달린 깃발을 들고 막 뛰어가서 3층에 있는 남베트남 삼색기를 떼어내고 해방군 깃발을 꽂는다.

이때 승리한 군인들은 100년의 압제와 전쟁을 끝난 순간에 장전된 총알을 하늘에 대고 마구 쏘아댄다. 이 소리가 사이공 전역에 물결처럼 이어졌다.

이 당시 베트남 사람들은 ‘나의 모든 총알을 사람이 아닌 하늘을 위해 쏘았던’바로 이 순간이 ‘내 인생에 가장 황홀했던 아름다운 순간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1975년 4월 30일 베트남이 민족통일을 하던 날, 사이공의 한 아주머니는 이렇게 기쁨에 들떠 있었다.

“해방군이 사이공에 가까워졌을 때 우리는 남모르게 많은 해방깃발을 만들었어요. 티우 정권은 이 깃발을 금지했을 뿐만 아니라 해방깃발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적·황·청 3종류의 천을 한꺼번에 사기만 해도 체포했으니까요.

그러니까 이 깃발을 만드는 일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지요. 우리 집 둘레에 이미 60여 명의 여성들이 각오를 다지고 모여 있었습니다.

베트남 민족해방통일을 상징하는 순간이다.

▲ 베트남 민족해방통일을 상징하는 순간이다.
… 4월 28일 탄손누트 공항이 폭격을 받았을 때 나는 라디오로 해방방송을 듣고 이제야말로 깃발을 게양할 때라고 생각하여 사진관의 지붕에 해방기를 게양했습니다. 이웃에 있는 주부들도 일제히 깃발을 내걸었습니다.”

바로 그날, 대한민국 박정희는 모멸감과 치욕감 그리고 두려움을 느꼈다. ‘베트남 민족통일’을 ‘월남 패망’이라고 혼자서 수도 없이 되뇌었다. 티우처럼 독재를 하던 박정희는 심사숙고 한 뒤, 1975년 5월 13일 언론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하는 긴급조치 제9호를 발동했다.

전국적으로 위기의식을 고조시키고 대대적으로 반공과 안보를 선전하였다. 유신헌법의 부정, 반대, 왜곡, 비방, 개정 및 폐기 주장, 청원, 선동 또는 이를 보도하는 행위 자체까지 일체 금지시켰다. 박정희는 유신독재 말로에 돌이킬 수 없는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18

▲ 맥나마라 회고록
맥나마라 회고록
『여기는 역사진실관의 마지막 장면이다. 아까 보았듯이 맥나마라는 베트남전쟁의 3대 주역이다. 맥나마라는 베트남전쟁이 끝난 지 20년 만에 베트남전쟁의 문제점을 낱낱이 밝힌 회고록을 1995년 발표했다.

회고록에서 “우리는 잘못을 저질렀다. 아주 끔찍한 잘못을 저질렀다. 우리는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우리가 왜 이런 잘못을 저질러야 했는지 설명해야 될 빚을 안고 있다.”고 밝혔다.』

베트남전쟁을 직접 계획하고 집행했던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 : 1916~)는 미스터 컴퓨터로 불리는 기업가이자 경제학자이다. 포드자동차회사 사장을 거쳐 1961년 케네디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내면서 베트남전쟁을 정당화하는데 진력하였다.

그러나 1966년부터 베트남전쟁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고 결국 1968년 존슨 대통령이 해임을 하였다. 그 뒤 1981년까지 세계은행(IBRD) 총재를 지냈다.

맥나마라는 남베트남 붕괴 20주년을 맞으면서 1996년에 발간한 회고록 「베트남전쟁의 비극과 교훈」에서 ‘베트남전쟁은 잘못된 전쟁이었다. 몸서리치게 잘못된 전쟁이었다(Vietnam war was wrong, terribly wrong)’라고 말하며, 베트남전쟁이 방향도 잃고 목표도 없는 전쟁으로 끝났다고 스스로 비판하였다.

19

▲ 맥나마라 사진 앞에서 진실을 전하는 구수정 선생
맥나마라 사진 앞에서 진실을 전하는 구수정 선생
맥나마라 사진 앞에서 구수정 선생은 우리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맥나마라의 이 말을 우리 한국사람은 꼭 새겨야 할 것이다. 나는 1966년에 태어났다. 1966년이면 한국군의 양민학살이 막 일어나던 때이다. 여기에서 해설하면서 맥나마라의 말을 매번 되새긴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나는 말을 많이 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다. 우리도 우리와 관계한 이 박물관을 봤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다음 세대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할 의무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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