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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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좋아
  • 강재선
  • 승인 2003.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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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팔은 청춘에 소년몸 되어서…
등급심의와 검열로 영화판을 시끄럽게 했던 ‘죽어도 좋아’는 시민단체의 목소리와 해외영화제의 인정 덕분에 죽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나니…그들 사랑의 어떤 부분이 유해하고 음란한 것인지, 나는 분별이 되지 않는다. 무얼 보고 심의위원들이 성적으로 흥분했을까 정말 궁금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혼적령기에 이른 20대 남녀의 탐색전만을 사랑의 전부라 여겼던 건 윤리심의위원들의 노고가 크다. 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을 멋대로 재단하고, 노인의 섹슈얼리티를 윤리와 관습의 이름으로 배제시켰으니 말이다.

사랑이나 섹스는 어차피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사회적으로 주입 받았던 나로서는, 영화 속의 실제 장면들이 마치 거짓말 같았다. 살아 있음의, 사랑하고 있음의 확실한 증거이건만….

금수강산이 아무리 좋아도 정든 님 없이는 적막강산이라…
멜로 영화 사상 최고령인 이들 아담과 이브의 나이는 합이 144세. 그들은 어떤 연인들보다도 행복하다.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얼마 남지 않은 생의 끝자락에서 만난 마지막 사랑은 절박하며 서로에게 충실하다. 할머니가 ‘쪼끔 나갔다 올께요’라고 한 그 몇 시간 동안 “순예야, 순예야, 우리 마누라 누구 못 봤어?”를 연발하며 온 시장통을 헤매는 할아버지의 한숨이 그러하다.

늦게 들어온 할머니와 티격태격 싸우다가 할머니를 울리고 뒤돌아 앉은 할아버지의 눈빛과 주름이, 할머니의 서러운 눈물이, 애들처럼 말도 안 되는 승강이가 그러하다. 그들이 만나기까지 가졌던 외로운 시간과 공간의 느낌이 공포와 두려움으로 다가왔을 혼자라는 몇 시간에, 서로에 대한 절박함이 담겨있다.

세월이 가기는 흐르는 물같고 사람이 늙기도 바람결 같고나…
지금이나 잘하라고 하면 할 말 없지만…나도 나중에 할머니가 되었을 때, 나보고 ‘달덩이처럼 이뻐요’라고 말해주는 귀여운 할아버지랑 연애나 할란다. 할아버지 틀니도 고쳐주고 그럴란다.    

강재선(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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