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마의 세상보기] 지하철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씨어린년’이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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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마의 세상보기] 지하철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씨어린년’이여야 하는가?
  • 편집국
  • 승인 2003.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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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친구를 만났는데 아주 정신이 나간 모습이었다.

지하철에서 옆에 사람이 없길래 다리를 꼬고 앉았다가 앞에 서있던 아저씨가 발로 그 다리를 찼단다. 친구도 애초에 다리를 꼬고 앉은 것이 잘못이었다는 건 인정했지만, 아저씨에게 "말로 하시면 될 것을 왜 발로 차세요? 이건 폭력입니다." 했다가 그 아저씨가 ‘어린년’이 어쩌고 하면서 갖은 욕설을 퍼부은 모양이었다.

친구가 "폭행과 언어폭력을 하셨으니 저랑 같이 경찰서에 가시자"고 잡아끌었더니 좀 수그러들었단다.

그 친구 나이가 서른이다. 법적으로 독립적인 성인이 된지 10년도 지났으며, 일을 해서 자신을 스스로 먹여 살린 지도 2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지하철에서의 그녀는 발로 채임을 당해도 마땅한, 버릇없는 어린 여자 애일 뿐이다.

여자 애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어린 남녀에 대한 문제라고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언젠가 너무 피곤해서, 지하철에 자리 많음에 흡족해 하면서 노약자, 장애인 좌석에 앉은 적이 있다. 한참 정신없이 졸고 있는데 누가 허벅지를 계속 때리는 마당에, 얼결에 자리를 양보 당한 적이 있다.

때린 분은 어떤 아저씨. 할아버지께 자리를 마련해주겠다는 의도는 좋았지만. 그냥 흔들어도 될 것을 허벅지를 때린다. 허벅지를 맞는 난 이유야 어떻든지 간에, 버릇없는 ‘어린년’ 이다. 내 자리 옆 좌석에는 눈뜨고 있는 내 또래의 남자애가 있다. 어린’놈’과의 댓거리는 더러워지기 십상이라 아저씨가 택한 것은 나의 허벅지다.

지하철에서 이런 일을 당해보지 않은 여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하철을 탈 때 우리는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한다. 머리 속으로 갖가지 상황을 가정하면서 그에 대한 대응법을 되새겨보곤 한다. 밤거리 뒷골목도 아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곳이자, 하루에 반드시 두 번은 거쳐가야 하는 장소에서 우리는 전혀 안전하지 않다.

실제로 그렇게 젊지도 않은 우리를 어리게 봐주는 것을 고마워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장유유서에 대한 상식수준의 판단은 내릴 수 있는 나이란 것을 상식 선에서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유독 여성을 어린 그룹으로 내려다보며 버릇을 다스리려고 하는 이 가부장적인 사회문화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정말 어린 것이 아니라, 여성이기 때문에 ‘어려지는 것’ 이다.

헤마(웹진 달나라 딸세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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