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와 치아, 그 관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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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와 치아, 그 관계의 역사
  • 강신익
  • 승인 2003.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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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1) 서기전 18세기 경의 것으로 추정하는 함무라비 법전. 왼쪽에 함무라비 왕이 서있고 오른쪽에는 태양의 신 새마쉬가 힘의 상징인 지팡리를 들고 앉아 있다.
『땅은 강을 창조했고 강은 운하를 만들었으며 운하는 습지를 만들었다. 그 습지에서 벌레가 탄생했는데 이 벌레가 태양의 신 샤마시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당신은 내게 어떤 먹을 것을 주시렵니까? 나는 무엇을 빨아먹고 살아야 합니까?”

“나는 너에게 잘 익은 무화과와 살구를 주마.”
“잘 익은 무화과나 살구가 저에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나로 하여금 이빨 속에 있게 하시고 잇몸 속에 살게 하소서. 나는 이빨의 피를 빨고 잇몸 속에서 그 뿌리를 갉아먹겠습니다.”』

지금은 폭격과 약탈로 폐허가 되어버린 야만의 땅 바그다드!
그곳은 인류의 문명이 처음 시작된 곳 중 하나였다. 인류 최초의 성문법인 함무라비 법전(그림 1)이 만들어진 것도 바로 그곳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그 최초의 성문법은 신체 부위의 가치를 중심으로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 소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유래된 것도 이 법전에서였다.

물론 이러한 등가 교환의 원칙이 성립되는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신분에 속하는 경우에 한정되며, 귀족과 노예처럼 다른 신분에 속하는 경우에는 같은 신체 부위라도 그 가치가 다르다. 더구나 이러한 신체의 교환가치는 그것이 다른 사람에 의해 손상을 받았을 경우에 한하는 것이므로, 질병처럼 그 원인제공자를 특정할 수 없는 경우에는 무척 난감했을 것이다. 아무튼 그들은 신체 부위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했다는 사실만 지적해 두자.

위의 인용문은 점토판에 쐐기문자로 새겨진 당시의 유물을 해석한 것으로, 치아가 손상되었지만 그 책임을 특정인에게 물을 수 없는 경우에, 벌레라는 신화적 존재를 등장시켜 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을 보여준다.

▲ 그림2) 1780년경의 것으로 추정하는 상아에 새긴 치아의 모형
물론 이 때 벌레는 우리에게 실제로 보상을 해 줄 수 있는 존재도 아니고 사람처럼 자신의 치아를 부러뜨려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단지 당시의 세계관으로 볼 때 마땅히 책임져야 할 존재로 상징하고 있을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세계의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치아우식은 벌레에 의해 생기는 것으로 믿었다는 사실이다. 이조실록에 보면, 치통에 시달리던 성종 임금은 제주도에서 올라온 의녀의 치료를 받고 지긋지긋한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는데, 그 의녀는 임금의 입 속에서 기다란 벌레를 잡아냈다고 한다.

이 벌레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다만 당시의 사람들이 치통은 벌레가 사람의 이를 갉아먹기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믿었다는 사실만은 확인할 수 있다.

과학혁명을 이끌어 내고 근대적 해부학과 생리학을 발전시킨 18세기 유럽인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상아에 새긴 이 치아의 모형(그림 2)은 치통에 관한 그들의 생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두 쪽이 분리되도록 만들어진 이 모형의 한쪽에는 벌레가 새겨져 있으며 다른 한 쪽에는 지옥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치통의 원인은 벌레이며 그 고통은 지옥에 떨어졌을 때와 같은 지독한 것이라는 경험적 지식을 작품 속에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충치(蟲齒)라는 말이 치아우식증이라는 학술적 용어보다 더 익숙하다. 현재 학술적으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화학세균설(chemico-parasitic theory)도 벌레(蟲)가 세균으로 바뀌고 여기에 화학적 작용이라는 중간과정이 추가되어 있을 뿐, 기본적으로는 세균이라는 벌레를 상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가 굳이 충치라는 익숙한 말을 버리고 치아우식증이라는 어색한 말을 억지로 만들어 써야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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